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금산군

금산...태조대왕 태실

임병기(선과) 2020. 1. 1. 05:14
728x90
728x90

 

 

태종대왕 태실비

추부면 마전리

본래 위치는 무학대사의 지시로 함경도 용연龍淵에 있었는데,조선건국 후 왕위에 오른 뒤인 1393년(태조 2)에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태실을 안치한  태실증고사(使)와 봉안사(使)는 권중화()였으며, 태실이 봉안된 후 진동현()은 지진주사()로 승격되었습니다.

 

그 연유는 금산군청 홈페이지에서 실려 있습니다. "고려 말, 조선 초. 풍수지리에 능한, 한 시인이 이 산을 지나면서 “산의 모양이 깊고 두터우며 굽이굽이 겹쳐진 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계곡의 물이 한곳에 모여 흐른다.”고 극찬한 이후, 조선을 개국한 태조가 함경도 용연지역에 있는 자신의 태를 이 산에 옮겨와 태자의 태와 함께 안치하여 나라의 태평성대를 염원한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문외한의 눈으로 바도 태실이 위치할 자리는 아닙니다.

이마 햔의치 위쪽 봉우리가 본래 위치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에 서삼릉으로 태실이 강제로 이태된 후 훼손되었으며, 흩어져 있던 부재를 수습하여 다시 복원한 것 같습니다.

 

태종 태실을 검색하면 "일제강점기 대전, 도로를 개설하면서 1차 훼손된 후, 그 땅은 친일파로 알려진 조병갑에게 넘겼으며, 이후 1928년 서삼릉으로 이태되었고, 1993년 복원되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또한, 비석 후면 명문으로 미루어 판단컨데 본래의 태실비는 아닙니다.

 

 

 

귀부

 

 

 

 

 

태비

3개로 파손 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전면

태조대왕 태실 太祖大王胎室

 

 

후면

강희 28년 3월 29일 중건 康熙 二十八年 三月 二十九日 重建

즉 1689년 다시 세운 비석 입니다.

 

 

이수 전면

 

 

이수 측면

 

 

이수 후면

 

 

태실

둘레석에 동자주가 생략

 

 

 

 

지대석

 

 

기단(사방석)

 

 

중동석과 개첨석

일체형 입니다.

 

 

 

무슨 연유로 비석이 3등분 되었을까요?

 

2019.12.14

 

728x90
728x90

'충청남도 > 금산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산...덕흥대원군 태비. 태함  (0) 2020.07.15
금산...대둔산 태고사  (0) 2020.07.15
금산...백암리사지 석불좌상  (0) 2016.12.13
금산...계진리 미륵불  (0) 2014.11.06
금산...원흥사 부도전  (0) 201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