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207

서울...장안사 오층석탑

장안사 신대방 2나길 21-2 일제강점기 오층석탑을 찾아왔습니다. 기단부 층급받침 없는 옥개석 우주가 생략된 탑신석 오층 옥개석과 보주가 일석. 4층 탑신석은 후보한 느낌입니다. 오래전 경기도 모처에서 일제강점기에 대량 생산(?)된 석탑이라는 자료를 보았었는데... 일제강점기 석등 유형입니다. .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석탑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262 2022.11.16

서울...미륵암 석불입상. 석조여래좌상 外

미륵암 동작구 상도동 103-2 답사객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옛님이 있었습니다.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 승려가 상주하지 않으며, 관리를 맡고 있는 분은 미륵암을 중수, 복원한 진법의 아들인 이승열 교임입니다.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문헌 및 고고학 자료들에 의하면 조선 시대 이전 이미 그 일대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제주고씨 대동보(濟州高氏 大同譜)』에는 조선 성종 때에 이 지역에서 금불암의 터가 발견되었으며, 청기와 등 유물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설화에 의하면 조선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단 씨(段氏)라는 인물에 의해 땅에 묻혀 있던 미륵불이 발견되어 암자를 짓고 모신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후 김 씨와 강 씨라는 사람에 의해 관리되다가 일제 강점기 고명진에 의해 법당이 중건되었다..

서울...금강암 오층석탑

금강암 도봉산길 92. 2019년 또르 님과 영국사지~원통사를 경유했던 7시간 도봉산 산행 겸 답사를 하면서도 놓쳤던 사찰입니다. 오층석탑 스님 말씀에 의하면 60여 년 전 경기도 이천에서 옮겨 왔으며, 상륜부는 근자에 술 취한 사람이 탑에 올라가서 훼손시켰다고 합니다. 기단갑석 아래는 후보물이며, 초층 옥개석과 상위 옥개석은 다른 석탑 부재 느낌이며, 4층 탑신석도 본래 부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 기단갑석, 기단 중석 서로 맞지 않습니다. 기단갑석, 초층 탑신석 서로 다른 부재입니다. 초층 옥개석 전각의 반전이 큽니다. 탑신석에는 우주를 새겼습니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전층 각형 3단입니다. 도봉서원 경유 도봉산 등산로 상에 위치한 옛님입니다. 원통사 마애부도 https://cafe.daum.net/m..

서울...도봉서원(영국사지) 석탑부재

영국사 영국사는 사자산문의 神靖禪師와 고려전기 法眼宗을 처음으로 전파한 慧炬國師, 寂然國師가 주석하거나 수학 하였던 곳이며, 고려 광종이 3대 不動寺院으로 지목할 정 도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던 ‘道峯院’이다. 중국 송나라 때 편찬된 선종 역사서 『景德傳燈錄』과 17세기에 편찬된 『大東金石書』에 수록된 「영국사혜거국사비」 탁본, 2017 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혜거국사비편을 통해 혜거국사 는 도봉산 신정선사에게 출가하였고, 10세기에 5대 10국 시대의 대표 선승인 法眼 文益(885~958)에게 가르침을 받고 돌아와 도봉산 영국사에 머물렀던 것을 알 수 있다. 977년(경종 2)에 건립된 「高達寺元宗大師慧眞塔碑」 음기 에는 고달사를 비롯한 도봉원과 曦陽院을 문하제자들이 계속 주지를 하도록 하는 不動山門..

서울...우이동 오층석탑. 일제강점기 오층석탑

메리츠화재보험 연수원에 있는 오층 석탑입니다 사전에 출입 신청 후 관람 가능합니다. 오층석탑 일견 고려시대 석탑으로 보입니다. 본래 부재와 후보한 부재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탑신에 비해 단층 기단부가 안정감이 떨어집니다. 기단부는 4매 부재로 결구된 지대석, 중석, 갑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갑석 하부에는 부연을 새겼습니다. 전층 탑신석에 우주가 있고,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급합니다 층급받침은 전층 4단이며, 2층 옥개석 모서리에는 철근 2개가 깊게 박혀 있습니다. 상륜부는 결실된 상태입니다. 세부 사진을 담지 못했지만, 석탑에 대한 판단은 읽는 분의 몫으로 두겠습니다. *답사 준비하면서 청주에서 옮겨온 석탑이라는 자료를 검색하였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석탑 뒤 건물이 1965년 안동별궁 터에서 옮..

서울...삼성사 석조여래좌상

일주문을 바라보며 최석훈 님과 스트레오로 외칩니다 어? 작년에.... 2021년 12월 29일 화계사 마애관음보살을 찾아오면서 일주문 앞에서 발을 돌렸습니다. 조금 헤맨 탓애 마애관음보살 장소 탐문에 급급하였기 때문에 동선에 포함하고도 삼성사 석조여래와 인연 짓지 못했습니다. 조선 후기 1872년에 신도 고상진(高尙鎭)이 창건하여 ‘소란야(小蘭若)’라고 하였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입니다. 대웅전 불단 석조여래좌상 연천 원심원사 천불전에서 모셔온 경주 불석으로 조성한 석불입니다. 조선 후기 불상으로 전합니다, 목각 신장탱 칠성각 성모각 현판도 걸려 있습니다. 주원영 글씨 칠성도. 1909년 緣化所 證明 越海 和眞 金魚所 片手 慶船 應碩 比丘斗欽 振榮 香雲 誦呪碧翁 大燮..

서울...안양암 마애부도. 정골사리비

대웅전 석조아미타삼존 오늘은 마애부도 사진 짝기위해 참배하였습니다 2013년 글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2522 마애관음보살좌상 □□삼년기유년(□□三年己酉年). 1909년 마애아미타여래좌상 금륜전 치성광여래 重建主 養鶴大和尙 頂骨舍利函(중건주 양학대화상정골사리함) 癸丑六月十五일OO(계축 유월 십오일) 1932년 사적비, 1937년에 조성한 범종 때 주지. 1962년 이태준 공덕비가 있어 이후 계축년은 1973년입니다. 사적비. 1932년 이태준 공덕비. 1962년 居士李善行頂骨舍利碑. 癸亥年 十二月十五日 入寂 계해년 12월15일 입적 1932년 세운 사적비에 1922년(壬戌) 이선행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安養菴事蹟碑 佛紀二千九百五十九秊 五月 日 雲陽 沙門 ..

서울...국립고궁박물관 궁중 현판 전展(2)

(1) 편에 이어 궁중 현판 전 아래의 내용은 전시도록을 참조하였습니다 프롤로그 조선시대(1392~1910년) 궁중 현판은 궁궐을 세울 때, 화재나 전쟁 등으로 궁궐을 보수할 때, 다른 궁궐의 건물을 헐어 옮겨지을 때 제작·수리되어 궁궐 건축에 걸렸다. 제작 과정에서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뜻과 소망을 담기도 했다. 그 예로, 고종高宗 (재위 1863~1907년)은 나라가 위태하던 1906년, 화재로 덕수궁을 수리하면서 본래 있던 대 안문 현판을 내리고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꿔 달도록 했다. ‘큰 하늘’이라는 뜻의 ‘대한大漢’에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대한제국의 소망을 담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1910~1945년) 때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던 다섯 궁궐이 관광지, 오락시설, 박람..

서울...국립고궁박물관. 궁중 현판 전展(1)

궁중현판전 청와대 석불좌상 배관과 더불어 보고 싶었던 전시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전시도록을 참조하였습니다 프롤로그 조선시대(1392~1910년) 궁중 현판은 궁궐을 세울 때, 화재나 전쟁 등으로 궁궐을 보수할 때, 다른 궁궐의 건물을 헐어 옮겨지을 때 제작·수리되어 궁궐 건축에 걸렸다. 제작 과정에서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뜻과 소망을 담기도 했다. 그 예로, 고종高宗 (재위 1863~1907년)은 나라가 위태하던 1906년, 화재로 덕수궁을 수리하면서 본래 있던 대 안문 현판을 내리고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꿔 달도록 했다. ‘큰 하늘’이라는 뜻의 ‘대한大漢’에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대한제국의 소망을 담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1910~1945년) 때 조선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던 ..

서울...청와대 석조여래좌상

한양 이번 순례 주목적의 하나인 청와대 석불을 찾았습니다. 번잡한 분위기를 피해 첫 시간, 첫 순례객이 되어 택해 10 여 분 온건히 독차지하였습니다. 경주 이거사지에서 일제강점기에 옮겨 온 석불이며, 보호각 속에 모셨지만 현재 위치는 옹색합니다 청와대 미남 석불로 불리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이르는 이칭으로 생각되며, 청와대 안내문의 미남불 표기도 수정하면 좋겠습니다. 공식 지정명칭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으로, 공개에 맞추어 경주 이거사지 석조여래 좌상 등으로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개 이전에도 경주 남산 약수곡 4 사지 석불좌상과 쌍둥이 불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결실된 방형 중대석이 춘천박물관에 있다는 이야기가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석불에 문외한이라도 첫 느낌이 석굴암 본존불과 닮았다는 듭..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