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진안군

진안...운장산 천황사

임병기(선과) 2017. 7. 7.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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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1년(875) 무염선사가 세웠고 고려 문종 19년(1065) 대각국사 의천이 고쳐 세웠다고 전한다. 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학조()·애운() 등이 중수하였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각성()이 700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이 절에 와서 해산하였다. 본래 이 절은 주천면 운봉리에 있었으나 숙종(재위, 1674∼1720) 때 중건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1874년(고종 11) 혜명()이 중창하였다.1972년 요사를, 1976년 명부전을 중건하였고,1985년에는 명부전과 설법전·요사 등을 중수하였다.1993년 명부전을 옮겨 지었다.  

 

동국여지승람 ‘숭암사(崇巖寺)’라 하였고, 그 때문에 그곳 동네 이름도 최근까지 ‘숭암’이라고 불려 왔다. 절에 소장되어 있는 「용담군 천황사 규칙(龍潭郡天皇寺規則)」을 보면 1694년(숙종 20)의 기록에도 숭암사로 되어 있으며, 1854년(철종 5)의 기록에 비로소 천황사로 나온다. 따라서 천황사는 적어도 1694년까지는 숭암사로 불리다가 1854년 사이에 천황사로 바뀌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에서 발췌)

 

 

대웅전

정면 3칸.측면 2칸의 겹처마, 다포계, 맞배지붕이다.

 

 

어칸의 소슬 창살, 양협칸은 넉살문이다.

 

 

덤벙주초.그랭이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다.

 

 

후벽중앙에도 문을 내었다.

 

 

석가여래,아이타불, 약사여래 삼존

한국의 사찰문화재총람에는 1680년에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3단의 수미단

수미단.대좌.삼존불은 근자에 진안군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문화재청,한국학중앙연구원의 디지털진안문화대전,진안군청에도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소박한 운궁형 닫집, 우물천장에는 화문이 화려하다.

 

 

내부 측벽의 비악 주천도

 

 

빛바랜 인물도

 

 

비천도

 

 

들보의 청룡

 

 

들보의 백룡

 

 

명부전 지장보살과 시왕

 

 

조선후기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천황사 괘불.1941년...출처/문화재청

 

 

 

전나무.

2002년 태풍으로 윗부분이 잘려 나갔다.

 

이 전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알고 왔는데...

 

 

천황사 전나무...출처/문화재청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천황사 전나무는 남암에 따로 있었다.

 

 

천황사 부도전

문화재로 지정된 2기의 조선후기 부도 외에도

근자에 조성된 명봉스님의 부도도 천황사 입구에 모셔져 있다.

 

 

 

당호를 새기지 않은 팔각 원당형 부도

하층기단저석과 중대석을 1매의 돌로 만들었고  위에 팔각 갑석위에는 3단 괴임(상층기단 저석?)을 두고 그 위에 팔각 상층 기단 중석과 복련을 조각한 대좌를 두었다.  팔각형의 탑신, 옥개석위에 2단 괴임을 두고 복발과 보주를 올렸다.

 

 

하층기단

 

 

상층기단

그런데

상층 대좌는 뒤집힌 상태이다.

현재 상부의 괴임과 탑신석은 비례가 맞지 않으며, 탑신 아래의 복련은 어색해 보인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며, 추녀와 처마의 반전이 경쾌하다.

 

 

복발과 보주

보주는 후보물 느낌이 들었다.

 

 

복발

 

 

복련?

앙련?

고증을 거쳐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

 

 

애운당 대사지탑愛雲堂大師之塔

지대석위에 방형 상하기단을 1석으로 조성하고 탑신과 지붕돌을 올렸다.

 

 

대좌는 후보물 처럼 보인다.

 

 

석종형 탑신에 당호를 새겼다.

 

 

지붕돌은 사각의 추녀와 처마가 두껍게 조각된 사모지붕이며,하부에 층급을 표현했다.

 

 

보주가 절병통 같다.

 

 

애운당 스님은 숙종조에 천황사를 중수한 스님으로 전한다.

 

 

2017.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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