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광경사지 석탑 홍성여중 교정 현재는 홍성여중 정문 안쪽에 위치해있다. 광경사지 석탑으로 알려졌지만 본래는 구항면 내현리 탑골에 있었다고 전해온다. 다른지역의 문화재처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개인정원에 옮겼고 해방후 그자리에 홍성여중이 개교하여 훗날 이곳으로 학교를 이전하.. 충청남도/홍성군 2010.05.30
홍성...조양문. 대교리 미륵불.동문동 당간지주 홍성읍내는 7년만에 다시 들렸다. 읍내에서 아래의 옛님들을 놓치기 싫어 다시 찾았다. 예전에 떠벌린 답사기가 있어 문화재청, 문화유적총람 자료로 대신한다.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며 홍성군의 관문으로 고종조에 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고 동서남북의 문.. 충청남도/홍성군 2010.05.28
홍성...대원군 척화비 네비 아가씨의 고집스런 안내도 허사였고 나의 지레짐작도 엉터리였다. 참 힘들게 찾은 척화비다. 글은 문화재청에서 가져왔다.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더욱 그러한 의지를 굳혀, 서양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경계하.. 충청남도/홍성군 2010.05.27
홍성...구절암 마애불 좁은 농로, 비탈진 산길을 바삐 올라갔지만 텅빈 절집에 멍멍이만 요란을 떤다. "구절암(혹은 칠절사)는 백제시대에 처음으로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찰의 역사는 알지 못한다. 다만 강희(康熙, 1662-1722) 년간에 사용되었던 연호가 새겨진 조선시대 기와편이 발견된.. 충청남도/홍성군 2010.05.26
보령...대천 경찰서 망루 대천경찰서 경내에 위치한다. 자연석과 콘크리트로 쌓은 망루로 언듯보면 항아리 같다. 수용인원은 약 30명이라고 한다.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성주산 주변 일대의 공산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1951년에 지은 건물로, 정오·자정을 알려주고, 통행금지나 화재, 비상시에 사이렌.. 충청남도/보령시 2010.05.25
보령...보령 읍성. 보령리 오층탑.미륵불 "충남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는 보령성곽은 조선 태종 원년(1400) 봉당성을 없애고, 세종 12년(1430) 최윤덕·박안식이 새로 터를 잡아, 서산군수 박눌생·보령현감 박효성과 힘을 합하여 돌로 쌓아 올린 성이다. 세종 13년(1431)에 부임한 현감 정대(鄭帶)가 이듬해 부터 성 안에 140.. 충청남도/보령시 2010.05.24
보령...한내 돌다리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다. 동국여지지』,『신안읍지』,『여지도서』등의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8세기에는 이 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다리로, 예전에는 남포와 보령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살에 쓸려 .. 충청남도/보령시 2010.05.23
보령...왕대산 왕대사 마애불 왕대사는 최근에 조성된듯한 축대와 돌담이 고풍스럽지는 않지만 화려하지도 않아 정갈한 분위기였다. 대웅전 중정 낮은 담 너머로 넓게 전개된 대천항과 서해고속도로의 전경은 마음마져 트이게 하여 이곳에 마애불상을 조성한 옛님들의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충청남도/보령시 2010.05.22
보령...남포읍성. 동헌 언제 이 길위에 섰었던가? 초교생이었던 딸아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들놈도 전역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내나이 사십대 초반이었던 모양이다. 그 때 지나쳤던 남포읍성 오늘 다시 놓칠수는 없었다. 슬픈 추억, 아픈 과거를 간직한 서러운 역사 때문일까? 회색톤 성벽은 스산한 그리.. 충청남도/보령시 2010.05.21
보령...영수암 귀부.이수, 미륵불 입상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 영수암.대한불교 법화종에 소속된 사찰이다. 신라 말에 42대 흥덕왕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전소 되어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었으며, 1937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보령 수부리 귀부 및 이수(保寧 水芙里 龜.. 충청남도/보령시 2010.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