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고려산 청련사

임병기(선과) 2016. 10. 3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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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스님이 고려산 꼭대기에서 오련지五蓮池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연꽃이 떨어진 장소에 절을 세웠는데,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백련사, 파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청련사,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적석사, 노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황련사, 검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흑련사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1821년(순조 21) 비구니 포겸包謙이 폐허화된 절을 중창하였고, 1906년 비구니 계근戒根 중수하였으며, 1909년선혜善慧가 산신각을 신축하였다. 그 뒤 비구니 정현淨賢은 1916년에 불상을 개금하고 감로탱화를 조성하였고, 1919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으며, 1936년에는 전면적인 중수를 단행하였다.위쪽에 원통암이라고 하는 작은 암자가 있었으나 1984.5.29 청련사와 합병하였다


 

15년 전

강화도 답사에서도 들리지 않았던 청련사


노거수가 동면에 들기 전,

멋진 만추의 서경에 취할 수 있을 듯하다.


 

 

1906년 고재형의 심도기행에 기록된 청련사


청련사재벽산동靑蓮寺在碧山東 청련사는 고려산의 동쪽의 있는데,
국정승니단지공國淨僧尼但指空 국정사 여승들은 공(空)의 진리 가리키네.
재근용장금역폐在近龍藏今亦廢 근처의 용장사도 폐허되어 없으니,
려왕옥연과운중麗王玉輦過雲中 고려 임금 타신 가마 구름 속을 지났었네.


청련사는 고려산 동쪽에 있으며  국정암國淨菴과 원통암圓通菴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는 비구니들이 살고 있다. 

부근에 폐사된 용장사龍藏寺가 있으며,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머물던 사찰로 전한다.


 

목조아미타 삼존불

"큰법당"에 봉안된 아미타, 대세지보살,관음보살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고 왼손은 배 부분에 놓은 상태에서 중품하생 수인이다. 얼굴은 불신에 비해 큰 편이며,  살찐 얼굴,  눈꼬리가 올라간 긴 눈,  넓은 콧등과 높은 콧날, 다부진 입 등 단정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나발에 육계가 표현되었다.


법의는 변형통견식으로 오른쪽 어깨 위에 반달형으로 걸쳤고 다시 옆구리 사이에 대의를 넣어 옷주름이 사선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는 지그재그식으로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리는 옷 주름 아래로 잔주름이 잡혔으며 그 밑의 맞주름은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다. 드러 낸 가슴에는 수평으로 가로 지른 승각기에 띠 매듭을 묶어 고정하였다. 무릎 밑으로 흘러 내린 옷자락은 그 끝이 왼쪽 무릎 위에 나뭇잎 형상으로 접혀져 있으며, 양 무릎 밑으로 수평의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린다.


불상은 타 지역에서 이운해 온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청련사의 주불로 예경되었던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몽고병란을 피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에서 1270년 사이에 개경의 수준 높은 조각 장인이 조성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삼장탱

1881년(고종 18)에 금어 대허 체훈(大虛軆訓), 봉법(奉法), 상기(庠基) 등이 조성하였다.


삼장보살은 하나의 수미단 위에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하였다. 중앙의 천장보살은 보관과 붉은색 천의와 흰색의 군의를 입고 양손으로 경책을 맞잡았다. 천장보살 좌측의 지지보살은 왼손으로 경책을 잡고 오른손은 설법인을 취하였으며, 우측의 지장보살은 민머리에 붉은색 가사를 입고 오른손으로 보주를 잡았다.


수미단 앞에는 천장보살의 협시로 두 천(天)이 포복을 입은 채 보관을 쓰고 합장을 하고 있으며, 이들 앞쪽에는 정병과 과일을 받쳐 든 공양 천녀(天女)가 표현되었다. 지지보살의 협시로는 용두관(龍頭冠)을 쓴 신중과 산호로 장식한 관을 쓴 신중이 자리하였고, 지장보살의 협시로는 육환장을 든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합장을 하고 서 있다. 붉은색 위주로 채색되었으며 신중의 장검과 시왕의 홀(笏)에는 금박이 사용되었다.

 


현왕탱

1881년(고종 18)에 금어 용담우진(龍潭雨珍)에 의해 조성되었다.

 

황색 병풍을 배경으로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현왕을 판관과 녹사, 동자 등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다. 현왕은 머리 위에 경책을 얹은 관을 쓰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에는 죄인의 이름이 적힌 명부(名簿)를 쥐고 있다. 머리에는 녹색의 두광이 표현되었다. 현왕의 양쪽에는 시왕 중 4구가 배치되었으며, 아래편에는 경권과 두루마리를 든 판관들이 동자와 함께 표현되었다. 현왕의 의자 좌우로는 시자(侍子)들이 일산(日傘)과 파초선, 그리고 창 등을 들고 시립하였다. 붉은색 위주로 채색되어 있으며 녹색과 청색이 적당히 사용되었다. 권속들의 포복에는 금니 문양이 산뜻하게 묘사되었다. 

 


감로탱

1916년에 금어 대원 원각(大圓圓覺)과 고산 축연(古山竺演), 편수(片手) 보경 보현(寶鏡普現)이 함께 이 감로왕탱을 조성하였다.

 

탱화는 화면 가운데 성반(盛飯)을 차려놓은 제단을 중심으로 상단 중앙에는 7여래가 합장하였고, 좌우대칭으로 그림 우측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대세지보살 등 삼존이, 좌측에는 지장보살과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배치되어 있다. 성반 아래에는 2구의 귀왕(鬼王)이 발우를 들고 있으며, 그 왼쪽에는 상복을 입은 재주(齋主)들이 절을 하고 있고 스님들이 범패(梵唄)를 연주하며 의식을 집전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인간들이 현실 생활에서 겪는 고난들이 묘사되었다. 왼쪽 아래에는 여러 벌거벗은 아귀들이 발우를 들고 제단을 향해 있다.

 


신장탱.근자에 조성된 듯 하다.

 

 

 


부도전

 


은화당隱華堂,당화당唐華堂

같은 스승을 모신 승려의 부도일까?

 


은화당隱華堂부도

후보한 정방형 대좌 길쭉하게 탑신을 올리고 상부에 보주를 표현했다.

무른 화강암 재질 때문에 박락이 심하다 . 은화당隱華堂 당호가 새겨져 있다.

 

 

 


당화당唐華堂부도

둥근 대좌 위에 사각 몸돌이 올려져 있다. 탑신이 길어 비석 처럼보인다.

당시에 가난했던 절집 살람을 대변하듯 단순하고, 정치되지 않은 모습으로  당화당唐華堂이란 당호가 새겨진 조선후기 부도이다. 

 

 

 

 


다시 인연 지을 수 있을까?

가을해는 왜 이리 짧은지...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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