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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속초시

속초...설악산 신흥사

by 임병기(선과)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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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 사진은 어디로 갔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기위해 카메라를 가방속에서 찾았지만 예비용 카메라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운행중에 충전하여 가방에 넣었는데 차량속에 두고 내린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키를 꼽아두고 왔는데 걱정이 태산 같아 조용히 둘러 볼 경황이 없었고 당장 내려가고 싶었었다. 신흥사 순례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답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돌아와서 차량을 뒤졌지만 카메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카메라 분실 보다 저장된 사진이 아까워 답사 포기하고 귀가하려 마음먹고 가방을 다시 보았더니 카메라는 가운데 주머니 옆 작은 주머니 속에 멀쩡하게 있었다. 이거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세월이 야속할뿐 ㅎㅎㅎ

 

부도군은 조선 인조 22년(1644)에 신흥사가 중건된 이후 역대 고승들의 부도를 단일 장소에 조성한 전형적인 부도군으로, 19개의 부도가 있다. 대원당탑(大圓堂塔) 등 3개가 원당 모양의 부도이며, 성곡당탑(聖谷堂塔) 등 16개가 석종 모양인데,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이 12개이다.

부도와 함께 신흥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신흥사사적비(神興寺事蹟碑)를 비롯하여 강세황(姜世晃)이 쓴 용암당대선사비(龍巖堂大禪師碑) 등 6개의 비석이 있는데, 1764년부터 182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

 

 

 

 

처음 뵈었다. 설악 산세와 어울리는 지는 모르지만 낯이 설었다. 민족통일의 비원(悲願)을 안은 청동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곳 설악에 나투어 대자비로 비추사 분단의 아픔을 끌어 안았다.속초 설악산 신흥사(주지 度吼)는 10년간의 통일청동대불좌상(統一靑銅大不坐像) 조성 불사(佛事)를 마치고 드디어 '97년 10월 25일 점안' 대법회를 봉행하였다. 

 

 가람은 신라(新羅)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金剛山)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佛土國)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寺名)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新興寺)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신흥사(新興寺)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심교를 건너면 굵직굵직 한 돌로 쌓아 올린 돌담 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보인다. 사천왕문은 1811년(순조 11년) 주운스님과 철수스님 이 창건하였는데, 그 뒤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72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중건하였다.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사천왕 배치였다.좌 동방 지국- 우 남방 증장천왕

 

 

좌 서방 광목천왕--우 북방다문천왕

 

 

보제루는 신흥사의 사천왕문과 극락보전과의 사이에 있는 장방형 의 누각으로, 전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형태이다. 장 대석 두겁대 쌓기 기단 위에 전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 배지 붕 형태이다. 자연석 초석 위에 원주를 세우고 하부는 본전을 향한 진입을 위한 공간으로, 상부는 집회나 강원을 위한 다락 공간으로 건축되었다. 즉 중층누각 형식의 누하진입 통행을 위한 건축물이다.

 

하부는 개방되었고 상부는 네짝의 세살분합문을 달고 있다. 보제루 는 한국 사찰 공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공간의 위엄을 나타내 는 방법과 함께 지붕선과 산형이 이루는 스카이라인과 건축물의 조 화에 의해 나타나는 한국 건축미의 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공간의 높이는 본전보다 낮게 사천왕문보다 높게 구성되며, 누하부에는 계 단을 가지고 있다.

 

 

극락보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의 다포 양 식의 신흥사 본전 건축물이다. 화강석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두고 원기둥을 세웠고, 지붕의 네모퉁이에는 둥근 화강석 초석의 철제 활주를 받쳐서 추녀를 길게 내밀고 있다. 공포는 3출목으로 기둥머 리에 창방과 평방을 놓고 그 위의 굽받침이 없는 주두에서 짜 올리 고 있다. 쇠서는 끝이 올라간 앙서이며 소로와 첨차는 굽받침이 마구리는 사절되어 조선 후기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바닥은 우 물마루이며 양측에 외짝 여닫이문이 있고 벽은 판벽으로 전면의 어 간(중앙간)에는 사분합문의 꽃살문을, 협간(양단간)에는 삼분합의 빗 살무늬와 소슬 꽃살문을 달고 있으며 어간 중앙의 두짝 꽃살무늬는 색상과 무늬가 있어 돋보이고 있다. 석조계단 난간석은 하나의 돌 로 원호형태로 만들어졌으며 영조 37년에 쌓은 것으로써 하단에는 용두을 측면에는 귀면상을 조각하였다.

 

 

기단석의 사자(?). 좌측에고 있었을텐데...

 

 

 소맷돌

 

 

소맷돌 측면 태극문과 귀면

 

 

이 삼존불좌상은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향우(向右))과 대세지보살(향좌(向左))이 협시불로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 바닥의 묵서명(墨書銘)과 관음보살 복장에서 발견된 축원문에 의해 1651년(순치(順治)8年, 효종 2년) 무염(無染) 스님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존불인 목조아미타불좌상(木造阿彌陀佛坐像)은 162c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안정감있는 신체비례를 지니고 있어 단정한 모습의 불상이다. 이 불상은 거대한 크기, 불분명한 육계(肉계), 평판적인 사각형의 얼굴, 가늘고 작은 눈과 입, 건장하지만 굴곡이 없는 신체, 넓은 무릎 폭, 통견 법의의 착의법과 옷주름 등 17세기의 시대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불상이다.

또한 본존불 좌우의 관음·대세지보살 역시 크기가 조금 작고, 머리 위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본존불과 같은 모습으로 본존불과 함께 당시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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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유물...출처/다음


특히 이 삼존불 중 아미타불의 바닥에 묵서명이 남아있고, 관음보살의 복장에서는 조성 당시의 축원문이 남아 있어 삼존불의 조성연대(조선 효종 2년, 1651)와 작가(무염(無染))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불교조각사의 기준작으로 삼을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이처럼 신흥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17세기 조선시대 불교조각의 특징을 잘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3구가 모두 손상이 없이 보존상태가 지극히 양호하며, 또한 정확한 제작시기와 작가를 알 수 있다는 점 등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선방

 

 

운무가 설악의 허리를 감싸고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카메라 분실 소동으로 조급한 내마음을 알고 훗날 여유롭게 돌아보라는 암시려니.

 

 

 설악부(雪岳賦)...박두진

 

-1-

부여안은 치맛자락, 하얀 눈바람이 흩날린다. 골이고 봉우리고 모두 눈에 하얗게 뒤덮였다. 사뭇 무릎까  지 빠진다. 나는 예가 어디 저 북극이나 남극 그런 데로만 생각하며 걷는다.

파랗게 하늘이 얼었다. 하늘에 나는 후우 입김을 뿜어 본다. 스러지며 올라간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하여 외롭게 나는 태고(太古)! 태고에 놓여 있다

 

-2-

왜 이렇게 나는 자꾸만 산만 찾아 나서는 걸까? - 내 영원한 어머니……. 내가 죽으면 백골이 이런 양지 짝에 묻힌다. 외롭게 묻어라.

 

꽃이 피는 때, 내 푸른 무덤엔, 한 포기 하늘빛 도라지꽃이 피고, 거기 하나 하얀 산나비가 날아라. 한 마리 멧새도 와 울어라. 달밤엔 두견! 두견도 와 울어라.

 

언제 새로 다른 태양, 다른 태양이 솟는 날 아침에에 내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것도 믿어 본다.

 

나는 눈을 감아 본다. 순간 번뜩 영원(永遠)이 어린다……. 인간들! 지금 이 땅 위에서 서로 아우성치는 수많은 인간들이, 그래도 멸(滅)하지 않고 오래오래 세대(世代)를 이어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

 

-3-

우리 족속(族屬)도 이어 자꾸 나며 죽으며 멸하지 않고, 오래오래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

 

언제 이런 설악(雪岳)까지 왼통 꽃동산 꽃동산이 되어, 우리가 모두 서로 노래치며 날뛰며 진정 하루 화창하게 살아볼 날이 그립다. 그립다.

 

2010.08.03 

 자료는 신흥사 홈페이지.문화재청 글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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