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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속초시

양양...영혈사 부도전

by 임병기(선과)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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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 다시 찾았습니다.

그때 뵈었던 동안의 사미승은 어디에 계시는지...

 

오늘은

영동지방 부도 순례 길에 들렸습니다

 

영혈사(201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220

 

수조

 

오층석탑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석탑

https://blog.daum.net/12977705/8726617

 

부도전

영혈사 주차장 200여 미터 직전 임도 옆 약간 높은 모룽이 위에 위치합니다

 

조선 후기 종형 부도 3기

부도비 1기가 유존합니다

 

영암당묘잠선사(靈庵堂妙岑禪師) 탑비

1760년

 

비문
"영암당묘잠선사(靈庵堂妙岑禪師)는, 관동지방 양양의 정암리에서, 김신용(金信龍)의 막내아들로서. 13세에, 출가하여 설악산영혈사에 들어와, 성률 장로(性律長老)의 수제자가 되었다. 제오세(第五世) 관암당 설우(寬庵堂雪佑)로부터 청허(淸虛)하게 법을 받았다. 소시에 어렵게 지내었으나, 막바지 가는 길에 이르러 성공한 자이다.


  지황의 은혜를 잊어가며, 이 땅에 여러 번 절터를 이룬 흔적이 있으니, 돌에 구멍을 뚫어 물에 띄우리만치 수고하시고, 실로 홀로 힘쓰셨으니, 혹이 부처를 뵐 수 있는 신인(信人)이었다. 그는 재물로도 베풀었으니, 그 공을 말하면, 삼세숙세(三世宿世)의 인연이라. 조금도 흠 없는 숙녀 같이 깨끗한 덕행이었고, 성정(性情)이 남과 달라, 마음씨 부드럽고 지나치지 않음을, 평생 업으로 삼았으니, 별로 기특하지 않다하나, 아미타불(阿彌陀佛) 부르는 소리, 그치지 않았으며, 두해(二秋)이어 풍년든 가을날에, 이승을 뜨려는 멸도(滅度)가 보이드니, 삼일 만에 입적하셨다.


  바야흐로 열반성체를 법에 따라 설치하니, 홀연히 서풍(大風)이 크게 일어, 모두가 괴이하게 여겼는데, 그 날 저녁에 이르러, 서기(瑞氣)가 하늘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빛(祥光)이 불멸하니, 오로지 모인 군중이 성체를 받들어 드리며, 정골사리(頂骨舍利) 일과가, 초연히 서쪽 십여 걸음에 있어, 찾아가서 거두어, 석탑에 봉안하였다. 분명하게 보노라 후인(後人)이 만만세(萬萬歲)밝히려니, 이같이 그 공적 본받음은, 이에 틀림이 없도다. 반야(般若)를 모두 이루고 가셨네. 숙연히 이룬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언덕이여!"(출처. 양양문화원.양양의 금석문)    
      

탑비(후면)

 

主上三殿下萬萬世(주상삼전하만만세)

弟子 比丘 淑賢 義淨(제자 비구 숙현 의정)
孫弟子 就文 始訔 淸淑(손제 취문 시은 청숙)

俗 長孫子 金順 萬弼 允弼 云弼(속 장손 금순 만필 윤필 운필)

刻字 洪九三(각자 홍구삼)

乾隆 二十五季 七月 日立(건륭 이십오계 칠월 일 립)

 

위 명문은 제가 찍은 사진 판독입니다

 

주상 삼전하(主上三殿下)는 왕.왕비.왕세자를 말합니다.

속가에 4명의 손자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암당 스님은 결혼 후 출가(비명은 出世) 하였습니다.

건륭 25계(乾隆 二十五季)는 1760년입니다.

 

그런데

양양문화원 자료에 등재된 明谷山人 騰雲 震一 書(명곡산인 등운 진일 서)는 후면에는 보이지 않으며 비신 전면에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主上三殿下萬萬世(주상삼전하만만세)와 세운 시기인 乾隆 二十五季 七月 日立(건륭 이십오계 칠월 일 립), 손제자(孫弟子)의 자(子) 명문을 편집 과정에 누락된 듯 합니다. 

 

主上三殿下萬萬世

 

刻字 洪九三

乾隆 二十五季 七月 日 立

 

弟子 比丘 淑賢 義淨
孫弟子 就文 始訔 淸淑

俗 長孫子 金順 萬弼 允弼 云弼

 

영암당 부도비

부도전 3기 부도 중에 영암당 당호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부도(1)

자연암반 지대석은 본래 부재가 아닙니다.

하대석은 결실, 중대석과 상대석이 일석이며, 원구형(거의 편구형) 탑신에는 당호가 있으나 식별되지 않습니다.

거의 직각의 옥개석과 상륜의 보주를 크게 조성하여 비례가 맞지 않습니다.

 

기단. 탑신석

 

옥개석, 상륜부

 

부도(2)

자연 암반을 지대석으로 삼고, 팔각 대좌 위에 원구형 탑신을 올렸습니다.

옥개석과 보주는 후보물입니다

 

부도(3)

암반을 지대석으로 삼았으며, 대좌는 망실된 것 같습니다

길쪽한 조형 탑신 위에 두텁게 조성한 복련은 바람에 잎이 들려 있습니다.

탑신과 일석인 보주는 작습니다.

 

영혈사 부도전

본래 위치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듯 합니다.

왜냐하면 지대석으로 삼은 암반이 본래 부재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부도비에도 주목할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은 범자문이 새겨져 있으며, 출가(出家)가 아니고 출세(出世)라고 표기하였습니다.

속 장손자 금순,만필. 윤필. 운필(俗 長孫子 金順 萬弼 允弼 云弼)명문으로 판탄컨데 영조 재위 시에도 결혼 후 스님이 된 사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부도비입니다.

 

2021.06.27

 

금강산, 설악산의 부도, 부도전

https://blog.daum.net/12977705/872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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