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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207

서울...진관사 오층석탑 진관사 너무 자주 찾은 절집? https://12977705.tistory.com/8725419] 靜中動? 動中靜? 근자에 삼성에서 기증? 했다는 오 층 석탑 https://12977705.tistory.com/8727647 오층석탑 출입을 통제하는 선원 뒤편에 있습니다 지대석 겸 기단 그렇게 오층탑신을 올렸습니다. 문화재청 발간, 한국의 사찰문화재에는 1908년에 세운 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단부 본래는 탑구와 기단부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나비장 우리나라 석조유물의 나비장 https://cafe.daum.net/moonhawje/MebK/350 초층 탑신석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엄청 급합니다. 전각 반전도 급격하고... 2층 탑신석 양각의 추녀 2단 층급 받침이 독특합니다 3층 탑신석 탑신석 우.. 2023. 4. 26.
서울...성제묘(聖帝廟) 성제묘(聖帝廟) 동호로 385-1. 방산 시장 내에 자리합니다. 막 해가 너머간 시간에 찾았으나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경향각처에 조력자가 있으니...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관우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팔작지붕의 단출한 전각, 내부에는 관우 부부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로 서울에는 남묘·동묘가 나라에서 제를 올리던 제도였음에 반하여, 민간에서 모시던 중묘·북묘·서묘 등이 있어 관왕묘(關王廟)라 일컬었다. 그 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임오군란·갑신정변·청일전쟁 등 어수선한 정국이 반복되면서 1902년 이후로 관왕묘의 격을 올려서 현성묘 또는 성제묘라 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방산동의 18번지 일대에는 훈련원이 있었고 4번지 일대에는 임진왜란 이후로 염초청(焰초廳)이 .. 2023. 4. 25.
서울...청운동 오층석탑 청풍헌(淸風軒). 자하문로 28길 4 제천 청풍문화재단지를 비롯하여 경향각지의 청풍헌을 떠올렸으나, 청운동에 자리한 청풍헌 연립주택단지 었습니다. 오층석탑 자하문 너머 부암동을 버스로 오가면서 여러 번 보았던 탑을 찾았습니다. 동시대 탑이라고 여겼던 바로 옆 무궁화 어린이집 석탑은 근래에 조성한 탑이었습니다. 오층석탑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석탑입니다. 지대석, 탑신석의 우주 생략, 옥개석 층급받침 생략, 오층 옥개석과 보주가 일석 등등 탑신부 보주 일제강점기 경성의 절집, 민간인 정원, 학교 등에 많은 석탑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주로 서울에 분포하지만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고... 오래전 경기 이천 월전 미술관에서 만난 분이 이런 유형의 일제강점기석탑은 경기 남부에서.. 2023. 4. 24.
서울...청룡암 칠층석탑 청룡암. 성북구 동소문로 3길 32 한성대 입구역 지근에 자리한 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의 작은 사찰입니다. 현장 안내문에 의하면 조선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좌근(金左根)이 1853년 성북동 구준봉 아래에 창건한 절인데 산지개발계획에 따라 1969년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경내에는 1939년에 조성된 칠성도와 조왕도가 있으나 석탑만 뵙고 돌아왔습니다. 성북마을아카이브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한글학자 이윤재는 청룡암을 묘사한 글을 남겼고, 춘원은 방을 얻어 글을 쓰곤 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태준의 소설 '딸 삼형제'에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칠층석탑 성북동 본래사찰에서 1969년 사찰 이건시에 옮겼습니다. 친절한 비구니 스님은 조선시대 탑으로 알고 있었으나 최근에 다녀간 분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조성.. 2023. 4. 23.
서울...삼정사 오층석탑 삼정사 성북구 보국문로 38길 39 정확한 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1976년 삼밀 스님이 창건하여 현재는 성철 스님 제자인 원소 스님이 주석하는 조계종 직할사찰입니다. 오층석탑. 조선시대 장명등 삼정사 향우측에 위치 우리에게 익숙한 일제강점기 석탑입니다. 단층기단으로 추정되는 기단부는 망실, 2층 옥개석 후보 일제강점기 여러 탑처럼 탑신석 우주 없고, 옥개석 층급받침 생략, 별석의 상륜부는 일체형입니다 탑신석 우주 생략 옥개석 전각 반전이 급격합니다. 옥개석 층급 받침 생략 탑신석을 옥개석 하부 홈에 끼운 모습입니다. 장명등 특별한 장식없으며, 기단부~화사석이 일석입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연화보주는 별석입니다. 일제강점기 석탑 https://cafe.daum.net/moonhawje/Meb.. 2023. 4. 22.
서울...부석 금표 浮石禁標 오늘 답사한. 금표. 부석금표와 또 다른 금표이며, 가장 최근에 북한산국립공원 직원이 발견한 금표입니다. 북한산국립공원 수유분소 지근으로 왕실 석물 채석장 금표 가운데 가장 아래에 있습니다. 불상 주형 광배를 닮은 바위에 깊게 새겨 글씨가 분명합니다. 동행한 우리나라 금표 연구의 선구자인 박봉우 교수는 아주 잘 쓴 글씨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부석 금표 수유동의 다른 금표처럼 왕실에 석물을 조달하는 채석장 돌을 뜨지 말라는 표식으로 추정되며, 추후 더 많은 부석 금표가 발견될 가능성도 높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서울, 경기 금표 답사는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김희태 님, 박봉우 교수님, 북한산 국립공단 직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수도권 금표 답사에 동행해 준 우리 카페 최석훈(또르.. 2023. 4. 21.
서울...사릉부석감역필기 각자 조선 왕릉 채석장 대동문 코스, 구천폭포 아래에 있습니다. 비개방 코스이며, 국립공단 허락과 직원과 동행해야 합니다 구천폭포 九天銀瀑 李伸 書 구천 폭포 아래 향좌 측 바위군 바위군 하단에 세로로 새겨져 있습니다. 사릉부석감역필기(思陵浮石監役畢記) 단종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1440~1521)의 묘였으나, 숙종 24년(1698년) 단종이 복위되자 묘에서 릉으로 격상되면서 각종 석물을 갖춘 왕릉으로 조성했습니다. 이때 왕릉 채석장이었던 북한산 구천계곡 일대에서 석재를 채취하고 그 사실을 계곡 바위에 새긴 각자입니다. 司評李 焌(사평이 준) 奉事趙正誼(봉사 조정의) 書吏朴興柱(서리 박흥주) 石手趙 金(석수조 금) 勢己卯正月日(계기묘정월일) 思陵浮石監役(사릉부석감역) 畢焌書記(필준 서기) 사릉에 필요한.. 2023. 4. 20.
서울...부석 금표 浮石 禁標 사릉 금표에서 조선시대 가마터를 지나 구천동 계곡 입구. 북한산 대동문코스이며, 구천폭포로 향하는 등산로상이라고 합니다. 사릉 금표 https://cafe.daum.net/moonhawje/DjZP/6329 문인석 묘지를 떠나 마치 벅수처럼 등산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浮石 禁標 눈에 쉽게 들어오는 바위에 얕게 음각으로 새겼습니다. 왕실 채석장의 화강암을 채취 못하도록(돌을 뜨지 못하도록) 새긴 금표 같은데, 사릉 금표와 마찬가지로 설명문에는 사릉 부석 금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채석장에 남아 있는 사릉감역필기 (思陵浮石監役畢記) 때문인 것 같습니다. 浮石 禁標 세로 두 줄로 새겼습니다 선명합니다. 부석 금표(浮石 禁標) 조선 왕실에서 필요한 석물을 채취하는 채석장에 일반인의 출입과 돌을 뜨는 .. 2023. 4. 19.
서울...사릉 금표(思陵 禁標) 사릉 금표思陵 禁標 수유동 분청사기터 인근에 위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의 하나인 사릉(정순왕후 능)을 조성할 당시, 석재를 채취했던 채석장 입구에 세운 금표입니다. 思陵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1440∼1521)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송현수의 딸로 1454년(단종 2) 왕비로 책봉되었고, 다음 해에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의덕왕대비가 되었다. 그러나 1457년(세조 3)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면서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자 왕후도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생활하였다. 정업원 뒤쪽 산봉우리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비통한 마음으로 단종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세월을 살았다. 자식 없이 1521년(중종 16)에 82세로 세상을 떠나,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가(媤.. 2023. 4. 18.
서울...우이동 궁림장 금표 積翠屛(적취병) 아름다운 비취색 같은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병풍에 비유하였습니다 우이구곡의 2경으로 망경폭포 아래에 자리합니다. 조선후기 이조판서,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홍양호는 우이동 구곡기에서 적취병을 '물이 빠르게 쏟아져 사람들이 바위 옆면으로 비스듬히 걸어가며, 두 발을 똑같이 디딜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궁림장 금표(宮林場 禁標) 폭포 옆 바위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彰表 宮林場禁 標 세로 3줄로 새겼습니다. 요즘 글로 의역하면 공지 나무를 비롯하여 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곳이니 출입을 금한다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가로 글씨는 금표와 무관한 글 같습니다 宮林場禁標 彰表 宮林場禁標 백악산, 인왕산, 목멱산, 낙산에 새긴 사산금표(四山禁標)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한문.. 2023. 4. 17.
서울...봉황각. 손병희 묘 강북구 우이동 도선서 초입에 위치합니다. 봉황각 별관입니다. 종로구에 있었던 천도교 중앙종부 건물을 1969년 옮겨왔다고 합니다. 鳳凰閣 천도교 제3대 교주인 의암(義庵) 손병희(孫秉熙)가 1911년 가을에 2만 7946평의 밭과 임야를 구입하여, 1912년 여기에 건물을 세우고 그 이름을 봉황각이라고 하였다. 천도교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남긴 시문에 자주 나오는 봉황이라는 낱말을 딴 것이다. 손병희는 우리나라가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천도교의 신앙생활을 뿌리내리게 하는 한편,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수련장으로 이 집을 지었다. 손병희는 또한 1912년 4월 15일부터 이곳에서 지방교역자 21명을 선발, 지명하여 수련을 시키기 시작하였는데, 1914년 4월까지 3년 동안에 걸쳐 483.. 2023. 4. 16.
서울...사산 금표(四山禁標) 사산 금표(四山禁標) 우이동 보광사 주차장 옆 둘레길 100여 미터 위쪽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궁금장(宮禁場) 도성안과 성저 10리 이내(한성부 관할 내)에서 송림 벌채를 금지하고, 葬地를 금한다는 표석입니다. 조선 후기 도성 안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무분별한 벌채와 무덤이 증가하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새긴 금표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宮禁場 명문은 궁금장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宮 궁궐의 의미가 아니라 왕실 소속으로 특정 업무를 맡고 있는 부속기관을 뜻한다고 합니다. 宮禁場 사산금표도四山禁標圖(사진 출처. 서울 역사박물관) 사산은 백악산, 인왕산, 목멱산, 낙산을 이른다고 합니다 사산금표와 관련하여 깊은 내용은 아래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조선후기 한성부의 四山 관리와 松禁정책. 유승희. 이화사학..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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