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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완도군

완도...청산도 부흥리

by 임병기(선과) 2017.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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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리 전경

돌담. 우물.숭모사. 구들장논을 만날 수 있는 동리이다.

 

구들장 논을 들릴려고 하였으나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는 넘들 때문에 거의 육상 경보 선수 마냥 둘러보고 나와야했다.

 

 

부흥리復興里

"부흥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598년 11월 18일 노량진에서 왜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자 당시 부하였던 咸陽朴氏 而弘氏가 1600년경(병자생 16세 老通政大夫)강진에서 입도하였으며, 이후 김해 김씨, 제주 양씨, 강릉 유씨, 평강 채씨 등이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높은산 깊은 곳이라하여 이 지명을 따서 안꼴이라 불렸으나 행정관할은 지금의 신풍리와 구성리에 속하여 이곳의 거주자들로부터 텃새를 심히 받아 다시 마을 이름을 변경하여 흥할(興) 마을이라하여 復興里라 명명하여 里名으로 부르고 있다"...완도군청 홈

 

 

 

마을 공동 우물

여성문화가 창출되고 전승되는 공간

시어머니 욕 경연장소이었다.

 

 

위는 샘

아래는 빨래터 이었을 것이다

 

 

숭모사崇慕祠

김류(1814~1884) 선생을 배향 하는 사당이다.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사량(), 호는 귤은재()로 여수 지역의 대표 유학자이다. 고려 말 경주김씨 김상촌의 후손으로 여수시 삼산면에 있는 거문도()에서 태어났다.일찍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기정진()에게 학문을 배웠으나, 장성하였을 때는 벼슬을 마다하고 자신의 고향인 거문도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실학자로 이름이 높았고, 시에도 뛰어났다.

 

1885년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이곳을 출입하였던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김류 선생의 문집과 후학들을 만나보고 감탄하여 이곳을 문장가가 많다는 의미의 '거문()'이라고 명명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였다. 이후 이곳을 거문도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그의 높은 학식을 가늠케 한다.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숭모사()에 배향되었고, 문집으로 《귤은재집》이 전한다.

 

김유 선생이 타계하자 거문도 제자들은 낙영재에서 매년 9월 9일 제를 지내다가 해방 후 고도에 새로 귤은당을 지어 그의 정신을 기려오고 있다. 청산도에서는 1885년 제자인 김낙인 외 43명이 뜻을 모아 지금의 위치인 청산도 부흥리 호은제터에 숭모사를 세우고 매년 음력 3월 3일에 제를 지내고 있다. 

 

기정진(奇正鎭,1798~1879)

조선 후기의 학자. 송대()의 철학자 주돈이·장재()·정이·주희() 등의 성리학을 독자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대성하였다. 서경덕()·이황()·이이()·이진상()·임성주()와 함께 성리학의 6대가()로 일컬어진다.

 

 

철옹성 같은 담장

까치발로도 내부 관찰은 역부족이었다.

2기 돌기둥의 용도가 궁금했었는데...

 

 

 

 

 

 

 

 

 

꼭 다시 한 번 더 찾아와서 마을 투어를 하고 싶다.

나홀로...

 

 

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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