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진안군

[스크랩] 진안...백운면 물레방아

임병기(선과) 2008. 12. 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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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에서 묻고 가까운 동리에서도 질문했더니 왜 찾아가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찾아가지? 물레방아를 지나 다리위에서 바라보니 문화재 안내문이 보여 차를 돌려 찾았다.초가지붕에 작은 물레방앗간으로 생각했는데 온통 빨강색으로 꽃단장한  이국적인 느낌이다.

 

70년대에 나훈가가 불러 히트한 물레방아 도는데 라는 대중가요가 아니라도 물레방아 이미지는 고향, 향수로 연결되지 않는가? 시골 마을 청춘 남녀의 데이트 장소로도 1순위로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물레방아는 나도향의 소설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방원과 처, 신치규 사이에 벌어지는 지주와 종, 향토사회의 문제, 사랑과 애증이 교차하는 스토리 전개가 왜? 요즈음의 상황으로 이해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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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물레방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에 언급된 서울 세검정의 물레방아로서, 대부분 구릉성 산지에서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한 것이다.

운교리 방앗간 규모는 전면 3칸·측면 1칸이며, 물을 막은 보(洑)는 61m, 보에서 물레방아에 이르는 수로(水路)는 252m, 수로 넓이는 2m, 깊이는 2m이다.

물레의 재질은 소나무이며, 지름이 310㎝, 폭 130㎝, 날개는 기존의 ‘一’자형이 아닌, 소유주가 도정력을 높이기 위해 특수 제작한 ‘ㄱ’자형으로 된 47개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현재도 사용중"이라고 문화재청에는 언급되어 있지만 오래전 부터 빈 물레방아로 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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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듯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지를 안고 있는 정미기계가 한 눈에 들어 왔다. 예전 같으면 밤낮으로 돌아갔을 텐데 가장 바쁜 시기에도 기계 소리는 멈추었다. 

 

촌부라도 만나 예전 이야기 듣고 싶지만 방앗간도 옆집도 우리의 고향 마을처럼 텅 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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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유년 시절에 분명 보았던 벨트인데 용도를 모르겠다. 톱니와 톱니, 벨트와 벨트가 물려 도정했을 터이다. 기계소리 보다 더 큰 웃음소리, 삶의 환희를 누렸던 촌부들은 어디에 계신가? 이대로 수수방관 정미기 고철화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현실도 이해하지만 관광 자치단체를 홍보하는 군청에서 운영하는 방법을 모색하여,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과 마이산 그리고 도정 체험을 연계하는 관광 활성화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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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선하다.

 

수 년 후의 모습이...

 

그건 우리 정신문화  황폐를 가속화 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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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요율표. 이제 박물관이나 백과사전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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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공가공업 등록증. 1995년 3월 27일 진안군수가 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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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는 더이상 돌지 않을 것인가? 농경 사회가 퇴락하고 농사인구는 줄어들며, 집집마다 정미기가 보급된 현실에서 일상적인 상식으로는 재가동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방법은 없을까?

 

격주마다 가동을 원칙으로,  비용과 운반은 군재정으로 지원하며, 마이산 입구 주차료 징수 요원처럼 인원을 모집 도정기술을 훈련하여 배치하면 부업으로 괜찮을 듯하다. 마이산 입구 주차장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면 도정료와 인건비 일부를 충당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세상물정 모르는, 공직사회에 어두운 놈의 허튼 소리라 여길지 모르지만, 물레방아가  멈추는 날 우리 삶의 원형도 훼손되어 영원히 복원되지 않을듯 한 아쉬움에 넋두리를 펴본다.

 

하늘이 참 높고 푸르구나!!

 

2008.10.04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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