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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광양시

광양...중흥산성 삼층석탑

by 임병기(선과) 2018.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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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산성 삼층석탑

 

옥룡사지 답사 후 중흥산성 삼층석탑을 건너 뛸 수는 없지 않은가?

일본으로 반출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석탑이지만, 함께 태어난 쌍사자석등은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국립광주박물관 로비에 있다.

 

 

사라지고 없는 석탑 모서리의 4마리 사자상은 어디에 있을까?

예전 답사 때에 스님게서는 일본으로 반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립광주박물관

 

 

삼층석탑

2층기단의 삼층석탑으로, 문화재청 자료에는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등재되어 있다.

우리카페 청아님은 10세기 중반 후백제 계열의 석탑으로 비정한다.

 

 

배례석

정면에는 안상 2개, 측면에는 1개가 있으며, 상부에 연화문은 조식하지 않았다.

 

 

지대석

장대석 6매로 구성

 

하층기단

저석과 중석이 일석으로 치석

 

 

하층기단

양우주와 탱주 3주를 조출하였다.

8세기 통일신라 전성기에 출연하는 하층기단 탱주 3주 양식이 100년이 지난 서라벌에서 먼 광양에서 재현되었다.

 

갑석에는 약간의 물매가 있고, 내림마루를 새겼으며, 상부에 각호의 2단 괴임을 조출하였다.

 

 

상층기단 중석

양우주를 모각하였으며, 중앙 1개 탱주로 구획한 후

공양상, 사천왕상,인왕상을 모셨다.

 

서면 사천왕상

생령좌. 동방지국천.북방 다문천

 

 

남면 인왕상

흄금강. 아금강

 

 

북면

공양보살상

연화대좌가 흔치 않은 작례로 보여지며, 천의 자락이 생략되었다.

 

 

 

동면 사천왕상

남방 증장천.서방 광목천

 

 

무엇에 홀린듯 상층기단갑석 사진이 없다

 

2매석으로 결구, 약간의 물매가 있으며, 하부에 부연을 조출하였다.

상부에는 2단의 괴임을 조출하였다.

 

처마 측면과 모서리 홈은 금속제 장식품의 흔적으로 달넘새 님으 "정공"이라고 하였다.

 

 

탑신부

일매석으로 조성되었으며,양우주을 새기고 사방불을 봉안하였다.

 

남면.석가 여래좌상

 

 

서면. 아미타 여래좌상

 

 

북면. 미륵불

유일하게 입상으로 주존불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미륵불을 주존으로 모셨을까?

 

 

동면.약사여래좌상

 

 

옥개석 층급은 전층 3단, 절수구를 표현하였다.

처마 전각이 반전은 경쾌하며, 모서리에는 풍탁홈이 남아 있다.

옥개석 물매는 깊지 않으며, 상부에 각형 1단괴임을 조출하였다.

 

상륜부

결실된 상태이나, 예전 답사시에 스님께서 "요사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전 답사 때는 석조지장보살과 석불좌상을 뵈었었다.

하지만

그 후 석불좌상은 도난 되어, 텅빈 절집에서 지장보살을 뵙기도 여의치 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쌍사자 석등이 돌아 오고

석탑 모서리의 4마리 사자상이 제자리를 찾을 날이 언제일까?

 

잊혀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인데.

 

2018.06.13

 

아래글은

2008년 글 입니다.

 

 

 

농부님 텃밭도서관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선새벽에 중흥사를 들리지 않고서는 오늘 동선을 고려시 다시는 발걸음 힘들 것 같았다. 이른 시간 산사. 그 분위기만으로 내마음은 오금을 펴지 못하고 압도 당했다. 말없이 가벼운 기침으로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셨던 우리들의 어르신처럼 그렇게 중흥사는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통일신라말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중흥사는 여느 남해바닷가 절처럼 임진왜란 때  폐사된 이후 이름조차 되찾지 못했으나   1963년 하태호(스님)에 의해 재 중건되어 오늘날의 규모를 갖추었다. 대웅전에서 계시던 스님이 나오셔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선암사로 출가한 스님은 사찰 소유의 산을 관리할 소임을 위해 동국대 입학 졸업후 여의치 않은 환경으로 중흥사로 오게 되었다. 근래까지 태고종 소속 사찰이었으나 현재는 종단에 편입되지 않은 듯했지만 더이상 질문은 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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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가 우리에게 회자되는 것은 우리나라에 3기만 전해지는 영암사지. 법주사, 그리고 중흥사 태생으로 전해지는 쌍사자 석등 때문이다. 사진에 보이는 석등은 복제이며 현재는 광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석탑은 현재 기준으로서는 전각과 배치가 맞지 않아 스님께 여쭈었더니 뒤로 보이는 저수지가 금당터라고 한다.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그렇다면 석등 위치도 틀렸다고 말씀드렸더니 인지하고 계셨다. 

탑은 2 기단 3층으로 장엄성에 장식성을 가미한 신라하대 탑의 특징을 보여주며 조각된 상들도 뚜렷하다. 탑신에 비해 기단부가 너무 커 보이지만 그로인해 더욱 안정감이 든다. 스님께서는 일본에서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행방이 묘연한 석사자 4구와 십이지상이 탑지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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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단 탱주를 경계로 면석을 둘로 나누어 전면에는 인왕상을,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을, 뒷면에는 보살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금강문, 천왕문이 공존하며 불법 수호와 사악한 기운을 차단하고 있다.

 

상륜부에 노반, 복발(?)이 남아 있었으나 어느날 밤 도둑이 들어 떨어떠렸지만 파손은 되지않아 스님이 별도로 보관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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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례석, 안상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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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몸돌의 각 면에는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여래상이 보이고, 지붕돌은 받침은  3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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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상 


광주박물관 / 중흥산성쌍사자석등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다. "이 석등은 간주(竿柱) 대신 쌍사자(雙獅子) 조각을 사용한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양식에 속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조법(彫法)과 청아(淸雅)한 조형이 하얀 석질(石質)과 아울러 우아한 기품을 보여 준다.

4각형 지대(地臺) 위에 8각 복련석(伏蓮石)은 각면에 일반형에서 벗어난 안상(眼象) 1구(區)씩을 조각하였고, 단판(單瓣)의 연화(蓮華)가 윗면을 장식하고 있다. 두 마리의 사자는 또 하나의 조그마한 연화석(蓮華石) 위에 버티고 서서 서로 가슴을 맞대고 머리를 들어 16판(瓣)의 앙화석(仰華石)을 받치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한 돌로 되어 있다.

사자는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골격이나 머리털이 잘 나타나 있다. 얕은 8각의 화사석(火舍石)에는 4면에 4각형 화창(火窓)이 뚫려 있고, 8각의 개석(蓋石)도 전각(轉角)마다 아름다운 반전률(反轉率)을 보여 준다.

꼭대기에서는 밑에서 연화(蓮華)를 조출(彫出)하여 연뇌형(蓮뇌形)으로 된 보주(寶珠)를 얹어 놓았다. 장식이 번잡하지 않아 간명(簡明)한 중에도 사실적인 수법이나 경쾌한 조형이 이 석등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이 석등은 1918년 원위치를 떠나 서울 경복궁(景福宮) 안에 옮겨 놓았었는데, 1959년 당시의 경무대(景武臺)로 옮겨 놓았던 것을 1960년에 덕수궁(德壽宮)으로 옮겼다가 다시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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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가 가난한 절집 살림살이 때문이라고 판단하여 슬쩍 여주었더니, 단청 성분이 천연재료가 아닌 화학성분이라서 오히려 목재부재 부식만 가중시킨다고 했다.

 

장엄과 장식, 부재 보호라는 단청의 기능이 외면받는 현장을 목격하였지만 편의만 추구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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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에 봉안된 석조 지장보살상. 드물게 보이는 반가상 보살로 두건을 쓴 모습으로 지장보살임을 알 수 있다.이런 모습의 지장상은 조선 초기에 더러 보이는데 강진 무위사 아미타불상 협시지장보살상이 같은 반가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왜 무위사에서 뵙지 못했을까? 극락전에서 사진 찍다 혼줄이 나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모양이다. 짐승처럼 공양은 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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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듯, 부끄러운 듯, 둔중하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우리 할머니처럼 무척 친밀감이 든다. 

 

문득 경주 남산 감실부처님이  보고싶은 까닭은?

 

 

 이른 아침 불쑥 들어선 객에게 감로법을 주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불하십시요.()()()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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