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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단양군

단양...청련암 목조보살좌상

by 임병기(선과) 201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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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면 사인암리 산27 청련암을 입력하였더니 사인암 입구에 이른다. 예전에 방문 했던 곳이어서 눈에 익다. 그때는 왜 청련암은 안중에도 없었을까?

 

 

사인암. 단양 8경의 하나인 사인암은 남조천변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를 일컫는다. 고려말 정4품 사인舍人  벼슬을 하던 우탁(1263~1343)이 이 바위와 바위 주변 풍광을 좋아했고, 낙향해서는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으며, 그런 까닭으로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재광이 우탁 선생을 기려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추사는 사인암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과 같다”고 표현했고, 단원 김홍도는 사인암의 기암괴석들을 바라보면서 십여 일을 고민하고도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길 수 없었고, 일 년이 지난 다음에야 간신히 사인암을 그릴 수 있었다고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우탁? 혹 기억나지 않은가? 우리가 고교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백발가의 저자 그 분이 바로 역동 우탁 선생이다. 이처럼 좋은 풍광에 묻혀 생활하신 선생이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이 어찌 특별하지 않겠는가?

 

백발가...우탁(1263년~1342년)

한 손에 가시 쥐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백발은 막대로 치려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춘산에 눈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데 없다.
잠시만 빌려다가 머리 위에 불게 하여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늙지 말고 다시 젊어져 보려했더니
청춘이 날 속이고 백발이 다 되었구나.
이따금 꽃밭을 지날 때면 죄 지은 듯하여라.

 

 

청련암.고려 공민왕(계축년 22년)재위시 나옹선사에 의해 1373년 창건 된 사찰로 전한다. 처음에는 근처 대강면 황정리 28번지에 대흥사(?) 말사로 위치했었다고 한다. 1876년 일본군과 전투에서  본사인 대흥사는 소실되었고 1954년 적색분자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황정리 일대에 소개령이 내려져 청련암도  이주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출렁다리를 건너 청련암으로 들어 갔더니 최근에 불사한 극락보전이 화려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뒤편 마애약사여래가 맞이하지만 건방지고 신심이 돈독하지 못한 탓에 가볍게 삼배만 올리고 목조보살을 뵙기위해 발길을 돌렸다.

 

 

청련암

 

 

특이하게 보살상 세 분이 봉안되어 있다. 주보살인 대세지 보살을 본존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 보살을 모셨다. 왜 그랬을까?

 

대세지보살. 청련암이 황정리 있을 때 봉안했던 아미타삼존불의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상이었다. 1954년 청련암이 옮기면서 본존상은 행방이 묘연하고  관음보살상은 제천 원각사로, 동종은 영주 희방사로 옮겨 갔다고 한다. 복장기는 현재 도난되었다고 한다.  얼핏 떠오르는 목조아미타좌상이 있지만 그건 전문가들의 몫이다.

 

 

제천 원각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영주 희방사 동종..출처/문화재청

 

 

 

높은 보관을 쓴 보살상으로 전체적인 모습은 불신에 비해 얼굴이 작은 편이다. 보관 안의 머리는 높게 보발을 묶고 일부는 어깨로 늘어뜨리고 있다. 법의는 통견이다.  손은 아미타인으로 따로 만들어 끼었으며 몸에 비해 크게 조각되었다. 은행나무 재질의 보관 역시 나무로 형상을 만들고 표면에 화염문과 운문, 새 등을 금속으로 조각하였다. 조각기법은 무릎 앞면만 붙이고 불신은 통조通造이며 머리도 한나무로 조각되었다.

무릎 부분의 양감이 좋고 옷 주름선도 유려하며 불신이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양감이 잘 표현된 상이다. 뒷면의 네모난 선은 조성시 속을 파기위해 뚫었던 것이고 현재는 다시 접착되어 있다.  조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천 신륵사의 목조삼존불상(擁正 8년, 1730년)과 양식적으로 연관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18세기 전기 작품 작으로 추정된다.

 

 

 

지장보살

 

 

관음보살

 

 

신장탱

 

 

청련암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비교적 큰 규모의 불상으로 제천 원각사의 목조관음보살상과 더불어 원 청련암의 아미타삼존상이었던 유래가 있는 상으로, 양식적으로도 같은 특징을 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배 부분에 둥근 옷 주름이 옆으로 두 번 겹쳐 있는 점이 특징인데, 이와 같은 예는 제천 신륵사의 목조보살좌상(1730년)에서도 볼 수 있어서 양식적으로는 18세기 전반 충북지역에서 유행한 불상양식의 한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2014.04.11 

대세지보살 설명은 문화재청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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