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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국립중앙박물관 위창 오세창 展

by 임병기(선과)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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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창.오세창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6a0936a

1940년

간찰. 추사 김정희

오경석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문인 이상적李尙迪(1803~1865)의 제자로 김정희에게 금석문을 익혔습니다. 이 간찰은 60대의 김정희가 과천에 머물 때 20대의 오경석에게 보낸 것으로, 오경석이 김정희의 글씨와 신라·고려의 시문을 요청하자 김정희가 답한 내용이 있습니다. 오경석의 옛 문물에 대한 관심과 수집 취향은 오세창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추사-이상적-오경석-오세창

오경석은 위창의 아버지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 1919년

오세창 외

상형문자로 쓴  魚車舟. 1929년

오세창은 출옥 후 서예 활동에 힘썼습니다. 오세창은 어·· 세 글자를 상형문자로 쓰고 문자와 관련한 이야기를 행서로 적었습니다. ‘·· 세력이 미약하더라도 서로 힘을 합하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3·13·1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오세창이 독립의 염원을 담아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완당선생 초상. 1924년

오세창에게 있어 김정희(1786~1856)는 부친 오경석의 스승이자, 자신의 예술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었습니다. 오세창은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68년 되는 1924년 여름, 이 그림의 오른쪽에 전서로 완당 선생 초상阮堂先生肖像을 쓰고 아래에 행서로 소치 허련이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오세창의 기록을 통해 허련이 김정희의 초상화를 그렸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위창. 1948년

나한상(보물). 1235년

뒷면에는 1915년 오세창이 남긴 글에 의하면, 해주 신광사에 봉안되었던 불화이며 오경석이 1875년 소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경실(전서). 1938년

채근담. 6폭 병풍

전서, 예서?

산벽시사 모임을 기록한 그림. 1925년

1941년

서화 합작도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들이 등잡합니다.

 

1920년대 당대를 대표하느 서화가 14명이 각각 글과 그림을 나누어 그린 합작도이다. 참여한 작가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 【1871~1936】), 죽농(竹濃) 안순환(安淳煥, 【1872~1942】), 석정(石丁) 안종원(安鍾元, 【1874~1951】), 금강산인(金剛山人) 김진우(金振宇, 【1883~1950】), 관재(貫齋) 이도영(李道榮, 【1884~1933】), 벽산(碧山) 정대기(鄭大基, 【1886~1953】),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송은(松隱) 이병직(李秉直, 【1896~1973】),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 【1897~1940】),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1897~1972】),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1899~1976】),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1899~1978】)이다.

 

명필가였던 안종원이나 김규진 오세창과 같은 서화가는 “한묵아취(翰墨雅趣)”, “사시장춘(四時長春)” 등의 글을 남겼고 그림에 소질이 있던 화가들은 각자 하나의 소재를 그리고 낙관을 하였다. 참석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 중 하나였던 노수현은 이제 막 땅에서 올라오는 죽순을 그린 것이 이채롭다. 기러기가 족자를 입에 물고 날아가는 보기 드문 모습이 화면 중앙을 차지할 정도의 과감함이 돋보이는데, 족자는 이한복이, 기러기는 김은호가 그렸다. 특히 이한복은 “유남선생(惟南先生)의 진귀한 소장품을 방하여 준다(爲惟南先生仿其珍藏)” 발문을 남겼는데 유남선생은 당대 오세창, 오봉빈 등과 함꼐 고서화 대수장가로 유명했던 유남 박재표(朴在杓, 【1886~1951】)인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연도는 이 당시 서화가들의 중심이었던 안중식, 조석진이 빠진 것으로 보아 이들이 세상을 뜬 1920년 이후부터 참여한 김규식, 이도영의 졸년인 1933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근대기 성행하였던 서화합벽도 제작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서화가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난다. 오세창, 김규진 등 구세대와 이상범, 변관식, 노수현 등으로 이어지는 신세대 서화가들의 친목 관계를 알 수 있는 의미가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주련금합(珠聯錦合). 오세창.

구슬과 비단처럼 아름다움이 한데 모였구나

 

석정 안종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5005

해강 김규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3g1489a

청전 이상범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3%81%EB%B2%94_(%ED%99%94%EA%B0%80)

죽농 안순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39312&cid=46672&categoryId=46672

 

심산 노수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34219&cid=63765&categoryId=63765

소정 변관식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6220&cid=46660&categoryId=46660

 

벽산 정대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33531&cid=51942&categoryId=54839

금강산인 김진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3587&cid=46660&categoryId=46660

관재 이도영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4026

기러기가 물고 있는 두루마리에 도 인명이 있다.

 

무재(無號)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46405

국립민족박물관 현판. 전서

10폭 병풍. 1925년

오세창은 옛 기와와 청동기 등에 새겨진 문양과 글자를 따라 쓰고 설명을 덧붙였으며, 각각의 문양 옆에 직접 새긴 인장을 찍었습니다. 옛 문양과 글자는 서체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동시에 장수와 다복 등 길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세창의 옛 문자에 대한 관심, 다양한 서체, 인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순독유화(醇篤裕和). 1948년

85세 오세창이 소송(小松)이라는 號를 쓰는 張 君에게 써준 글씨 “순하고 독실하며, 넉넉하고 온화하여 라”는 뜻입니다.

맹원아집

서화협회 회원들과 제작한 첩. 1918년

덕울. 오세창

덕이 널리 퍼지다

소림 조석진 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447805&cid=63854&categoryId=63854

서향. 백당(白堂) 현채 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27800&cid=46615&categoryId=46615

덕화

덕으로 화합하다

금성 정대유 글씨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450049&cid=63854&categoryId=63854

청향분복

맑고 진한 향기

수산 정학수 글, 그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0952&cid=40942&categoryId=3438

난과 대나무

존경하는 위창 선생님께?

글. 해강?

그림. 동주 심인섭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448784&cid=63854&categoryId=63854

 

관심을 가지고 살피면 

위창 선생의 글은 사찰, 고택, 정자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스투파 특별전에 쫓겨 주마간산으로 살펴보았으니, 글씨에 조예가 깊은 사람과 다시 한번 들리고픈 마음입니다.

 

2023.12.22

 

***현장 설명 카드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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