소설암지 小雪庵址
설악면 설곡리 691
마을 뒤편에 위치한 사지입니다. 오직 사지에 남아 있는 부도 답사 목적으로 들렸지만 글을 준비하면서 반전이 있었습니다.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지
"『세종실록지리지』에 공민왕 5년 國師 普愚가 우거하다 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佛宇條에 기록하면서 보우의 사리탑이 있다고 하다.이후 『여지도서』와 『범 우고』에는 폐사되었다고 하므로 고려시대 후기부터 조선 시대 중기까지 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창건과 폐사에 대한 사적이 전하지 않은 사지입니다.
그런데, 2001년 홍수로 인해 권근이 찬한 원증국사 사리탑편이 발견되어 사지가 원증국사( 태고 보우)가 열반에 들었던 소설암지로 확인되었습니다.
먼저, 북한산 태고사에 있는 태고 보우 부도비명의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태고사에 있는 고려 말의 고승 원증국사 태고보우[圓證國師 太古普愚 : 1301(충렬왕 27년)~1382(우왕 8년)]의 비. 이색(李穡)이 짓고 권주(權鑄)가 해서로 써서 국사 입적 3년 후인 1385년(우왕 11년)에 세웠다
"임술년(壬戌年)여름 소설암(小雪庵)으로 돌아와 그 해 12월 17일 미질(微疾)을 느끼게 되었다. 23일에 이르러 문인(門人)을 불러 앉히고 이르기를 “내일 유시(酉時)에 나는 떠날 것이니 지군(知郡)에게 청하여 국사의 인장(印章)과 구점(口占)으로 남긴 사세장(辭世狀) 수통(數通)등을 봉하여 임금께 전달하라”고 당부하였다. 때가 다가옴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 단정히 앉아 임종게(臨終偈) 사구(四句)를 설하고,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조용히 입적(入寂)하였다. 부음을 우왕(禑王)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이 심히 진도(震悼)하였다.
계해년(癸亥年) 1월 12일 향목(香木)을 하사하여 화장하였다. 그 날 밤 광명(光明)이 하늘에 뻗쳤고 사리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중 100과를 내전(內殿)의 임금에게 올리니, 이로 말미암아 임금은 더욱 경중(敬重)하시고 유사(攸司)에 명하여 시호를 원증(圓證)이라 하고 탑을 중흥사(重興寺)의 동쪽 봉우리에 세우고, 보월승공탑(寶月昇空塔)이라 이름하였다. 석종(石鍾)을 만들어 사리를 진장(鎭藏)한 것이 무려 세 곳이니 가은(加恩)의 양산사(陽山寺)와 양근(楊根)의 사나사(舍那寺) 미원현(迷源縣)의 소설암(小雪庵) 이다"
태고보우의 부도가 소설암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산 태고사 원증국사 보우 부도,부도비
양평 사나사 원증국사 보우 부도, 부도비
http://cafe.daum.net/indramang1/9WU8/629?q=%EC%96%91%ED%8F%89...%EC%82%AC%EB%82%98%EC%82%AC
태고사 부도비문에 실려있는 가은加恩의 양산사陽山寺는 문경 봉암사입니다.
봉암사 경내의 "석종형 부도"로 칭하는 부도가 태고 보우의 부도로 전합니다.
문경 봉암사 (전) 태고 보우 부도
그리고 2001년 부도비 파편이 발견된 소설암지에 원증국사 부도, 부도비가 있었습니다.
소설암은 선사가 오랫동안 주석하였으며 열반에 든 절집입니다.
부도비문은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이성계의 왕조 창건에 중심적인 역할을 권근(1,352~1,409)이 찬하였으며, 양촌문집陽村文集에 실려 있습니다.
권근은 대지국사 요청으로 부도비문을 찬하였습니다.
한국고전종합 DB(양촌문집 陽村文集)
"迷源縣小雪山菴圓證國師舍利塔銘 幷序
王師圓應尊者馳書於予曰。吾先師大古國師。大有異德。及示寂。舍利甚多。上心敬重。命有司諡曰圓證。
塔曰寶月昇空。樹于重興寺東峯。牧隱相國奉敎以銘。礱石作鍾。藏舍利非一所。曰陽山,舍那,靑松,大古菴是已。又於迷源小雪菴。樹塔以藏。小雪。師之所始終焉者也。師嘗入龍門山。發十二大願。自是道日進。旣有得。遊入中國。謁石屋珙公於潮洲。一言相契。授以信具。石屋。臨濟之直派也。及東還過迷源。有老吏泣請留。因卓菴於龍門之北麓。號之曰小雪山。躬耕以居者累稔。此師所以始之也。玄陵封王師。尊禮甚極。雖有歷居廣明,陽山,迦智等寺。間必往小雪居焉。初。鷲城旽以左道惑上。師白於玄陵曰。彼實邪妄。願
上勿邇。玄陵不詧。旽含之。旽始用事。師還印章。寓於全之普光寺。旽欲害之。誣以㳅言。幽之俗離山。未幾。玄陵悔之。請還小雪。旽果逆誅。玄陵曰。吾恨不用吾師之言。遣使加封國師。今上嗣位。請住陽山寺。又封國師。壬戌夏。師年八十二矣。自陽山還小雪。冬十二月示疾。定時日如期而逝。此師所以終之也。始於此卓錫。終於此茶毗。樹塔於此亦宜也。諸藏舍利之所。皆得巨筆以誌。獨於小雪。尙未有銘者非歉歟。時之大儒若牧隱,陶隱,三峯諸公皆已有言於吾師。而吾子獨無。幸無讓。予不敢居數君子之列。固辭不獲命。
乃言曰。佛氏之道玄微高遠。固難以言語形容。况儒者所不究。敢妄議哉。惟師之德相孚於石屋。師之智卒驗於鷲城。所造可謂高矣。所見可謂明矣。然其閫奧。非具眼者莫能知。惟舍利之異。赫然播人耳目。聞者起敬信之心。是宜藏而表之。以示於無窮也。
銘曰。
소설암지
경작지 석축을 제외하고 유구는 확인되지 않으며, 부도 1기가 사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 자료에 보이는 우물도 겨우 위치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부도
특별한 문양이 없으며, 보주는 있는듯 없는 듯.
방형 지대석도 본래 부재인지 불투명하며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조선후기 부도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2004년 강원대학교의 "소설암지 및 화악리 절터 지표조사보고서"에는 태고보우 부도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설악면 설곡리 691번지 일대에서 태고(太古) 보우국사(普愚國師)의 사리탑비편(舍利塔碑片)이 발견되었으므로 이곳이 소설암지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원위치는 현재 사리탑비편이 폭우로 쓸려 내려온 것을 고려할 때 사리탐이 있는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곳에 사리탑이 1기만 있고, 사나사에 있는 보우국사의 사리탑이 석종형(石鐘形)이며, 고려말~조선초기에 해당하는 석종형 승탑들로 볼 때, 그러한 승탑 양식이 아직 확립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설암의 사리탑(승탑)이 보우국사의 승탑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 소설암터에는 석종형 부도 외에는 이렇다 할 유구ㆍ유물이 없지만, 태고 보우스님이 25년 넘게 주석하던 곳이고, 마지막 열반한 곳이기 때문에 불교신앙과 역사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현재로서 소설암의 창건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대체로 1750년에서 60년 사이에 폐찰된 것으로 보인다"
왜 봉암사 부도비는 망실, 사나사와 소설암 부도비는 훼손되었을까요?
북한산 부도비와 부도는 온전한데.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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