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주변의 원찰인 흥천사 경국사 봉국사 외 사찰 순례, 북한산 영취사 외 문화유산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주변을 답사했으며 숙박도 하였지만 진즉 정릉은 건너뛰었습니다. 오늘은 답사 관심사가 아니라는 명분보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참배하였습니다.
정릉(貞陵). 사진 출처:위키백과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입니다.
" 정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1396년(태조 5)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는 취현방(현 서울 중구 영국대사관 근처)에 정릉을 조성하고, 자신이 묻힐 자리까지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정릉의 능역 100보 근처까지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하였다. 1408년(태종 8) 태조가 세상을 떠난 후 다음 해(1409년) 정릉이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 하여 사을한 산기슭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옛 정릉의 목재는 태평관(太平館)을 짓는 데 사용하였고, 병풍석과 난간석은 홍수로 무너진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다. 일반묘나 다름없었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정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이 있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석물 중 장명등과 석상(혼유석)을 받치는 고석(鼓石)만 옛 정릉의 석물이고 나머지는 현종 대에 다시 만든 석물이다.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왕릉 중 가장 오래된 석물이다. 능침 아래에 있는 비각에는 1개의 표석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세운 ‘조선국 신덕왕후 정릉’의 표석을 대한제국 때 신덕왕후를 황후로 추존하면서 ‘대한 신덕고황후 정릉’으로 바꾸었다.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다음 백과)
홍살문
향로.어로
왜 나는 신도 어도로 기억하고 있었는지?
판위(版位)
임금이 능역에 들어서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는 곳으로 4배를 함. 배위(拜位)라고도 합니다.
정자각(丁字閣)
제향을 모시는 건물
정청과 배위청 모습이 정(丁)자 같다고 하여 정자각이라 합니다.
요즘 세대는 T字閣으로 부를 듯.
봉분은 멀리서 눈으로
봉분. 혼유석, 문석인. 석마. 장명등. 곡장
수복방(守僕房)
능지기가 머문 방
비각
대한
신덕고황후정릉
1899년 신덕왕후를 신덕고황후로 추존하고 1900년 옛 표석을 갈아서 만든 비석입니다.
신덕황후(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2766
앞의 석조물은 소전대(燒錢臺)
제향 후 축문을 태우는 곳입니다.
시간에 쫓겨 주마간산으로 둘러보았습니다.
답사 기회가 있으면 정릉 답사 후 원찰인 흥천사. 경국사. 봉국사. 영취사도 둘러보길 권합니다.
흥천사
https://12977705.tistory.com/8727650
https://12977705.tistory.com/8727734
경국사
https://12977705.tistory.com/8726139
봉국사
https://12977705.tistory.com/8726140
영취사
https://12977705.tistory.com/8725113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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