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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화천군

화천...볏바위암각문.처녀바위

by 임병기(선과) 201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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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먹다리, 화천댐, 파로호를 거쳐 마지막 답사지 간동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한국의 사지에 등재된 용호리석불(간동면 용호리 914 국도변 미륵당)을 탐문했으나 실패했다. 마을 경로당은 비어 있었고 젊은 분들은 전혀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도로변 민가 안에 있어 마을 주민들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간동면 사무소 앞에서는 주차후 한참이나 망설였다. 사전에 인지한 성불사지 장승과 석불입상으로 향하는 진입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도를 그려주면서도 지금은 찾기 어려우니 가능하면 겨울에 오라는 지인의 충고를 따르기로 하였다. 결국 처음 계획했던 계성사지 석등과 성불사지는 인연을 짓지 못했다. 겨울날 원주.춘천 동선에 화천을 포함하여 폐사지 순례를 도모해야겠다.

 

 

간척리 262 음지마을 입구 삼거리

 

볏바위

음지 마을 입구 삼거리 바위다. 논을 갈 때 쓰는 볏(보습 위에 비스듬하게 덧댄 쇳조각. 보습으로 갈아 넘기는 흙을 받아 한쪽으로 떨어지게 한다)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볏바위’라 부른다. 볏바위에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암각문이 새겨져 있다.

 

해동호산명화주상간척(海東好山明火宙上干尺),  왼쪽으로 기유이월○일(己酉二月○日), 오른쪽으로 전단(田單)

 

전단(田單):신라 관할 영토

해동호산명화주상간척(海東好山明火宙上干尺):신라의 아름다운 땅은 밝은 통치력이 미치는 곳 상간척(경고문)

기유이월○일(己酉二月○日);689년 2월(김유신 사후에 각자를 새긴 것인가?)

 

화천군청 홈페이지 자료를 보자

 

"볏바위에 새겨진 암각문에는 이곳이 신라의 관할 영토임을 알리는 내용과 함께 북방민족인 고구려, 낙랑, 말갈 등의 접근을 막는 경고문이 새겨져 있다.  볏바위에는 적힌 암각문은 신라시대 비사성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사성전투는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군과 겨뤄 첫 승리를 이끌어낸 전투다. 이를 토대로 비사성전투의 격전지가 이 일대 용화산성이었다는 주장이 역사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간척 3리 볏바위 3거리에서 마을 입구 길가에 세워진 선돌이다. 이바위를 처녀 바위라고 부른는 연유가 무엇일까? 아마 지형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장승의 일반적인 상징 외에 비보책으로 조성한 바위로 보인다. 하지만 처녀바위라면 여성의 상징을 닮아야하는데 정반대로 남자의 상징처럼 보인다.  바위를 무너 떠리면 처녀가 바람이 난다는 소문에 15사단 장병들이 바위를 훼손시켰으나 부대에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다시 세웠다고 한다(마을 입구 가게에서 만난 할머니는 15사단소속 트럭이 사고로 바위를 훼손시켰으며, 또한 마을 주민이 경운기로 들이 받아 큰 바위가 부러졌다고 한다.)

 

 

음지마을 가게 할머니께서 요즘들어 볏바위 각자를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나처럼 처녀바위를 묻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잘못인가? 나의 답사 시작이 우리 민속신앙이었는데...

 

2박 3일 간의 장거리 답사. 등산후 뵐 수 있는 옛님들이 동선에 다수 포함되어 가장 타이트한 일정이었으며 무더위에 탈진

 지경에 이른 유일한 답사였다. 여러 옛님들과 인연 짓지 못한 아쉬움이 남자 있지만 님은 늘 그자리에 계시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다시 길위에 서는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2014.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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