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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음성군

음성...미타사 석조약사여래좌상

by 임병기(선과) 201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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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사는 3번 째 입니다.


첫번째는

마애여래입상만 뵙고 발길 돌렸습니다.


두번째는

석불좌상이 삼성각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대웅전 삼존불께 예배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약사전에 봉안된 것을 인지하였기에 동선에 포함시켰습니다.

 

인연은

다가오는 것이지. 엮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신 부처님 입니다.

 

 

오후 4시 무렵

약사여래좌상이 모셔진 약사전에서 비구니스님의 예불이 진행중입니다.

답답했습니다.


귀가시간을 고려하면 그리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마음 초조했습니다.

역시

인연이 아니구나.


마침

주지스님이

중정으로 나오셔서 대구에서 왔으며 자초자종을 말씀드렸더니  금방 끝난다고 하셨습니다.


독경은 계속되고


긴 시간이 경과 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요사에서 큰 목탁의 목탁음이 경내에 두어번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요사 문이 열리며 주지스님께서 약사전 예불이 끝났다며 참배하라고 일러줍니다.


아~

큰 목탁음은 저를 위한 주지스님의 배려이었습니다.


약사전

의례를 마친 비구니스님께서도

들어오시어 배례해도 괜찮았는데 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만발한 진달래 보다

미타사 스님의 마음이 더더욱 아름답다고 느낀 순례이었습니다.


 

맷돌


 

약사전


 

석조약사여래좌상

본래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 뵌 제눈엔

약기를 든 약사여래이십니다.


 

불두와 두손은 후보하였고.

삼도가 뚜렷하며 불신이 긴 편 입니다.


통견의 법의, 법의자락은 다소 두꺼우며, 승각기는 매듭으로 마감하였습니다.

불신에 비해 무릎이 약하게 보이며, 길상좌를 취했습니다.

두 무릎 사이로 흘러내린 습의자락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고려초기 철불의 영향을 받은 불상으로 고려중기 이전으로 보고 싶습니다.


 

민초들은 약사여래불로 모셨다고 전합니다

(2012년 두 번째 순례 후 올린 글을 가져온다.출처는 한국전통관광사찰정보로 추정된다)


"삼성각 내부에 봉안된 미타사의 원불로 이 부처님께 기도하면 병고액난을 소멸하거나 아들을 얻을 수 있다 하여 음성지역에서 영험 있는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이 불상은 비산리 주민들에게 영험있는 약사불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본래 석불은 명안스님이 미타사로 오기 이전 절에 있던 고불로서 폐허가 된 절터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64년 무렵 충주에 사는 한 무녀가 현몽을 했다면서 미타사 부처님을 모셔가길 원해 어느날 밤 몰래 장정들을 데리고 불상을 모셔가려 하였다. 무녀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불상을 옮기기 시작하였는데, 불상이 마을 입구에 이르자 꼼짝 달싹 안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지금까지 산길을 잘 내려오던 불상이 움직이지 않자 장정들은 의아해하며 안간힘을 쓰며 불상을 움직였다.   

 

하지만 때마침 해가 뜨자 장정들은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이 일을 내일 다시 하기로 하고 불상을 산속에 숨기고 마을을 떠났다. 그런데 그날 밤 비산리 마을 주민들 꿈에 석불이 현몽하여 도적들이 나를 산밑에 두고 도망갔으니 다시 절터로 다시 옮겨 달라고 한 것이었다. 이튿날 잠에서 깬 주민들은 전날 밭 꿈 이야기를 하며 혹시 미타사 불상에게 변고가 생기지 않았나 해서 급히 절터로 올라갔다. 절터로 오르던 중 마침 인근 공터에서 무녀와 장정들이 불상이 옮기고 있자 마을 주민들은 합심하여 불상을 지켜 내고 다시 옛 절터에 불상을 안치하고 주변을 정화하여 비산리의 원불로서 봉안하게 된것이다.

 

불상은 고려후기 불상양식을 가진 고불로서 머리는 민머리고, 정수리 부근에 중앙계주가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굴과 손은 마모가 심한 것을 약 20년 전 음성읍 소여리에 사는 김경직(金景職)이라는 사람이 시멘트로 복원한 것으로, 상호의 세부표현은 알 수 없지만 둥글고 풍만한 인상이다. 옷은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의로 옷에는 평행 계단식의 무딘 옷주름이 표현되어있으며, 수인은 후대 보수 한 것으로 오른손은 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무릅에 받쳐 약항아리와 같은 보주를 들고 있어 이 불상이 약사여래상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신체에 비해 상호가 큰 편으로 무릅이 작은것이 어색하지만 고려시대 석불양식을 계승한 약사여래좌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소중한 휴무일를 포기하고

함께 동행, 안내해 준 푸른바다(조용민)님에게 거듭 고마움을 전합니다.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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