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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영동군

영동...지봉리 석불좌상.심원리 부도.연화대좌

by 임병기(선과) 201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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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영동 읍내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심천면 고당리 국악체험관의 향토민속자료전시관(국악로 18) 실내에 전시 중입니다.

 

 

지봉리 석불좌상

광배와 석불좌상은 동일 부재 여부가 불투명합니다.

설명문에 의하면 지봉리에는 좌상과 광배가 있는 입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상도 마모가 심하여 원형 확인이 어려우며 마치 이스트섬 모아이석상 분위기 입니다.

상호를 지나치게 크게 복원하여 균형을 잃었습니다.

 

 

광배

신광 외연에는 화염문을 새긴 듯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추풍령연 지봉리에서 옮겨 불상으로

민초들은 할아버지 미륵으로 칭하였다고 합니다.

추풍령면 신안리에는 할머니 미륵 불리는 신안리 석조보살입상이 남아 있습니다.

신안리 보살입상은 고려전기 작품으로 전하며, 지봉리 석불입상은 그 이후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자료는 찾지 못 했습니다.

 

 

신안리 석조보살입상

 

 

심원리 부도

심원리 예전마을 부도골에서 이건해왔다고 전합니다.

 

흔치 않은 연봉형 부도이며

이런 작례는 고성 옥천사 월파당 부도, 평택 약사사에서만 유존 합니다.

 

 

고성 옥천사 월파당 부도

 

 

평택 약사사 부도

 

 

심원리 부도

방형 지대석 위에 대좌를 일석으로 치석하였습니다.

탑신은 연봉형 입니다.

 

문화재청에는 조성시기를 고려전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방형 지대석에는 안상을 새겼습니다

대좌의 연잎은 바람에 휘날린 모습으로 간엽의 표현도 이채롭습니다.

상부에는 팔각의 3단 괴임을 조출하여, 부도 하부도 팔각임을 보여줍니다.

 

 

 

탑신

연꽃잎을 겹겹히 표현하였습니다.

 

 

 

 

좀 더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으며,

안내문도 보완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옥외

연자방아. 문석인. 연화대좌

 

 

문석인

처음부터 눈.코.입을 생략한 상일 까요?

 

홀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도 흔치 않습니다.

 

 

연화대좌

3개 연화문이 거칠게 하나의 지대석 위에 새겼습니다

 

복련 위에 중앙은 오목(凹)하게, 좌우는 볼록(凸)하게 치석한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중앙 대좌 뒤에는 2개의 광배홈(?), 좌우 대좌 뒤에는 1개 광배홈(?)이 남아 있습니다.

 

삼존불좌상을 모셨던 대좌일까요?

 

 

 

광배 홈(?)

사진 우측에 뚜렷하게 보입니다.

 

 

 

그나저나

영동군청 홈페이지에는 예전 장소인 영동읍내 부용리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지봉리 석불

소재지:영동군 부용리 379

사진:부용리(?) 옥외 사진

설명문:(현재 난계국악박물관에 소장)

 

심원리 부도(승탑)

소재지:영동읍 부용리 374

지정명칭:지방유형문화재 122호 (문화재청:시도유형문화재 제122호)

사진:옛 옥외 사진

 

문화재청에는

소재지는 바로 표기하였으나 설명문에는 영동 초등학교 교정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재지:영동군 국악로 18 (심천면,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

사진:그사이 두어번 옮겼음에도 영동초교 당시 옥외 사진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설명문 발췌: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영동초등학교 내에 있는 이 부도는 전체가 마치 연꽃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원래는 심원리의 옛 절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문화재 안내문 오류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답사객이 엉뚱한 곳으로 찾아가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사족을 달았습니다.

 

2019.04.12

 

아래는

2007년 글

 

 

영동. 여름날 피서지. 가을날 만추의 서정에 만족해야할 고을이다.

2007년 1월 문화유산 답사객 시각으로는...

 

지독히 인내하며 찾았다. 안내문은 고사하고 향토민속자료관을 아시는 분도 안 계셨다.

포기하고 난계국악당을 들렸더니, 향교와 함께 같은 구역에 위치해 있다.

 

 

추풍령 지봉리에 있던 석불은 도로 확장으로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이건했다. 

뒤쪽에 입불상이, 앞쪽에는 좌불상 있었으나 입불상은 임진왜란 때 머리가 멸실,대좌에는 연화문 조각되어 있고, 좌불도 우측 팔이 절단 되었다.


 

얼핏보면 민불처럼 보이지만 고려말 조선초의 석불로 알려져 있다.

인자한 모습? 달관한 무념무상의 얼굴?


 

심원리 부도골에 있었다고 한다.

지명으로보아 절집이 있었던 동네인 모양이다.

 연꽃봉우리가 겹겹으로 쌓여진 부도다.

이런 부도는 유례가 찾기 힘들다.

혹 비구니스님의 부도가 아니었을까? 

 
금방이라도 꽃잎이 펼쳐질 듯
초파일 제등행렬에도 어울릴 듯
어떤이의 발원이었는지 고운 님 모습이 그리웁다.

 

 

대좌에는 둥글게 연잎이 새겨져 있다. 일반적 양식인 복련과 다른 모습이다.

 

200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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