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청양군

청양...장곡사

임병기(선과) 2015. 6. 19. 06:54
728x90

 

밤이 깊도록

우리문화재의 현실, 나아갈 방향 등 아주 진솔하고 건설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자리를 마련해준

한건택님. 이홍식님께 거듭 고마움을 전한다.

 

사람의 정은 더욱 돈독해 지건만

장곡사. 너무 바뀌었다

절집 인심까지도...

()()()

 

 

 

 

 

 

 

 

 

 

 

 

 

 

 

 

 

 

 

 

 

 

 

 

 

 

 

 

 

 

2015,05.31

===================================================================================================

 

 

칠갑산 장곡사는 모르지만 주병선이 노래한 '콩밭 매는 아낙네야~~'라는 노랫가사는 귀에 익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처음으로 청양 칠갑산 장곡사에 대웅전이 두개라고  알았을 때는 당장 달려가고픈 가람이었지만 이제사 인연을 짓고 찾아왔다. 당시 궁금증 해소를 위해 바로 장곡사에 전화를 넣었지만 스님도 그 연유를 모르신다고 했다. 

 

또한 정형을 벗어난 것이 대웅전 부처님이다. 전국 많은 사찰에서 그런 경우는 허다하지만 상.하대웅전에 석가모니불을 모시지 않고 하대웅전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상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부처님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다.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하대웅전은 우리들이 사는 사바세계를 상징하여 중생의 질병을 치유해주는 세계이며, 상대웅전은 정토세계를 조성하여  출가한 스님들이 게으름이 없이 수행에 용맹정진하는 깨달음 공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또하나의 설은 석가모니부처님이 화엄경을 지상에서 3회, 천상에서 4회를 설법한 사실을 묘사하여 상대웅전은 천상의 세계 하대웅전은 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어느설도 정설로 수용되지는 않고 있다.


 

하대웅전 영역에 자리한 설선당은 기단을 높게 쌓고 자연석 초석을 놓은 다음 원형기둥을 세웠다. 전면 3칸 앞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지붕은 팔작, 맞배지붕이다.


 

서남향인 하대웅전은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단층 맞배지붕으로 볼 때 조선 중기에 지은 건물이라 한다. 내부에는 마루바닥이 깔리고, 천장에는 우물천장을 달았다. 또한 전옆면에 넉살문 창호를 달았다.


 

1959년의 학술조사로 조성 년대가 지정6년(至正 六年, 1346년)으로 밝혀진 고려후기의 대표적 금동불상이다. 삼도, 나발, 큰 육계 타원형 상호로 윤곽이 뚜렷하고 습의는 통견이다.

 

노출이 큰 가슴에 드러난 속내의에는 꽃무늬가 표현되었으며 약함을 들고 계신 약사여래불이다. 약사여래불 단독불인 경우 약사전이 옳을텐데 미루어 짐작컨데 불상 조성 당시에는 협시불이 아니었을까? 

 

하대웅전 영역


 

답사를 하다보면 이따금 운좋은 경우를 만난다. 사찰로부터 정식 허락을 득한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상대웅전을 활짝 개방, 내부에 스포치라이트를 설치하여 촬영에 여념이 없다.

 

우리 옛님카페 전문 사진작가들과 동행이었다면 참 좋았을거라는 쥔장 다운 생각이 스치니 참말로 착한 카페 주인장 맞지요? 슬쩍 말을 걸어보았더니 이분들의 관심사는 사진 그자체이지 문화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상대웅전은 덤벙주초 두리기둥,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집이다. 내부에는 중앙에 비로자나불좌상, 왼쪽에 아미타불(?)좌상, 오른쪽에 약사여래좌상을 봉안하였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라  높아 보인다.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 

 

 

철조약사여래좌상은 10세기 전반기의 작품이라 한다.  특히 방형대좌는 기단 4면에 각각 안상을 두고  상하대석에는 연화문이 각각 장식되어 있으며, 하대석의 연화문에는 귀꽂이 피었다.

 

나발, 육계, 우견편단의 습의,  당당한 신체이며  수인은 오른손은 항마촉지에  왼손은 약합을을  받치고 있다.  광배는 목재이며   주형 거신광배로  중심부에는 꽃문양을, 테두리에는 불꽃문을 새기고 있다.


 

상대웅전의 주불인 철조비로자나여래상은 고려초기 또는 신라말 불상으로 추정한다.  대좌는 상기단에 앙련을 새기고, 간주석은 팔각 원당이며  하대석에는 복련이 방형 지대석 위에 조각되어 있다. 

 

대좌는 석등의 남겨진 부재로 추측되지만 철조약사여래좌상 석대좌와 더불어 신라시대 대좌로 추정된다고 한다.  본래의 대좌는 멸실되고 석등 대석에 모셔졌으며 주형거신광배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본존불 철조비로자나는 보물이요. 우측 철조 약사여래는 국보 타이틀을 가졌지만 한 지붕 아래서 억수로 기분 나쁘게도 명함을 못 내밀고 계시는 소조불이다.

 

탑 옥개석과 몸돌  부재인 대좌 위에 봉안되어 있으며  나발, 육계가 뚜렷하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습의는 우견편단이다. 내눈엔 철불과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무슨 사연으로 비지정 문화재인지 모르겠다. 근래에 조성된 광배 때문이라면 사람이나 석불도 배경이 든든해야 대접 받는걸까?



 

운이 좋은 덕분에 상대웅전 내부 불상 대좌와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비로자나불 대자로 신라말에 유행한 팔각원당형 석등대좌가 분명해 보인다.  고려말까지 유행한 전돌 바닥은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등에 남아 있으며, 전돌에는 여덟개 꽃닢이 만개했다.

 

 

그참!! 장승공원? 변강쇠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한 발기(?) 저지 대회인가? 어떤 목적에서 조성했는지 모르지만 쉽게 동의할 수 없어 먼발치서 바라보고 왔다.

 

장승공원이 탐탁지 않았지만 늘 그리웠던 가람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 보람과 만족감으로 오감이 충만하다. 신라.고려. 조선 시대 문화재가 공존하고. 두개 대웅전으로 소설 한 편 탈고할 수 있으니 꽃피는 봄날 일장춘몽에 헤매이어도 좋을 절집이다.  

2007..3.12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