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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광양시

광양...정병욱 가옥

by 임병기(선과) 2017.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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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가옥

진월면 망덕길 249. 한적한 망덕포구에 위치한 가옥이다.

 

1925년 건립된 건물로 윤동주의 유고를 보존했던 정병욱의 집이며,  정병욱은 훗날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한 장본인이다. 내가 문학적인 감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전 모티비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을 보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 남도답사길에 들렸다.

 

"정병욱 조부인 정상철은 1930년 8월 28일 망덕에서 조선탁주와 조선약주를 허가 받아 양조장과 정미소를 함께 운영했다. 진월면 오사리 돈탁마을 거북등에서도 양조장을 운영했다.이후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외망마을로 온 정남섭 전 진월면장은 2년 후인 1932년 양조장 운영권을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아 경영수업을 쌓는다. 이때 정병욱 교수는 11살로 진정공립보통학교를 수료하고 하동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한다. 1940년 연희전문학교를 입학한 정병욱 교수는 방학때면 아버지가 있는 진월을 찾아 섬진강 나루에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의 육필원고가 진월 외망마을에서 보관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본 것은 윤동주-정병욱 두 집안의 운명적인 인연이 오늘을 있게했다.

 

윤동주는 일제에 체포되기 전 자신의 원고를 정교수에게 맡겼다. 정교수는 43년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어머니에게 원고를 부탁했고, 어머니는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원고를 묻었다. 정교수가 학병에서 살아 돌아와 원고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정교수는 48년 이 원고와 당시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이 가진 원고를합쳐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했다. 그 뒤 원고를 더 모아 중판·3판을 냈다. 오늘날 윤동주가 한국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이 된 것에는 정교수의 역할이 너무 크다.”


이는 윤동주 원전 연구서를 출간한 한 학자의 말이다.
이렇듯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떠나며 자신의 육필원고를 연희전문 1년 후배이자 학교 기숙사와 인근 하숙집 생활때 룸메이트였던 정병욱 교수에게 맡겼다. 이후 정교수는 일제강점기 징병돼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일제에 발각되지 않도록 집 마루 밑에 잘 보관”을 당부드렸다. 또한 “만에 하나 내가 전장에서 죽을지라도 해방후 이를 발간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이후 정병욱의 여동생 덕희는 윤동주 남동생인 윤일주 교수와 결혼해 윤동주의 제수가 돼 양 집안은 사돈으로 6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이같은 자료를 목숨처럼 지키고 관리했기에 오늘의 윤동주가 가능했다. 죽은 다음에 시인으로 불린 윤동주는 진월면 망덕리 외망마을 23번지에서 그렇게 부활했다"...광양신문에서 발췌

 

 

1925년 세운 가옥으로 일제강점기에 정미소, 양조장을 운영했던 건물이다.

안타깝게도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아직 유고를 보관했던 마루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정병욱 교수

 

"이 가옥은 윤동주 유고를 보존했다는 역사적 의의도 크지만 정병욱 교수가 기거하던 가옥이라는 점에서 건축적.국문학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병욱은 1948년 1월 30일 윤동주 유고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한 장본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앞서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국문학산고’, ‘시조문학사전’, ‘구운몽 공동 교주’,‘배비장전.옹고집전 교주’, ‘한국고전시가론’,‘한국의 판소리’ 등을 간행해 우리나라 국문학계의 태두라고 불리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 74년 판소리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문예진흥원 전통예술지원 심사위원과 남원 춘향제 전국명창대회 심사위원, 전국민속경연대회 심사위원 등의 공로로 3.1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문학계 거장으로 각인돼 있다."...광양신문

 

 

1960년대 가옥

 

 

하늘과바람과별과 시...윤동주

 

"윤동주 유고시집으로, 초간본은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하였다. 정지용(鄭芝溶)의 서문과 강처중(姜處重)의 발문 및 유령(柳玲)의 추모시와 더불어 「서시(序詩)」를 포함한 31편의 시가 3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문과졸업기념(1941)으로 자신이 고른 시 19편을 77부 한정판으로 출판하기 위하여, 우선 자필로 3부를 만들어 이양하(李敭河)와 후배 정병욱(鄭炳昱)에게 각각 한 부씩 주고 한 부는 자신이 간직하였다고 한다. 그 때 이양하가 일제 검열의 통과 여부를 걱정하여 시집 출간을 만류하였기 때문에 보류되었던 것을 광복 후 정병욱의 주선으로 유고 31편을 모아 처음 간행하였다.

원래 이 시집의 제목은 ‘병원(病院)’으로 붙일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정병욱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의 세상이 온통 환자투성이’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제1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에는 「자화상」·「소년」·「눈 오는 지도(地圖)」·「또다른 고향」·「별헤는 밤」 등 18편, 제2부 ‘흰그림자’에는 「흰그림자」·「사랑스런 추억」·「쉽게 쓰여진 시」 등 5편, 제3부 ‘밤’에는 「밤」·「유언」·「참회록」 등 7편이 각각 실려 있다.이후 윤동주의 10주기를 맞아 1955년 정음사에서 간행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아우 윤일주(尹一柱)의 「선백(先伯)의 생애」가 첨가 수록되었다. 1968년 정음사에서 간행한 증보판 시집은 시 66편, 동시 22편, 산문 5편이 5부로 나뉘어 실려 있고, 백철(白鐵)의 「암흑기 하늘의 별」, 박두진(朴斗鎭)의 『윤동주의 시』, 그리고 장덕순(張德順)·문익환(文益煥) 두 사람의 글이 회고 형식으로 실려 있고 연보가 붙어 있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윤동주의 뿌리 깊은 고향 상실 의식과, 어둠으로 나타난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 및 이 모두를 총괄하는 실존적인 결단의 의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윤동주의 작품 경향은 어둠의 색채로 물들어 있고, 밤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을 정도로 절망과 공포,
그리고 비탄 등 부정적 현실이 팽배하고 있다. 이는 윤동주의 현실 인식이 비극적 세계관에 자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불변하는 것에 대한 이상과 염원은 일제 암흑기를 이겨나가는 예언적인 시인의 모습을 나타내어준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가 부족한 느낌인데 그게 뭘까?

멀리서 찾아왔건만...

 

20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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