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완도군

완도...중암사지 부도

임병기(선과) 2017. 2. 1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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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 김양제 고택 후원의 중암사지 부도 답사였다.

예상대로 동행한 친구들은 전혀 관심 밖의 분야이어서 한가한 완상을 허용하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암사지

"오봉산 상황봉 동쪽 계곡 중턱에 위치한 장좌리사지는 대야저수지 진입 전 완도수목원 임도를 따라 약 2km 정도 올라간 후 고도 210m 정도에서 임도 좌측 골짜기를 따라 약 100m 정도 올라가면 확인할 수 있다. 기존조사에 따르면 본 사지 위에는 관음사지가 위치하고 있어, 관음사지를 윗절터로, 중암사지를 아랫절터로 불렀다고 한다. 추정사지에는 현재 대나무가 빽빽하게 조성되어 있고, 그 평탄지에서는 석축과 맷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지에서 옮겨진 것으로 전해지는 승탑 1기가 있다."...문화재청/한국의사지 발췌

 

 

완도군청 홈페이지에는 향토유적 목록이 보이지 않지만 인터넷자료에는 "보길 중앙사지 팔각부도(향토유적 제6호.2003.11.24)"로 검색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사지에는 향토유적 5호로 기록하고 있다.

 

완도군청 홈페이지 설명을 보자

"이 부도는 중암사지팔각부도라고 부르며, 삼국시대에 팔각도당식(八角圖堂式)을 기본으로 하나 정형에서 벗어나 신라 말 또는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고승 혜일대사의 제자들이 세운 탑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완도읍 장좌리 산기슭에는 신라 말 장보고 장군(828년)의 청해진 설치당시 건축된 것으로 전해지는 법화사지가 있으며 거기서 상황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중암사와 관음사가 있다.

이 부도는 일부 석축중 흔적이 남아있는 중암사지에 있었던 것을 이곳 정원에 옮겨 보존해오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팔각원당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정형에서 벗어나며, 고려시대 스님인 혜일대사의 제자들이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도의 총 높이는 280cm이고, 하대석․중도석․상대석과 탑신부의 형태는 모두 육각형이다."

 

군청홈페이 내용의 진위는 말하지 않고, 나의 견해를 이야기 하겠다.

 

첫째. 부도지정명칭 중 팔각이 아니라 육각이다. 일반적으로 부도 명칭은 근자에 승탑으로 통일(개인적으로는는 부도를 고집한다) 되었다. 그리고 부도 탑신의 형태 즉,팔각, 육각,석종,구형 등을 지정명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보길 중암사지 승탑"이 바른 명칭으로 생각된다.

 

둘째.홈페이지 설명중 "팔각도당식(八角圖堂式)"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팔각원당(八角圓堂)의 오류로 판단된다.

 

세째."신라 말 또는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고승 혜일대사의 제자들이 세운 탑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어떤 근거와 자료를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나말여초에 나타나는 작례의 부도가 아니어서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중암사지 부도(지금부터는 개인적인 시각으로 칭한다)

육각의 3단지대석(이 부재는 사실 혼란스럽지만 비슷한 작례를 가져오겠다)

6각의 탑신괴임, 육각 탑신,6각 옥개석과 상륜부로 구성된 부도이다. 즉 기단부가 결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이도 우리나라에서 하늘로 날듯한 옥개석이 처음으로 보이는 부도가 있다.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의 감로탑에서 출현하는 양식이다.

또한 감로탑에는 탑신아래에 2단 괴임도 조성되어 있어 괴임이1단으로 줄어든 중암사지부도는 최소한 그 이후의 부도로 보면 어떨까?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 감로탑

 

 

감로탑의 2단 탑신괴임

 

 

감로탑 옥개석

 

3단의 방형 지대석으로 조성된 송광사 청진국사 부도를 보자.

 

 

송광사 청진국사淸眞(?∼1252) 부도.

방형 3단 지대석. 기단부(하대석,중대석,상대섯).탑신,옥개석. 상륜부(일부 결실)

 

 

중암사지 부도 지대석,1단 괴임,탑신

 

 

지대석과 괴임

 

 

괴임

 

 

지대석

 

 

탑신과 옥개석

 

 

탑신

 

 

옥개석, 상륜

 

 

옥개석과 상륜

 

 

 

결론적으로 중암사지 부도는 나말여초로 표기된 완도군청 홈페이지 내용과 달리 13세기 이후에 조성된 부도로 추정된다.

 

 

중암사지 부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사지 법화사지편의 기록을 보자

 

법화사지

"창건과 관련해서 『海庵入唐巡禮記』에는 810~828년 사이에 제주도와 완도에 법화사를 창건하였다는 내용이 전한다. 폐사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東文選』에는 ‘강진 백련사 정명국사 천인靜明國師 天因(1205~1248년)이 1247년에 몽고난을 피하여 象王山 法華社에 피난왔다.’ 는 기록으로 보아 13세기 경에는 존속했던 것으로 보이나, 『新增東國輿地勝覽』의 古蹟 條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5세기 경에는 폐사되거나 근근히 법등만 유지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명국사 천인靜明國師 天因(1205~1248년)

천인 스님은 강진 백련사에서 백련결사를 주도한 고려 후기에 원묘국사 요세(了世: 1163~1245)의 제자로 2대 사주이다

혹 천인의 제자들이 천인의 사리 1과를 법화사 중암사에 봉안하지는 않았을까?

시대와 양식이 동시대 부도 작례와 비슷해 보인다.

요세의 부도는 강진 백련사에 전하며, 천인스님의 부도는 제천 월악산 상덕주사 마애여래 위쪽의 부도라는 설이 있다.

 

 

상덕주사 천인 부도

 

 

상덕주사 천인부도

 

 

고택을 지키고 계시는 어르신의 말씀으로는 "부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사전에 알고 집안의 어르신들이  빼돌렸다고 하였다". 그분들의 안목과 애국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즐기면 되는데...

시대, 작례, 주인공을 알려고 하는 이 또한 병이다.

 

20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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