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은장로비는 옥룡면 동곡리 501 부근 '바위산장' 산장 식당 건너편에 있다.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식당에는 일단의 관광객의 유희로 왁자지끌하다. 방 손님들 보다 옥외 평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신발도 벗지 못하고 계곡을 건너 접근하였다.
회은 장로비.승려 회은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한국금석문종합영상시스템에서 발췌한 비문이다.
대사의 법명(法名)은 응준(應俊)이요 속성(俗性)은 기씨(奇氏)며 남원(南原) 사람으로 회은은 호(號)이다. 자식이 없자 어머니 윤씨(尹氏)가 지리산(智異山)에서 칠성(七星)에게 기도하는데 꿈에 이상한 빛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장로를 임신하였다고 한다. 1633년 봄 장로의 타고난 기질로 입임성(笠巖城)의 장수로 임명되었으며, 1636년 청(淸)나라의 침입 때 의병(義兵) 승대장(僧大將)으로 임명되어 장로가 참모로써 군의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1637년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승진하여 양호도총섭(兩湖都摠攝)에 제수 되었다.
1647년 봄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팔방도총섭(八方都摠攝)으로 제수되었으며, 1651년 신유(辛酉)년 겨울 조정은 또 남옹성(南甕城)을 수리 건축하였다하여 그 공을 더욱 가상히 여겨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진시켰다. 경자(更子)년 겨울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진하여 승대장(僧大將)이 되었으며 1663년 계묘(癸卯) 여름 특별히 정헌대부(正憲大夫)로 더해졌다. 군무(軍務)에 간여하여 헌신한 것이 30여 년이었으며, 많은 공을 세워 재물도 많았지만 매번 친척 친구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들에게 모두 보시(布施)를 하였다. 1671년 봄 3월 15일 성부산(星浮山)의 천계봉(天桂峯) 아래서 졸(卒)하였다. 세수(世壽) 86년을 보냈으며 좌하(坐夏) 71세였다.
글과 글씨는 처능이 지었으며, 비문에 의하면 순찰사 박신규와 광양 현감 안시익이 절의 승려들과 함께 세웠다고 하며, 연대는 숙종 3년(1677)이라 적고 있다. 비의 이름을 승려의 법명이 아닌 회은이라는 호를 쓰고 있는데, 이는 승려로서라기 보다는 승병대장으로 그 활약이 더욱 더 두드러졌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장로’라 칭하여 그의 덕을 높이 평가하고, 순찰사나 현감이 앞장서서 비를 세웠다는 점에서 승려가 낮게 평가되던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모습이다.
전면 상부 후면 받침돌
귀부 전면.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놓고 서로 다투고 있다.
귀부 후면. 용, 게, 개구리, 자라 등의 동물이 표현되어 있다
비석 건너편 바위산장 식당이다. 주차장이 넓어 잠시 주차 가능하다. 이 식당에 큰 수조. 석탑 옥개석이 주차장 부근에 있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 했지만 놓치고 왔다. 우리님들 답사시에 참고 하길 바란다.
2014.07.17 문화재청 자료를 발췌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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