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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영동군

영동...신항리 석조여래 삼존입상

by 임병기(선과) 201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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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2007년 글로 대신힌다

 

 

 

 

 

 

 

 

 

 

 

 

 

 

 

 

 

 

 

 

2019.04.12

 

아래

2007년 글 

 

신항리는 영동 IC 진입하여 첫사거리에서 직진하면 우측에 신항리 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풍수형국이 노루를 닮아 노루목마을로 불리는 신항리 마을 입구에 삼존불은 골맥이 수호신처럼 동리를 지키고 계신다.

 

오랜 옛날 석은사 절터였다고 하지만 자취는 물론이고 수습된 유물도 전해오지 않은 철저히 폐사된 절집이다.

그래서인지 최근까지 동민들이 스님을 대신해서 동제를 올렸으니 미륵할머니 당산할머니로 섬겨진 듯 하다.

 

하지만 불교미술사적으로는 편년이 삼국말 통일초까지 거슬려 올라갈 수 있는 은행알 눈, 도톰한 볼, 삼도가 없는 모습이다.

경주남산 배리 삼존불, 감실 부처에서 보이는 삼국시대 불상 특징도 보이며, " 태안마애삼존불상과 서산마애삼존불상 등 7세기 석불상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7세기 후반 내지 8세기 초기의 작품으로 크게 주목받는 삼존불상"(영동군청 홈)으로 알려져 있다. 

 

 

요즈음 시대 물질문명의 만연으로 정신은 황폐화되고, 원로가 어른이 공경받지 못하고 사는 현실이 안타깝다.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고?

고향마을 앞에 모셔진 삼존불을 보고 자란 세대들은 부자가 아니라도 정신의 풍요로움은 누리고 살지 않을까?

 

문명의 이기에 노예가 되어 친구도 없고 고향도 없는사람들의 마음 속 안식처는 어딜까?

고향. 고향마을 입구 당산, 미륵불이 있었기에 늘 같이 놀던 친구가 그립고 언제라도 반겨줄 대상이 있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에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비록 한 세대 군사문화에 젖은 정치적 목적 때문에 천년넘어 계승되어 온 민속신앙이 파괴되고 불타버렸지만 가슴속에 내연(內燃)하고 있는 불씨를 다시 피우고 싶은 것은 나만의 고리타분한 과거로의 회귀인지......
 

 

전각에 모셔진 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협시 보살상을 배치한 삼존불이다.

 

주불은  소발, 작은 육계, 둥글고 도톰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법의는고식의  통견,  띠 매듭이 보이며 옷주름선은 오른손 아래에서 세가닥의 음각선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왼손은 여원인,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한 통인의 수인이다. 광배는 두겹 원형두광이며  연화문과 굵은 구슬문이 있다.

 

삼면보관을 쓴 보살상은 각각 손으로 지물을 감싸 잡거나 합장한 불분명한 자세이다. 

오른쪽 보살이 더욱 애교(?)가 많은 듯 어깨에 기대어 있다고 말했더니 동행인은 동의를 표했는데, 어떤 자료에는 이방인의 모습에 낯을 가려 엄마  등뒤로 숨은 수줍은 아이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7~80 각도로 기울어진 자연석 화강암이 비바람을 막기도 했지만 인공 전각의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어느님이 한마디로 표현한 아랫 문장을 읽는 순간 나의 글은 씰데없는 뱀다리에 불과했다.

 

" 어머니를 따라 나들이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같아 정겹고 따뜻하다."

 

200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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