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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화성시

화성...오산리 석불입상

by 임병기(선과) 2016.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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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동선을 수립하면서 가장 애로사항이 이른 아침 첫 답사지이다.

마을 입구, 사찰 등도 눈치가 보여 주로 민가와 동떨어진 마애불, 석탑을 일순위에 잡는다.

용인에서 1박 후

6시 이전에 향한 곳은 동탄복합문화센터였다. 이곳은 시간과 관계없이 활보(?)해도 터치 받지 않은 공간 아니겠는가?

 

 

오산리 석불입상

석불 출처(한국문화유적총람 또는 주강현의 마을미륵?으로 추정)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뵙기 위한 첫 여정은 2009년 4월 평택, 화성 답사길로 생각된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는 언급하지 않고 뵙지 못했다는 글만 보인다. 후에 우리카페 시나브로님 답사기를 통하여 택지개발로 인해 동탄문화센터로 이건하였다는 사실을 알았었지만 이제사 인연지었다.

 

 

석불입상이 자리했던 고향은 동탄면사무소 근처 오산리 미륵댕이었다.

오산리梧山里, 또는 鰲山里로 추정되며, 자라(鰲)형국의 비보책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모습이며, 보관위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불신에 비해 장방형의 상호는 무척 길다.

 

 

백호(?)를 크게 표현하였고 두 눈 주위를 오목하게 조성하여 다크서클이 뚜렷하다.

코는 뭉툭하며, 입은 작게 표현되었고 목은 짧다.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두 손을 중앙에 모으고 연봉(?)을 들고 있다.

갓과 연봉으로 인해 존명이 미륵불로 보이지만 민초들에게는 어떤 존상도 미륵님이시다.

 

지물이 약기일 가능성도 있지만 삿갓 때문에 연봉으로 추측하였다.

 

얼핏

경기 남부 지방 묘지 앞 문인석 느낌도 든다.

모르긴 해도

석불장인과 묘소앞 문인석을 조성한 장인이 비슷한 계열 아니었을까?

 

 

 

 

등 뒤에는 큼직한 직사강형의 홈이 있다.

광배홈?

만약 광배가 있었다면 그 크기 때문에 불신보다 광배가 더 주목 받았을 것 같다.

즉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며, 광배가 있었다면 분명히 대좌 불신 광배가 완전하게 갖추어진 불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륵불의 조형미로 미루어 완전체 불상은 아닐 것 같다. 따라서, 광배보다는 미륵 하생을 염원하는 민초들의  매향 기록처럼, 조성시기, 발원자 등의 자료를 넣은 일종의 복장공 아니었을까?

물론 근거 없는 나의 추측이다.

 

조성시기는 조선초기로 전한다.

 

 

 

동탄복합문화센터 뒤뜰에 외롭게 서서 누구에게도 주목 받지 못한다면

차라리

안태고향 근처로 옮기면 어떨까?

 

201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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