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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평군

가평...운악산 현등사

by 임병기(선과) 2020.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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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4km를  걸어서 순례하였던 기억.

오늘은 코로나 19 여파로 인적 없는 산길을 독차지하고 차량으로 진입하였으며, 절집에도 참배객이 없어 나 홀로 호사를 누렸습니다.

시간에 쫒겨 오랜 시간을 머물지 못하여 아쉬웠지만 인연 짓지 못했던 부도를 뵈었기에 미루었던 숙제를 푼 듯합니다.

 

2009년 현등사 답사기

http://blog.daum.net/12977705/8722835?category=

 

불이문

 

하판리 지진탑下板里地鎭塔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절을 크게 다시 세우면서 땅의 기운을 진정시키고자 세웠던 비보탑으로 전합니다.
상하기단 갑석, 상층기단 중석 1매, 옥개석 3매, 탑신석 2매, 노반이 남아 있습니다.

 

 

하층기단 갑석

 

하층기단 갑석 굄, 상층기단 갑석 부연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며, 전각 반전이 경쾌합니다

1단 탑신 굄, 층급받침은 3층 3단. 1~2층 4단, 절수구가 있습니다.

 

탑신석

우주을 모각하였으며, 탑신 사방에 석불좌상을 봉안하였습니다.

 

상륜부

노반석, 보주 파편(?)

 

상층기단 중석

탱주 1주, 우주가 모각하였으며, 석탑 배례석으로 놓여 있습니다.

 

1210년 보조국사 지눌이 3창 할 때 세운 비보탑이 맞을 것 같습니다.

 

현등사 삼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63호

지난 3월 우리 카페에서 석탑 기단부와 초층 옥개석에 등에 관한 토론이 있었기에 유심히 촬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치장을 하였는지?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줌업으로 촬영했습니다.

 

지대석 위에 불대좌형 기단부

- 복련이 조식된 상층기단과 초층 탑신석은 일석이며 바로 위는 초층옥개석이며 2층 탑신석과 옥개석이 결실된 5층 석탑으로 추정

-복련 위 부재는 상층기단 중석으로 일석이며, 상위 부재는 특이한 작례의 상층기단 갑석으로 3층석탑 또는 탑신석, 옥개석  각 1기가 결실된 5층 석탑으로 추정

 

예전에 토론이 있었음에도 지난 3월에는 불대좌형 3층석탑으로 생각했었지만, 지금도 혼란스럽습니다.

조선 세조 5년(1470) 현등사를 중수한 기록이 새겨진 사리함과 사리가 발견되었으며,  조선 전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전합니다.

 

 

불대좌형 기단부

 

탑신부

 

초층 옥개석 연화문

3단 층급 받침, 절수구 생략

 

상층 옥개석

3단 층급 받침, 절수구

 

상륜부

거의 온전합니다.

 

옥개석

3*2 층급 받침, 절수구

 

 

선원. 출입금지 구역

 

극락전

 

목조 아미타좌상

후벽 아미타회상도 화기(畵記)에 “1759년(乾隆24년)에 아미타불을 개금하고 후불미타회상도 1부를 조성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어 1759년 이전에 제작된 불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화

화기(畵記)를 통하여 1759년 아미타불의 개금과 더불어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금어는 오관(悟寬) 등 9명입니다.

 

 

신중도

1790년에 관허당 설훈(觀虛堂 雪訓)과 용봉당 경환(龍峰堂 敬還)스님이 청동 지장보살과 함께 조성

 

지장도

 

동종

"1619년(광해군 11)에 천보(天寶)가 짓고 새기기까지 했으며, 종을 만들게 된 연유, 종 제작에 사용된 재료의 양과 무게, 발원하는 내용, 참여한 사람 등을 기록하였다. 주종장은 일반적으로 주종기를 작성한 천보로 보고 있는데, 그는 조선후기 승려 주종장(鑄鍾匠) 가운데 유일하게 임진왜란 이전부터 활동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어,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승장의 계보나 범종의 양식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

1469년 작 남양주 봉선사 동종(보물 제397호)이나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 그리고 1491년 작 합천 해인사 동종(보물 제1253호) 등 조선전기의 왕실발원 범종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원래 이 종을 소장했던 봉선사 또한 왕실의 원찰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만들어진 궁중양식 범종의 여러 가지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다음)

 

남양주 봉선사에 봉안되어 있었던 종인데,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현등사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지장전

청동지장보살좌상

"1790년에 관허당 설훈(觀虛堂 雪訓)과 용봉당 경환(龍峰堂 敬還)이 지장암에 봉안하기 위하여 이 지장보살좌을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설훈과 경환은 현등사의 신중도(神衆圖)를 그렸던 승려이다. 설훈은 1790년 수원 용주사(龍珠寺)에서 관음보살상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지장암은 18세기 중엽의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 『전등·봉선본말사지(傳燈·奉先本末寺誌)』 「운악산현등사사적(雲岳山懸燈寺事蹟)」 등의 기록을 통하여 1823년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871년의 『가평군지(加平郡誌)』에 폐사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청동지장보살좌상은 19세기 중반에 지금의 현등사로 옮겨 왔을 가능성이 높다"(다음)

 

 

지장시왕도

화기가 훼손되었으나 1759년 아미타불화 동시에 조성된 불화로 추정

 

지장전

대군위실 大君位室

세종의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과 양자인 예종의 둘째 아들 제안대군의 신위 봉안

지장전의 본래 이름은 위실각이며 2명 대군의 원당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안대군 齊安大君(1,466~1,525)과 부인

"1470년(성종 1) 5세의 나이로 제안대군에 봉해져 녹봉(祿俸)과 직전(職田)을 지급받았으며, 후일 세종의 제 7자인 평원대군 임(平原大君琳)의 후사로 입양되었다. 12세에 사도시정(司䆃寺正) 김수말(金守末)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어머니 안순왕후에 의하여 내쫓긴 바 되어, 14세에 다시 박중선(朴仲善)의 딸과 혼인하였지만 김씨를 끝내 못잊어하자 1485년 성종이 복합(復合)을 허락하였다.

 

1498년(연산군 4) 안순왕후의 상을 입은 뒤부터는 홀로 거처하였으며, 평생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다만 성악(聲樂)을 즐기고 사죽관현(絲竹管絃)을 연주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연산군이 네 차례나 음률(音律)을 아는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들여 그에게 내렸으나 따르지 않았다.

『패관잡기(稗官雜記)』에는 그를 평하여 “성품이 어리석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감춘 것”이라는 또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결국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실세력과 훈신(勳臣)의 각축 속에서 희생된 인물이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다음)

 

평원대군 이임 平原大君 李琳 (1427년 ~ 1445년)과 부인

"1434년(세종 16) 8세에 평원대군으로 봉군(卒記에는 13세에 봉군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되고, 1437년 종학(宗學)에 입학, 호군(護軍) 홍이용(洪利用)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후 학문에 진력하여 시(詩)·예(禮)·『대학연의(大學衍義)』에 숙달되고, 또 서체(書體)와 사어(射御)에도 능숙하였으나, 1445년 1월 두창(痘瘡: 천연두)으로 죽었다.

 

성품이 겸손하고 효행과 우애가 있었으므로 세종의 아낌을 받았으며,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세종 말년의 신병 등과 함께 세종의 숭불을 촉진시킨 한 원인이 되었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1483년(성종 14) 5월 강녕부부인 홍씨(江寧府夫人洪氏)가 죽자 제안대군 현(齊安大君琄: 예종의 둘째아들)으로 뒤를 이었다. 처음 시호는 정덕(靖德)이었으나 뒤에 정헌(定憲)으로 추시되었다."(다음)

 

삼성각

 

칠성도

뿔이 하나 달린 흰 소가 끄는 이륜거(二輪車)의 팔각연화좌 봉안

 

많은 자료에 1861년 삼각산 화계사에서 조성된 불화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부연 설명에는 독성도와 함께 조성하였으며, 현등사로 옮겼다고 하였으나, 동일 사이트에 독성도는 1875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흰 소

 

산신도

 

독성도

고종 12년(光緖 1년, 1875)에 상궁 장씨가 순종 내외와 을해생 정씨를 위하여 조성한 불화라고 합니다.

 

화담당 경화탑(華潭堂敬和塔)

 

경화(朴敬和.1786.정조 101848.현종 14)

조선 후기의 승려.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선승이다. 성은 밀양(密陽) 박씨. 호는 화담(華潭). 어릴 때부터 마늘·부추 등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않았으며, 18세에 출가하여 양주 화양사(華陽寺)에서 월화(月華)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율봉(栗峯)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지탁(知濯)의 법통을 이었다.

 

언제나 계행(戒行)을 청정하게 하였고, 29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도를 하였다. 한때 지리산에서 서봉 두옥(瑞鳳斗玉)에게 <선문염송(禪門拈頌)>과 격외선(格外禪)을 배웠으며,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寶蓋山)의 석대암(石臺庵)에서 수년간 <화엄경><열반경>을 공부하는 등 선교겸수(禪敎兼修)를 지향하였다. 또한 당시의 선사들처럼 유··도 삼교일원론(三敎一元論)의 사상을 가지고 유교 등의 전적을 두루 섭렵하기도 하였다. 그 뒤 해인사에서 좌선 중 여래의 본성이 곧 자신의 본성임을 깨달았으며, 보문사(普門寺)에서 법회를 가져 궁중으로부터 향촉과 <능엄경>을 하사받았다. 1815(순조 15)부터 여러 강원에서 조실(祖室)로 있으면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주관하였는데, 55군데에서 83회나 열어 대중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1845년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다가 곧 동래 범어사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말년에는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현등사(懸燈寺)를 열반처로 정하고 선정과 지혜를 길렀으며, 제자들에게 열심히 정진 수행할 것을 당부하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법맥은 휴정(休靜편양(鞭羊풍담(楓潭월담(月潭환성(喚惺완월(玩月한암(漢巖화악(華嶽경화로 이어진다.

 

기단부는 육각이며 지대석 위에 2단의 기단을 일석으로 조성했습니다.

석종형의 탑신 하부는 육각이며, 상부는 원형입니다.

상륜부는 탑신과 일석입니다.

 

기단부는 현등사 사역의 함허 스님 부도 팔각 기단부를 그대로 모방하여 육각으로 간략화하였습니다.

 

전면에 화담당경화탑(華潭堂敬和塔), 후면에 '도광무신시월일립(道光戊申十月日立)이 새겨져 있습니다.

 

보주

 

그런데

여러 자료에 현등사에 개경 3절인 화담 서경덕 徐敬德 (1489-1546)의 부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같은 아호 때문에 네이브 백과사전을 사실 확인 없이 복사하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네이브 지식백과 현등사 소개 마지막 문단

"이밖에도 조선 중기의 뛰어난 도학자인 서경덕()의 부도가 있고, 임진왜란 전에 도요토미[]가 국교 교섭에 대한 선물로 보낸 금 병풍(金屛風) 1점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나 6·25전쟁 때 분실되었다."

 

만월보전, 영산보전

 

수조

 

경화당 부도를 거쳐 부도전으로 향합니다.

 

함허 부도

석등을 갖춘 흔치 않은 부도입니다.

 

우리가 익히 주지하듯 함허 스님 부도는 문경 봉암사와 강화도 정수사에도 있습니다.

 

문경 봉암사

http://cafe.daum.net/moonhawje/DjZP/2249?q=%EB%AC%B8%EA%B2%BD...%EB%B4%89%EC%95%94%EC%82%AC%20%ED%95%A8%ED%97%88

 

강화도 정수사

http://cafe.daum.net/moonhawje/DjZP/3657?q=%EA%B0%95%ED%99%94...%EB%A7%88%EB%8B%88%EC%82%B0%20%EC%A0%95%EC%88%98%EC%82%AC

 

팔각 지대석, 팔각의 2단 기단부, 원형 탑신, 옥개석, 상륜으로 구성

 

팔각 기단부

 

당호

함허당 득통 涵虛堂得通

 

옥개석, 상륜

 

 

석등

무덤 앞 장명등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석등을 갖춘 부도

http://cafe.daum.net/moonhawje/MebK/245?q=%EC%9A%B0%EB%A6%AC%EB%82%98%EB%9D%BC%EC%9D%98%20%EC%84%9D%EB%93%B1%EC%9D%84%20%EA%B0%96%EC%B6%98%20%EB%B6%80%EB%8F%84

 

 

부도전

 

 

 

 보봉당충현지탑(寶峯堂忠鉉之塔).1984년

 

 

당호를 새기지 않앗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경화당 부도가 간략화 되어 기단부가 생략된 부도로, 경화당의 법제자 보월당 혜소 스님으로 생각되지만 근거가 없습니다.

 

 

 

 

 

 

가슴이 터질듯한 느낌

그리고

카타르시스

 

또다시 인연지을 수 있을는지.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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