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금산군

금산...덕흥대원군 태비. 태함

임병기(선과) 2020. 7. 15.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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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대원군 아기 태비

금산 역사문화박물관 전시 중

 

덕흥대원군의 태실 위치는 일제강점기에 이태된 후 훼손되었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삼릉의 태지석 명문으로 태조와 더불어 금산 추부에 있었으며 아명이 환수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훼손된 태실의 태비와 태함을 금산의 주민이 보관하고 있었으며, 2,016년 전면에 왕자 환수 이름이 확인되어 덕흥군으로 밝혀졌습니다.

 

1,889에 쓰인 진산군여지승람(珍山郡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태조와 덕흥군 태비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胎室山 在郡東三十里 太祖登極二年洪武癸酉移封永興所安 聖 胎陞縣爲州 太宗朝永樂癸巳(1413년)

改爲郡東局外東數里有新胎封凡乃歡壽阿只氏胎也 "(서삼릉태실연구소 자료 참조)

 

즉, 태조 가봉태실로 부터 동쪽에 환수아지씨태가 있음을 고문서로도 확인이 됩니다.

 

태조대왕 태실

http://cafe.daum.net/moonhawje/DjZP/4895?q=%EA%B8%88%EC%82%B0...%ED%83%9C%EC%A1%B0%EB%8C%80%EC%99%95%20%ED%83%9C%EC%8B%A4

 

(전)왕자 환수  王子 歡壽

(후)가정 구년  嘉靖 九年

1,530년

 

덕흥대원군

중종의 서자, 선조의 아버지

이초(李岧)는 1530년(중종 25년) 3월 5일, 경복궁에서 중종의 서 9남이자 증 의정부 좌의정 안탄대의 딸 창빈 안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패(景伂)이다. 어렸을 때 이름은 환수(歡壽)였는데 훗날 초(岧)로 개명했다. 9세 때인 1538년(중종 33년) 덕흥군(德興君)으로 책봉되었다. 형제로는 영양군 이거, 정신옹주가 있다.

 

덕흥군은 13세 때인 1542년(중종 37년) 영의정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손자로 지중추부사와 판중추부사를 지낸 정세호의 딸 하동 정씨와 가례를 올린 다음 전례대로 궁궐을 나가 한성부 인달방의 도정궁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장남 하원군 이정을 비롯하여 장녀 이명순, 차남 하릉군 이인을 얻었고 1552년(명종 7년) 11월 11일 훗날 선조가 되는 3남 하성군 이균을 얻었다. 그 외에 비첩으로 추측되는 측실 순단(順單)으로부터 차녀 이혜옥을 얻었다. 1559년(명종 14년) 5월 9일,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경기도 양주군 남면 수락산 언덕에 묻혔다.

 

 

 

 

 

야외 전시장

덕흥군 태비 대좌(?), 덕흥군 태함, 삼층석탑, 석등 하층기단

 

태함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태함 속 태항아리. 태지석은 일제강점기에 서삼릉으로 옮겨졌습니다.

 

선조 이전

돌기가 표현되기 전의 전형적인 태함 모습니다.

 

 

 

 

박물관 폐문 시간이 지나 도착하였지만

한 사람의 방문객을 위해 다시 문을 열어준 당일(06월 20일) 근무자이었던  예쁜 아가씨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드립니다.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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