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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고양시

고양...북한산 국녕사 한월당 부도

by 임병기(선과) 2019.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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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장환희여래불(合掌歡喜如來佛) 좌상


국녕사國寧寺

"부황사(扶皇寺) 서남쪽 아래인 이곳은 옛날부터 신라의 의상(義湘)이 참선하던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 때문에 절 뒤쪽의 봉우리를 의상봉이라 하였다. 유정(惟政)은 조선 후기에 사찰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이곳에 사찰이 들어선 것은 북한산성의 축조와 연관되어 있다. 당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던 성능(聖能)의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숙종 39년(1713)에 당시의 승려 청철(淸徹)과 청선(淸禪)이 북한산성을 축성할 때 팔도의 사찰에 영을 내려 의승(義僧)을 뽑았고 이들 의승을 산성 안에 두고 수비와 관리를 위해 13개의 승영사찰(僧營寺刹)을 지었는데 국녕사(國寧寺)는 이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사세가 확장되었을 때는 86칸에 이를 정도의 큰 규모의 절이었다. 국녕사의 위치로 보아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의 성벽과 그 중간에 위치한 가사당압문(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맡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제가 폐지될 때까지 존속했지만 대일항쟁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되었다.


그 후 폐허가 된 터에 비구니 보경이 임시 건물을 짓고 50년간 사찰의 명맥을 유지했는데, 이 건물도 1991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사단법인 능인선원의 원장인 지광이 조계종의 의뢰를 받고 1998년 10월부터 불사에 착수해 사찰을 복원하였는데, 현재는 보경이 주지를 맡아 능인선원의 수련원으로서 중창 불사를 이끌고 있다.국녕대불 뒤의 의상봉 아래에 석주 모양으로 불쑥 올라와 있는 석봉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현재는 접근할 수 없어 조사할 수는 없지만 멀리서 보면 어렴풋이 반가사유상을 취한 마애불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승영사찰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국녕사를 비롯해 근래에 사단법인 불광사가 복원한 중흥사와 태고사(암)·진관사·노적사·승가사·상운사 등이 있다."

(다음배과사전에서 발췌)


 

한월당대선사(漢月堂大禪師) 부도

절 초입에 위치


 

조선후기 석종형 부도

절대년도(1792년)를 알 수 있는 봉성암 보련당 응향스님  부도와 흡사합니다.

따라서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에 조성한 부도로 추정됩니다.


 

방형 지대석 중앙에 굄을 두어 탑신을 올렸으며, 위가 넓은 탑신 위에는 일석으로 연화 보주를 새겻습니다.


 

기단부


 

한월당대선사(漢月堂大禪師)


 

연화보주


 

일제강점기 항일운동,한국전쟁의 전화를 입지 않았다면 한월당대선사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을텐데.

이제는 영원히 조선후기를 국녕사에서 주석하셨던 분으로 추정할 따름 입니다.


 

북한산 도선사를 들머리로 하여 인수봉.백운대.용암사지.봉성암.태고사.산영루.용학사. 국녕사를 경유 북한산 주차장으로 하산, 휴게시간 포함 8시간 20분이 소요 되었습니다. 함께한 동호회원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북한산의 숨은 옛님이 또다시 나투시길 염원합니다.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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