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라남도/화순군

화순...운주사 사진(1)

by 임병기(선과) 2016. 9. 28.
728x90
728x90

 

지난 답사기를 들쳐보니

2005년 3월에 마지막으로 들린 듯 하다.

 

오늘은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지만

부부모임인 줄도 모르고 나선 2박 3일 순례길

 

마눌의 전화가 빗발친다.

약속 늦지 않도록 귀가하라는...

 

결국

1박 2일로 끝내야만 했다.

 

주마간산식 사진 몇 장으로 글을 대신하며 또다시 미완의 답사지로 남겨 두어야겠다.

 

 

2005년 3월 2일 다녀온 글을 가져 왔다.

엉터리 내용도 보이지만 그역시도 나의 걸어온 길이기에 수정하지 않았다.

 

천불천탑의 연원...운주사


나의 욕심이랄까?
영주 부석사, 경주 남산, 담양 소쇄원과 함께 출입을 통제하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픈 답사지의 한 곳이 이곳 화순땅 운주사다. 고증보다는 전설이 아름답고,역사보다는 야사가 더 정겹기에 누운 부처가 벌떡 일어나는 날, 그날을 위해 남겨두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램이기에 문화유산 답사기 보다는 주절주절 에세이를 빙자한 낙서를 하고 싶다.

달리는 마차안에서 오래전 유현이 보길도에서 만났던 전남대 교수와 운주사 동행 이야기를 한다.
나도 원주 법천사지에서 만났던 비승비속의 기인을 만난적이 있듯이 답사의 가장 큰 즐거움은 예상외의 동반자를 만나 전혀 새로운 시각의 접근,해석을 듣는 것과,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대상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순수아마추어 답사매니아라고 하지만 한순간에 망가지는 기존의 지식에, 자기자신의 초라함과 왜소함에 울분이 치밀지만, 소위 학계의 전문가들 처럼 대범하고 너그롭게 '파격', '비정형'으로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달관의 경지는 나에게는 없기에 그냥 기가 죽게 마련이다.

내가 그런 경험을 처음으로 맛 본 곳이 운주사다.
돌이켜 보면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도 일천하고,이해도도 얕았지만 시건방을 떨며 돌아다니다 어느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날 운주사에서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심한 오한에 시달렸던 것은, 지금처럼 사전지식도 답사공부도 없었기에 충격은 더 심했었다.

삼국유사에는 - 서라벌에 절은 별처럼 총총하고,층층의 탑은 기러기 날 듯 줄을 있네- 라는 기록이 있다지만 그당시의 신라인과 집권세력들의  염원은 삼국통일을 위한 민심의 결집,통일 후 일즉다다즉일의 화엄사상으로 통일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있는 상의하달의 산물이었지 않았을까? 물론 이름없는 신라의 석수장이들의 불심이 빚은 석탑,석불이기에 종교적 대상에 미술적인 아름다움,지극한 불심을 가미할 수 있었겠지만,국가적인 지원 없이는 오늘날 경주에서 우리는 신라인의 숨결을 지금처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운주사의 천불천탑은 누가, 무엇 때문에 조성했을까?
국가적인 지원이 있었을까? 국가가 중심이 된 불사였다면 저렇게 무성의하게 조성했겠는가?
분명 천불천탑을 지은 염원,열망이 있었을 텐데...,저토록 나한전의 오백나한 처럼 제각각의 못난이 부처를,서민의 얼굴을,경배 대상의 주객이 전도된 듯한 모습을,시대를 넘나드는 석탑을 하늘로 향하게 했단말인가?

창건연대 마져 불확실해서 더 정겨운 운주사에도 이런저런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니, 진위와 역사적 사실은 별개로 두고 설화의 배경,당시 민초들의 시대적 염원을 추측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 배 모양인 조선반도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설화를 운주사가 구름 雲 머무를 住주 에서 움직일 運 배 舟 바뀌는 시점에 유포된 것으로 본다면 조선후기로 추측되는데 불분명한 집단의 합목적성을 위하여 풍수의 비조 도선국사를 모셔와 -- 운주사에 하룻밤 새 천불천탑이 조성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며, 천번 째 불상인 와불이 채 일어기 전에 새벽닭이 울어 결국 와불이 (불교에서의 와불은 석가모니부처의 열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모로 드러누우신 상태에서 열반하셔서 측와상(側臥像)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운주사의 경우는 이러한 측와상이 아니고 반가부좌로 앉아 계신 모습의 본존불과 서 계신 모습의 협시불을 암반에 조각하고 미처 털어내서 일으켜 세우지 못한 미완성 부처이므로 엄격히 말하면 와불이란 표현은 잘못되었지만 논외로 한다.)

일어서지 못했고, 앞으로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개벽한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겠지만, 요즈음의 일본의 행태를 보면, 기를 막기위해 더많은 불탑불상을 모시고 싶어지는 신나는 설화이기에 날이 밝아오자 연장을 버리고 사라진  그들이 한없이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최근에 KBS 역사스페설에서 방영하여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학설은--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들이 별자리를 바탕으로 조성된 것, 이 학설에 따르면 와불이 있는 자리가 북극성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 학설은 와불 남쪽에 있는 칠성바위가 북두칠성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것에 착안했는데, 실제로 하늘의 별자리와 운주사의 불탑, 불상 자리를 비교해 본 결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 모양이다-- 천문
학적 접근을 시도했지만 지식이 일천한 내게는 그림의 떡이고, 다만 칠성신앙이 도교의 중요한 신앙형태며 불교와의 습합으로 인해 오늘날도 사찰에 칠성으로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운주사를 고려말 창건으로 볼 때 그시대에 도교가 융성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어도, 우리 민속에서  탄생과 목숨을 관장하는 칠성신앙과 연결지으니 누가 뭐래도 그들의 원초적인 삶의 염원이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믿음을 두는 고려말 무인 정권하에서 민심을 결집하여 원의 침략을 물리칠 목적으로  소실된 대장경,황룡사 목탑을 대체할 도량과 불타불상을 조성한 것이 운주사라는 설인데,실제로 조성시기도 그시절로 보여지며, 무엇보다도 강력한 집권 세력의 추진력과 경제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불사이기에 설득력이 더해지지만, 조성시기와 목적이 구태여 밝혀지지 않았음 더욱 좋겠다는 바램이다.

어느날 벌떡 일어설 와불을 기다려보게.......

2005.03.22

 

 

 

 

 

 

 

 

 

 

 

 

 

 

 

 

 

 

 

 

 

 

 

 

 

 

 

 

 

 

 

 

 

 

 

 

 

 

 

 

 

 

 

 

 

 

2016.08.27

728x90
728x90

'전라남도 > 화순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순...쌍봉사  (0) 2016.09.29
화순...운주사 사진(2)  (0) 2016.09.28
화순...개천사 부도전  (0) 2016.09.27
화순...조사충 철비  (0) 2016.09.27
화순...대리 석불입상  (0) 201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