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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덕유산 인월암 석탑

삼공리 주차장에서 덕유산 백련사로 향하는 길.인월담(印月潭)에서 칠봉 약수터 방향 400미터 정도 거리에 자리합니다.디지털무주문화대전에는 "신라 때 인월 화상(印月和尙)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인월담’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옛터이다. 월곡 이창섭이 1960년대 초반, 세 칸 규모의 인법당을 중창하였으며 후에 요사를 세워 현재의 사찰 도량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법당, 인법당으로 사용했던 건물, 요사가 있으며 비구니 스님이 계셨습니다.인월암불단배치가 독특합니다.아미타. 약사. 관음약사여래좌상불단 향좌측에 단독으로 모셨습니다.FRP재질로 생각했었는데.목조약사여래좌상1960년대 인월암 창건 때, 덕유산 백련사에서 옮겨 온 목조불이라고 스님이 말씀하였습니다.목..

안동...중대사지 승탑(부도)

보문산 중대사지(中臺寺址)안동에 거주하는 이철숙 님이 중대사지에 승탑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탐문 끝에 위치를 파악하여 함께 동행하였습니다.답사를 즐기는 사람들도 하회마을 충효당 앞 석탑이 중대사지에서 옮겨온 탑이라는 사실은 알고있겠지만 중대사지 답사 경험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중대사 창건과 폐사 시기는 정확히 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회마을 충효당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시대에 세운 탑이며, 조선 시대 초기 학조대사가 출가한 절이라는 자료와  서애, 청음 선생이 중대사에 들렸던 글이 전합니다. 또한 대원사에 소장 중인 후불도를 비롯하여 불화 2점 화기에 1830년에 중대사에서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신문에는 1950년 한국 전쟁 때 전화를 이어 폐사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현재 중..

안동...서미리 삼층석탑

목석거 유허비 답사 후중대사지 승탑을 찾아갑니다. 참이곳은 개인 사유지로 주인의 허락을 받고 출입해야 합니다.삼층석탑허락을 받고 과수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묘비, 동자석, 문인석을 살펴보던 중에 완전한 형태의 삼층석탑을 만났습니다.상륜부는 후보가 분명해 보이지만 고식의 탑 느낌이 들었습니다.현존하는 이 장소가 의문스러웠지만,기단부탑신부옥개석 모서리 홈옥개석 모서리 홈불현듯 스쳐가는 탑이 있었습니다.옥개석 층급받침노반석을 제외한 상륜부는 후보가 분명해 보입니다.중대사지 승탑 답사 후 머리에 떠올랐던 탑을 확인하기 위해 특정 장소로 달려갔습니다.그런데, 탑이 없었습니다.재사 옆 사찰 스님께 물었더니 어딘지는 모르지만 반출된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키 작은 소나무와 은행나무 뒤쪽에 삼층석탑이 있었습니다. 이..

안동...목석거 유허비

서미리청음 김상헌(1570~1652)이 병자호란 후 이곳으로 낙향하여 청나라로 끌려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마을입니다. 처음에는 인근 소산마을 청원루에 지냈으나 이곳으로 옮겨 초가삼간을 지어 목석거라 이름 짓고 은둔하였다고 합니다.서미리는 아름다울 미(美)였는데 청음이 백의,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은 것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하여 고사리 미(薇)로 고쳐 서미리(西薇里)가 되었다고 전합니다.마을 앞 성황목입석청음 선생의 유허비, 중대사지 승탑 답사 목적이었는데, 서애 선생도 이곳에 거쳐하였다는 안내문이 보입니다.즉, 서미리는 학가산 자락 작은 산촌이지만  서애와 청음 두 정승이 거처했던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마을 안쪽 성황목마을 앞처럼 입석이 있습니다.중대바위서간사 강린당청음(淸陰) 김상..

고령...반룡사 목조지장보살좌상. 88 靈場

반룡사(2020년) https://12977705.tistory.com/8726779 반룡사(2008년) https://12977705.tistory.com/8722786 오늘은 예전 답사 때 놓쳤던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찾아왔습니다. 목조지장보살좌상 17~18세기의 금어 금문 스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금어 금문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6501 약사전 일제강점기 88개소 영장에 봉안되었던 불상을 몰랐을 때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살펴보니 88 야불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여러 사찰처럼 광배에 새겨진 명문을 지운 흔적이 있습니다. 확신할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88 야불에 포함시켰습니다. https:/..

합천...영창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석조약사여래좌상

2012년 글로 대신합니다https://12977705.tistory.com/8723635비로자나불좌상나발입니다.대좌본래 대좌인지, 석탑 부재인지 모호합니다.약사여래좌상탑신석을 대좌 삼아...불신과 광배가 일석입니다.탑신석우주를 새겼습니다.상부에 사리공이 있습니다.초층 탑신석으로 추정되며 약사여래좌상과 동시대에 조성한 석탑부재로 생각됩니다.진주박물관 수장고 석탑부재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렸습니다.지금도 예전처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 흐뭇했습니다. 2024.03.04

진주...진주박물관 야외전시장

국립진주박물관수장고의 죽죽리사지 석탑부재를 찾아왔습니다.안타깝게도 사진은 비공개를 요청하여 올릴 수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답사 경력이 오래된 분들은 야외 전시장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몇 년 후 진주박물관이 이관하면 다시 실외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고로수장고의 부재는 기단 갑석 편 2점, 기단 중석 1점입니다.야외전시장죽죽리사지 석불대좌합천 죽죽리 사지는 합천군 봉산면 죽죽리에 있는 절터로 통일신라시대 말에서 고려시대 초에 걸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지에서는 불상대좌, 석탑 및 석등 부재 등 다양한 석조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불상대좌의 중대석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국립중앙박물관 대좌를 모방하였다고 한다.합천 죽고리사지에도  대좌가 있는데 구태여 중박의 대좌를 모방한 이유가 궁금하다. 상..

대구...상덕사 비각, 옛님 학술대회

상덕사 비각, 문우관 "상덕사 비각(尙德祠碑閣)이 있던 상덕사(尙德祠)는 경상감영에서 동쪽으로 1리쯤에 있던 제향 공간이었다. 상덕사 비각은 상덕사 경내에 있었으나 현재 자리로 이건되었다. 상덕사는 1682년 일휴정(逸休亭) 이숙(李䎘)[1626~1688]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생사당으로 출발하였고, 이후 1727년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유척기(俞拓基)[1691~1767]의 선정을 기려 이숙과 함께 배향하였다. 1826년 경상도관찰사 조인영(趙寅永)[1782~1850]이 비문을 짓고 비각을 세워 매년 중양절에 제사를 지냈다. 1910년 일본인들이 대구 이사청(理事廳)을 지으면서 상덕사가 헐리게 되었다. 이후 1918년 채헌식(蔡憲植)[1855~1933]이 상덕사 동쪽에 향교의 재산으로 문우관(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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