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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영암군

영암...건릉 향탄 금표와 도갑사 주변 장생

by 임병기(선과) 202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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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과 도갑사

여행 매니아는 물론이고 답사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답사의 메카입니다.

 

아주 여러 번 답사했는데 마지막 글이 2,009년입니다.

http://blog.daum.net/12977705/8722956?category=5205

 

그리고

도갑사 입구 장승

모두에게 사찰 장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다른 답사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잘 못된 지식을 살펴보겠습니다.

문화재청 자료를 옮겨오니 제 글을 일독 후 오류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영암죽정리국장승 (靈岩竹亭里國長生)

전남 민속문화재 18호

구림리에서 도갑사쪽으로 1㎞쯤 되는 북쪽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장승으로, 장승이 서 있는 이곳이 도갑사로 가는 옛길로 전하고 있어 절의 영역을 표시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높이 115∼125㎝, 폭 67∼70㎝, 두께 36∼42㎝ 크기의 자연석으로, 장승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나 무신의 모습을 조각한 일반적인 형태와는 달리, 자연석 앞면에 두 줄의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 ‘국장생’이란 글자를 큼지막하게 새긴 비석의 형상을 하고 있다. 왼쪽 윗부분은 비스듬하게 깨졌고, 장승의 좌·우 아랫부분에는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는 글자가 보인다.

장승을 세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국장생’의 ‘장생’이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사용되던 말로 기록되어 있어, 우리나라 장승유물 가운데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보물로 지정된 경남 양산의 통도사 국장생과 비교되는 유물로, 인근의 도갑사 황장생과 더불어 우리나라 장승연구의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암소전머리황장승 (靈岩소전머리皇長生)

전남 민속문화재 19호

동구림리에서 도갑사 방향으로 오른쪽 400∼500m 거리에 있는 소전머리 대나무밭 옆에 자리한 장승이다. 보통 장승이라고 하면 나무나 돌의 윗부분에 사람의 얼굴을 새기거나 그려 넣은 기둥을 말하는데, 이 장승은 비석의 형태를 하고 있다.

높이 105∼120㎝, 폭 68㎝, 두께 22∼26㎝로, 앞면 가운데에 ‘황장생(皇長生)’이라는 세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뒷면 모서리 부분이 약간 깨진 상태이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라고 한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곳에 정성을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장생이라는 말은 주로 통일신라와 고려 전기에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보다 훨씬 전에 이 장승을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제작년대를 통일신라나 고려시대로까지 볼 수 있어, 우리나라 장승의 역사를 연구하는데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암메밀방죽옆장승 (靈岩메밀방죽옆長生)

전남 민속문화재 20호

군서면 서구림리와 학산면 용산리의 경계인 메밀방죽 옆에 자리하고 있는 돌장승이다. 가까운 곳의 죽정리 국장승에 새겨 놓은 ‘석표사좌(石標四坐)’ 중의 하나로, 근처에 있는 도갑사(道岬寺)의 경계표시를 하기 위해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크기는 높이 121㎝, 너비 50∼70㎝, 두께 13∼30㎝ 이며, 보통의 장승이 사람이나 신장의 모습을 새기는 것과는 다르게,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한쪽 면에 3글자를 큼지막하게 새긴 비석의 형상을 하고 있다. 3글자는 장승의 윗부분이 깨져나가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하나 있고, 그 밑으로 ‘장(長)’자와 ‘생(生)’자가 보인다.

장승을 세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장생’이란 용어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사용되던 말이라는 기록이 있어,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 ‘죽정리국장생’이나 ‘동구림리황장생’과 함께 조선시대 이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자료가 오류라는 제 글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건릉 향탄 금표

도갑사 입구 국장생 옆에 위치

정확한 명문은 건릉향탄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健陵香炭奉安所四標內禁護之地) 입니다.

즉, 정조의 능인 건릉 제례 등에 사용하는 향탄의 재료인 향나무와 참나무를 공급하는 지역으로 월출산 들머리 4곳에 금표를 세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건릉 향탄 健陵 香炭

 

봉안소 사표내 奉安所 四標內

 

금호 지지 禁護之地

 

 

 

이제

위에서 거론한 장승을 살펴보겠습니다.

 

4곳 장생 명문은 확인된 國長生. 皇長生, O長生(메밀방죽). O長生(발견되지 않음)입니다.

조성시기는 정조의 건릉 조성 이후이며, 근거가 없지만 황(皇)으로 미루어 짧게는 고종 이후로 추정합니다.

 

영암 죽정리 국장승 (靈岩竹亭里 國長生)

건릉향탄금표 바로 옆에 위치합니다.

 

국장생 國長生

국(國)은 나라에서 지정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사표석 四標石

하단에 새겨진 명문입니다.

 

즉, 건릉향탄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健陵香炭 奉安所 四標內 禁護之地)에 새겨진 사표석의 하나입니다.

문화재청 자료를 다시 읽어 보시면 오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靈岩소전머리皇長生)

황(皇)은 국가에서 지정했다는 의미로 국(國) 동일한 뜻으로 추측됩니다.

진도를 더 나가면 황(皇)으로 미루어 대한제국 고종 황제 이후로 생각됩니다.

 

매몰된 하단을 걷어내면  사표석(四標石)명문이 있지 않을까요?

 

 

 

 

영암 메밀방죽옆 장승 (靈岩메밀방죽옆長生)

 

 

잘려나간 하단부에 사표석(四標石)명문이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의 봉산.금표.화소

http://cafe.daum.net/moonhawje/MebK/239?q=%EC%9A%B0%EB%A6%AC%EB%82%98%EB%9D%BC%EC%9D%98%20%EB%B4%89%EC%82%B0.%EA%B8%88%ED%91%9C.%ED%99%94%EC%86%8C

 

결론

도갑사 인근에 자리한 장승은 사찰 수호 장승(벅수) 아니며, 도갑사 경계표석은 더더욱 아닙니다.

조성 시기도 건릉 조성 이후이며 그 이전에 세워졌다는 자료는 근거가 미약합니다.

장생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 이정 표석을 뜻했던 장승의 영향을 받은 명문으로 추정되며, 건릉에 공급되는 향탄 원료인 향나무와 참나무를 보호하는 지역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금표비입니다. 사표석을 세웠다면 어딘가에 1기가 더 있었을 것입니다.

 

초야에 묻혀 사는 중생의 문제 제기를 관심 있게 살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랑스럽지 못하더라도 부끄러운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2020.06.26

 

******

 

끝까지 글을 읽은 분들에게 사과 말씀드립니다.

본 답사기는 고문헌 등을 확인하지 않고 쓴 오류이며 픽션입니다.

 

오류의 시작

건릉향탄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健陵香炭 奉安所 四標內 禁護之地)와 석표사좌(장생)를 동시대에 조성하였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간단히 검색만 하였어도 쉽게 확인 가능한 사실인데도 오류를 범했습니다.

 

올바른 해석

건릉향탄봉안소사표내금호지지(健陵香炭 奉安所 四標內 禁護之地)는 기존의 석표사좌 구역 안쪽이 건릉향탄구역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장생이 금표보다 먼저 조성되었고, 시기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뿐만아니라 장승은 도갑사 경계석이 분명합니다.

 

원문

수정 않고 그대로 둡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틀린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카페에 올린 글에 댓글 주신 세종아빠님,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카톡으로 오류를 지적해준 페친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하며 세종아빠님의 댓글을 전재합니다.

 

"저도 올해 초에 다녀왔는데요. 저는 안내문의 설명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갑사 국장생 황장생은
1487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 "택리지"(1753) 등 여러 자료에 나옵니다.
당시에도 있었다는 뜻이고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고려 때 세워졌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국장생 좌우에도 글씨가 있는데 거기에서 '도갑사'라는 글씨까지는 판독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표는
본래 도갑사의 경계(또는 영역) 표시인 4표 안쪽을 건릉 향탄을 위한 '금호지지'로 정했다는 내용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국장생 하단의 글자는 언급하신 안내문처럼 '석표사좌'로 판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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