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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신안군

신안...홍대중 유애철비

by 임병기(선과) 201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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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읍에서 지도대교를 건너 좌측의 비석군

좌측의 4기는  탑선선착장에 있었던 것을 지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우측은 사옥도의 연혁을 새겨놓은 연혁비’2004년)와 지도대교 개통 기념비(2004년)이다. 

1.  御史魚公允中永世不忘碑 .        1987년
2.. 郡守洪公大重永世遺愛碑(철비).1879년
3 . 郡守李公玄翼永世不忘碑 .        1865년.
4.  郡守南公廷龍不忘善政碑.         庚辰年 

 

 

군수홍공대중영세유애비郡守洪公大重永世遺愛碑

光緖 五年 十一月 日(광서 오년 십일월 일.1879년 11월).

 

 

洪大重.1831년(순조 31)~미상. 조선 말기 문신. 자는 치기(致器)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증조는 대간(大諫) 홍륜(洪錀)이고, 조부는 참판(參判) 홍시제(洪時濟)이며, 부친은 통덕랑(通德郞) 홍병관(洪秉觀)이다. 외조부는 현감(縣監) 이종억(李宗億)이고, 처부는 이정두(李廷斗)이다. 1865년(고종 2) 식년시에 진사 2등 7위로 합격하였으며, 1875년(고종 12) 별시에 병과 9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부교리(副校理)‧교리(校理)‧신계현령(新溪縣令)‧영광군수(靈光郡守)‧선전관(宣箋官)‧동부승지(同副承旨)‧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1876년(고종 13) 경상도암행어사(慶尙道暗行御史)로 경상도 지역에 나아가 통영(統營) 관할의 진(鎭) 21개소 수졸(戍卒)들에게 나누어줄 급대(給代) 이무환곡(移貿還穀)과 결전(結錢)이 각 고을에서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아서 장수와 군졸들이 식량 부족으로 제대로 방어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감사(監司) 홍훈(洪坃)‧통제사(統制使) 권용섭(權容燮)‧경상우도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 서상악(徐相岳) 등이 제대로 행정 처리를 못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을 것을 청하는 서계(書啓)와 별단(別單)을 올렸다. 또한, 같은 해에 응교(應敎) 김만식(金晩植)‧부응교(副應敎) 조용호(趙龍鎬) 등과 함께 임금에게 수양(修養)에 힘쓸 것을 권면하는 연명차자(聯名箚子)를 올렸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홍현덕(洪顯德)‧홍현상(洪顯相)‧홍현철(洪顯哲)이다.

 

 

사진감요査陳減傜. 묵은 것을 조사하여 부역을 덜어주어

택민유구澤民悠久. 유구토록 백성들을 윤택하게 해주었다.

 

*한문 음과 훈은 개인적인 추측입니다.

 

 

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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