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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증평군

[스크랩] 증평...율리 관음보살.미암리 관음보살

by 임병기(선과) 200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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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관음보살

 

네비가 안내한 곳으로 갔더니 산중 암자이다. 거주하시던 비속비승 차림의 스님이 나오셔서 정확한 길을 일러주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찬선이가 "살이 찐 보살 입니다" 그렇지요?  보살이 바라보는 곳이 낚시터이다. 보살 때문인지 증평군청은 저수지에서 낚시는 허용하지만 매운탕 및 반출은 금지 한다고 한다. 지킴이 관음보살 덕인가? 아래글은 문화재청에서 가져온다. 

 

괴산 율리 마을에 있는 관음보살입상으로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마멸이 심하고 특히 얼굴 부분에는 인위적인 손상을 입어 얼굴을 살펴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이 석불에 대한 문헌의 기록이 전혀 없어 자세한 내력이나 조성경위는 전혀 알 수 없다. 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이보다 아래쪽에 있었는데, 1979년 삼기저수지 건설로 수몰되게 되자 현재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의 위치에 있을 때에는 불상의 둘레에 돌담이 둘러져 있었으며 현재 불상 옆에 있는 지붕돌 모양의 돌이 돌담을 의지해 불상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상과 지붕돌 모양의 돌의 규모를 비교해 보면 머리 위에 이 돌이 올려지기에는 균형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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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은 보관에 가려져 형태를 알 수 없고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닿아 있다. 보관의 아래 부분에는 굵은 띠가 둘러져 있고 정면에는 둥근 장식이 있으나 문양은 손상되어 잘 알 수 없다. 목은 매우 짧으나 삼도의 흔적이 보이고 어깨는 당당한 편이다. 몸체는 전체적으로 육중하고 양감이 풍부하여 원만한 인상을 풍기는데 얼굴과 신체 각부 조각도 본래는 잘 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손모양은 오른손은 가슴에 얹고 왼손은 늘어 뜨렸다. 입고 있는 옷은 양어깨를 모두 감싼 통견으로 양쪽 다리에는 각기 밀착된 옷주름이 늘어져 있다. 상의 뒷면은 다듬기만 하고 옷주름의 표현은 전혀 없다. 불상의 발 부분에는 현재 시멘트로 만들어진 받침돌에 묻혀 있어 조각 형태를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불상을 옮길 당시에 불상의 밑에서 다듬지 않은 편평한 돌에 시주자와 불상을 만든 석수의 이름, 연도를 새긴 돌이 나왔다고 하나 현재는 찾을 수 없다. 불상이 만들어진 때를 조선 숙종 30년(1704)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불상의 조각 양식이 조선 후기보다는 훨씬 이른 고려시대 후기 정도로 보인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불상으로서 충북 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관모를 쓴 조각 양식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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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리 관음보살

 

2박3일 일정 마지막 코스 였다. 관음보살이라기보다는 마을 수호신이다.

 

당산목과 어울렁더울렁 살아온...

 

그러이 어찌 달빛에 젖은 이야기 없겠는가?

 

미륵댕이 마을에는 미륵사라는 전통사찰옆에 관음보살입상 한구가 서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 중기에 인근 부락민 전체가 질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하여 매일 2,3명씩 사망하는데 부락민 세명에게 비몽사몽간에 도승이 나타나 불교를 믿고 미륵사에 있는 관음 불상에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7일이내에 효험이 있을 것이다 하였으나 믿지 않다가 매일 질병이 심하여가니 하는 수 없이 부락민이 합심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한지 7일 만에 부락민 모두가 쾌차하였다. 그 후부터 마을에서는 연중 일회 씩 합동기도를 올렸다하며 지금도 미암리 주민들은 매년 합동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려 소원성취를 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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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리 관음보살

 

미륵사(전통사찰)옆 석조관음보살입상이 있으며 두상(頭上)의 보개석(寶蓋石)이 파손되어 보호각 밖의 고목밑에 놓여 있고 관음보살입상의 눈썹사이에 백호(白毫)가 있고 눈, 코, 입술등이 정연하고 원만한 상이다.

 

목부분을 보강해 놓았어도 목에 삼도(三道)는 선명하고 동체부(胴體部)도 비대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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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어깨에 걸쳐 옆으로 내려졌고 제전(臍前)에는 군의(裙衣)의 조식(彫飾)이 있으나 선명하지 않고 왼손을 배아래서 내장(內掌)하고 있으며 불상 앞에는 배례석(拜禮石)이 놓여 있다.

 

미암리사지 석조관음보살입상의 보관의 화불(化佛)이나 보개(寶蓋)의 표현, 의문(衣紋)과 상호(相好)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불상의 조성연대는 고려중엽으로 추정되며 불상연구와 신앙형태 변화 등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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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민들과 영원히 함께하길 빈다.

 

미암리 관음보살 옆 미륵사는 들꽃이 가득한 절집이라고 한는데, 미쳐 들리지 못해 아쉽다.

 

우리님들 답사 동선에서는 놓치지 않길 바란다.

 

찬선아. 고마웠다. 

 

2008.08.09

 

* 돌아오는 길 괴산 국도변에서 찰옥수수 한 자루를 구매하였지만 마눌에게 혼이 났다.

 

자루속에는 벌레 먹은 옥수수, 알갱이가 반도 없는 옥수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혼이 농심은 아닐텐데...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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