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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화천군

화천...계성사지(3) / 바람에 흩어진 풍탁음

by 임병기(선과) 2018.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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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성사지

사찰이 운영되던 그시절, 계성사에는 어떤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을까요?

가난한 절집 살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마음 넉넉한 스님이 계셨을 것 같습니다.

 

 

봄날이면

산아래 마을 이뿐 낭자 나물 바구니 옆에 끼고 스님을 찾았겠지요.

 

 

그시절을 되내이게 하는 편린, 조각.

 

 

육각 지붕돌

계성사에는 육각이 주류입니다.

 

육각 석등

육각(?)부처님 방석자리...

 

석등 또는 부도 옥개석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석등은 아닐 겁니다.

계성사를 대표하는 육각 석등이 버젓하게 세워진 금당 앞에 아류를 모실리는 없으니까요.

 

 

이제

부도 옥개석으로 부르겠습니다.

골이 깊은 낙수면, 모서리에는 귀꽃이 피었습니다.

 

아~!

귀꽃 아래 풍탁 홈이 보입니다.

 

부도 옥개석에 풍탁?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의 귀에는 은은한 풍탁음이 사지를 맴돌고 있습니다.

 

대좌, 탑신

상륜부의 보주도 멀리 만행길에 올랐습니다.

 

 

외로움

혼자라는 서글픔을 달랠 길 없을까요?

 

(2014.08.07)

 

화천 민속박물관

계성사지에 외롭게 남아 있는 옥개석의 피붙이로 추정되는 부재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보주, 육각대좌, 탑신, 육각대좌

 

대좌로 마루어 2기 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4.08.07)

 

탑신

원구형 양쪽에 받침을 표현한 특이한 유형입니다.

 

옛자료에 의하면

탑신 상부에는 사리공이 있었다고 합니다.

 

(2014.08.07)

 

보주와 대좌

육각대좌 각면에는 안상이 조식되어 있습니다.

 

보주는

앙련인지, 화염보주인지 사진상으로 불분명하며

불행히도 2014년의 기억은 떠난지 오래입니다.

 

(2014.08.07)

완전체가 쉽게 그려 집니다.

계성사지에 남아 있는 옥개석과 더불어...

 

계성사지 부도

옛선인의 유산기에 등장합니다.

1691년. 계성사는 거의 폐사에 가까운 절이었으며 3~4명의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카페 여름날님이 올려주신 김수증의 한계산기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김수증, 「한계산기(寒溪山記), 『곡운집(谷雲集)

여행 기간:169156~515

 

5월 14.

맑았으나 저녁에는 흐리다가 비를 뿌렸다. 일찍 출발하여 낭천()의 정()씨 집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원천(原川)을 지나 서쪽으로 돌면서 시냇물을 따라 30리를 가서 계상사(繼祥寺)에 이르렀다. 고탑(古塔)과 부도(浮屠)가 있으며. 남아 있는 스님은 3~4인이다. 처음에 지은 암자와 요사채는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다. 어지럽게 잡초가 뜰을 덮어 앉을 만 한 땅도 없다.

 

노승 언흘(彦屹)은 지난번 신수사(神秀寺)에서 본 적이 있다.

한계산의 대승암(大乘菴)을 유람하고 봉정암과 곡연(曲淵)을 두루 돌았기에, 그 승경(勝景)의 풍치(風致)를 말할 수 있어서 조금 내 마음에 맞는다. 초막(草幕)이 매우 누추하나 향을 피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은 80리를 갔다.

 

***계상사(繼祥寺):계성사를 이릅니다.

 

 

골골로 흩어진 풍탁음

계성사 옛터에 다시 불러모아 세워 일으키는 날 

 

스쳐간 많은 인연들이 찾아 오겠지요.

달빛이 교교히 내리는 밤이면...

 

201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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