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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하남시

하남...남한산성 법화사지

by 임병기(선과) 2020.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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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사지

남한산성 벌봉 아래에 위치.

등산하는 사람들에게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답사 목적의 탐방기는 흔치 않으며, 우리 카페에는 노랑나비님과 흔들리는별님이 올린 글이 있습니다.

 

하남 상사창동 연자마(상사창동 346-2)

하남에서 진입하는 법화시 들머리이며, 여기서 마을 안길로 들어가 뒤편 한옥(?) 주변에 주차후 3~40분 소요됩니다.

 

한옥

법화사지 들머리로 들어서면서 찍은 진달래 뒤로 한옥이 보입니다.

 

사지에 도착

 

부도전을 뒤로하고 사지로 오릅니다.

 

법화사

대부분 자료에 실린 법화사지 기록은 동일합니다.

"법화사지는 남한산성 북문 근처의 법화골 벌봉 아래에 위치한다. 법화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충분치 않아 창건이나 폐사 등 자세한 연내력은 알 수 없다. 병자호란 때 ‛법화장군’이라 불렸던 청 태종의 매부 양고리楊古利 장군이 조선의 원두표元斗杓(1593~1664) 장군에 의해 이곳에서 전사하였는데, 훗날 청 태종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절을 짓고 이름을 ‛법화사’라 하였다. 『범우고』와 『중정남한지』에 벌봉 아래, 또는 봉암성 밖에 있다고만 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화사지 들머리 마을 이름인 법화골, 시내인 법화천 등은 법화사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상사창동, 하사창동도 창고를 관리하는 관청이 주둔했음을 유추 가능하여, 남한산성과 법화사, 병자호란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지에 유존하는 석탑재와 사지에 있었던 석조약사여래좌상(다른 절에서 법화사로 옮겨 왔다는 글도 있음)으로 판단하면 조선 중기 이전에 사찰이 창건되었으나 사적은 전하지 않으며,  그 후 병자호란 후 중건하면서 사찰명을 법화사로 명명한 듯합니다.

 

실제로 발굴조사에서도 그러한 사실이 밝혀진 것 같습니다.

"법화사지는 2010~2011년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는데, 조사결과 고려전기 문화층, 조선전기 유구 2기, 조선후기 문화층, 근현대 건물지 2동, 현대 축대 2기 등이 확인되었다. 노출되어 있는 건물지와 축대는 근·현대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고, 그 아래에서 조선후기 문화층과 건물지로 추정되는 조선전기 유구, 고려전기 문화층이 차례로 확인되었다. 또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제작된 기와류와 자기류가 고루 출토되었고, 근대 기의 자기류도 소량 수습되었다. "(경기문화재단)

 

법당지

법화사지 사역은 병풍처럼 큰 바위로 둘러싸인 상단 금당지(?)와 바위 굴 옆 등산로 상의 평탄지, 그리고 부도군이 위치한 하단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상단 영역의 2단 석축은 높지 않으며, 크기로 판단컨대 큰  사찰이 아니라 암자터를 연상케 합니다.

 

법당지 옆 바위굴

수조가 앞에 있어 샘터로 추정됩니다.

 

수조

 

방형 치석재?

용도는 무엇일까요?

 

법화사지의  석탑재, 와편 등의 유물은 대부분 법당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석탑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아주 급하며 상면에 굄은 생략되었습니다.

 

뒤집힌 옥개석(2)

2단의 굵은 층급받침입니다.

 

 

옥개석

 

치석재

 

석탑재

고려시대 후기라는 자료도 보입니다.

 

그런데, 귀가 후 내내 바위굴 앞 방형치석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진 몇 장 더 촬영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가득했지요,

 

감모여재라고 했던가요?

또르님으로부터 법화사지 답사 가는 중이라는 전화를 받고 특별히 사진을 부탁했습니다.

 

방형 바위

좌선대?를 일감으로 떠올렸지만 일반적으로 좌선대는 금당지와 떨어진 곳에 위치합니다.

 

 

치석 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고려초기 산천비보형 석탑 암반 기단을 연상하였습니다.

 

경주 남산 비파곡 2사지

 

법화사지에서 반출된 석불좌상은 하남역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이라는 자료가 보입니다.

하지만, 제 답사기에 의하면 하남역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인 석불좌상은 하남 자화사지에서 발굴된 석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법화사지 석조약사여래좌상(문화재청)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사지에 남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화사지 석불좌상(하남역사박물관)

 

법화사지의 석양 

 

다시 부도전으로 내려옵니다.

 

부도전

법화사지 사역의 하단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종형 부도 3기가 자리합니다.

 

 

부도(1)

육각 대좌 위에 종형 탑신을 보주와 일석으로 조성했습니다.

그런데, 육각 대좌가 탑신에 비해 큽니다.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육각대좌

 

보주

 

 

부도(2)

평원당 선백대사(平源堂善佰大師)

방형 지대석. 육각 대좌, 종형 탑신과 보주 일석

 

탑신에 비해 대좌가 좁습니다

 

평원당 선백대사(平源堂善佰大師)

 

어?

 

매설당(梅雪堂)

대좌와 탑신의 당호가 다릅니다.

 

모르긴 해도

맨 위 부도(1)와  부도(2) 평원당 부도 육각 대좌를 서로 바꾸어 복원한 것 같습니다.

 

보주

연주문 굄위에 탑신과 일석

 

 

부도(3)

OO堂혜도지탑(○○堂 慧道之塔)

방형 대좌 위에 종형 부도를 올렸습니다.

 

탑신 중앙에 희미하게 당호를 새긴 듯 하지만 육안으로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대구에서 새벽 5시 출발

남한산성 법화사지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았습니다.

 

몸은 천근만근 파김치가 되었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하산하였습니다.

 

보람찬 하루일을 끝마치고서......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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