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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봉산 천축사.마애부도

임병기(선과) 2019. 10. 3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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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사 天竺寺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673년(문무왕 13)에 의상(義湘)이 만장봉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의상대(義湘臺)에서 수도할 때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명종 때는 영국사(寧國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부속 암자로 삼았으며, 1398년(태조 7)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寺額)을 내렸다. 절 이름을 천축사라고 한 것은 고려 때 인도 승 지공(誌公)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474년(성종 5)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는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헌납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1812년(순조 12) 경학(敬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은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여러 차례 중수했는데, 현재의 당우는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圓通殿)·복운각(福雲閣)·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참선도량인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특히, 무문관은 근래에 세운 참선 정진처로서 부처의 설산(雪山)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을 면벽수행(面壁修行)하는데, 방문 밖 출입은 일체 금지되어 있고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며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하다. 고승 중 이 무문관에서 6년 또는 4년의 정진을 한 이들이 많다.


전래되는 유물 가운데 문정왕후가 헌납한 화류수목조용상(樺榴樹木彫龍床)은 대웅전 안에 보존되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약 50년 전에 창건한 석굴암이 있다. 당우로는 석굴·만월보전(滿月寶殿)·나한전(羅漢殿)·종각(鐘閣)·요사채 등이 있으며, 석간수(石澗水)가 좋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도봉역에서 출발

도봉동문道峰洞門 암각자가 눈에 들어 옵니다


 

도봉동문道峰洞門

안내문에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도봉서원지

"도봉서원은 현재 서울 지역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서원이다. 1573년(선조 6)에 양주 목사(楊州牧使)로 부임한남언경이 조광조)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했고, 이듬해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후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조선 시대 서울·경기 지역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서원이며, 그 건립 과정은 16세기 사림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원의 건립자는 양주에 목사로 부임하였던 남언경이었다. 1573년남언경이 도봉서원 건립을 시작했을 때는  율곡을를 중심으로 하는 사류들이 조정에 대거 진출하여 세력을 형성해 나가면서 기묘 사림의 복권과 훈신(勳臣)의 축출이 완료 되어가던 때이다. 남언경은 기묘 사림의 우두머리인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도봉산 영국사(寧國寺)터에 서원을 영건하고  조광조를 제향하였다."(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


도봉서원지 발굴과정에서 영국사에서 사용했을 공양구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유물이 대량으로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고산앙지(高山仰止)

시경(詩經) 소아(小雅) 차할편(車舝篇)에 나오는 문구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입니다.

 곡운 김수증(1624~1701)이 조광조의 덕을 우러르는 마음에서 1700년(숙종 26)년에 새겼다고 합니다.

 

 

선인봉(?)


 

천축사 일주문


 

마애부도는 천축사 일주문 향우측 바위에 있습니다.



청신녀 정월 영주봉안탑 淸信女 淨月 靈珠奉安塔

정축사월일 丁丑四月日

(1757,1817.1877)

개인적으로는 1877년으로 추정 합니다.


이 부도 촬영할 때는 주의를 요합니다.

 

 

 

 

 

 

 

 

 

 


신녀 O영 영주탑 信女 O英 靈珠塔

임오팔월 壬午八月

(1762,1822,1882)

개인적으로는 1882년으로 추정합니다.


정월淨月부도와 같은 바위 뒤편에 있습니다.

 

 


신녀 O영 영주탑 信女 O英 靈珠塔

 


임오팔월 壬午八月

 

 

 

 

 

 


암각문

일주문 지나 향우측 바위에 위치

마애부도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는 명문이 없을까요?.

 

 


천축사 목조삼존불

"석가모니불의 복장에서 발견된 두 장의 발원문은 불상의 중수 사실을 기록한 원문이며, 조성 원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첫 번째 1713년 발원문은 만력(萬曆)[1573년~1619년] 연간에 조성한 삼불(三佛)을 개금하고 중수하여 민지사(閔漬寺)로 이전하였다는 점과 각 불상의 명칭을 명시한다. 또한 진열(進悅)·영희(靈熙)·태원(太元)·처림(處林)·청휘(淸徽) 등 중수에 참여하였던 조각승(彫刻僧)과 불화승(佛畵僧)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목조삼존불은 1573년에서 1619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1730년 발원문은 황금을 시주 받아 개금불사한 후 서암사(西岩寺)에 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17년 만에 민지사[서암사의 옛 이름]에 봉안되어 있던 삼불상을 다시 중수하였다고 전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축사에는 비로자나삼존불도, 괘불도를 소장하고 있으나 사시예불중이어서 배관하지 못했습니다.

 

(출처/문화재청)

천축사비로자삼존불도

"불화는 가로가 긴 화면이 상하로 구분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삼신불이 나란히 앉아있고, 하단에는 보살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삼신불은 중앙에 지권인(智拳印)을 취한 법신 비로자나불, 왼쪽(向右)에는 양손을 어깨높이로 들어 설법인(說法印)을 취한 보신 노사나불, 오른쪽에는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올린 설법인을 취한 석가모니불이 자리하고 있다. 삼불은 모두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지고 목리문(木理文 : 나무결 무늬)이 표현된 불단 위의 연화좌에 앉아 있다.

삼불 이외의 공간에는 최상단에 4보살과 좌우에 시방제불, 그 아랫단에는 2보살과 범천 및 제석천이 삼불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그 아랫단은 삼불과 하단의 보살중 사이에 해당하는데 중앙 비로자나불의 무릎 좌우에는 가섭과 아난존자, 양 끝에는 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하단의 8보살은 모두 원형의 두광과 모서리가 둥글려진 직사각형의 신광을 지고 있다. 지장보살을 제외한 모든 보살은 동일한 모습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각기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이 불화는 이처럼 삼신불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19세기 중엽부터 서울.경기 지역에서 활발하게 불화제작을 한 경선당 응석(慶船堂 應碩)이 편수(片手)를 맡아 환감(幻鑑).혜조(慧照).경림(璟林).탄인(呑仁).창오(昌悟) 등이 제작한 작품이다. 경선당 응석은 천축사 삼신불도처럼 전통적인 화법으로 작품을 그리되 간혹 도상을 나름대로 변화시켜 새로운 도상을 창출하곤 하였다. 갸름한 얼굴과 지극히 작은 이목구비의 얼굴, 꽃무늬가 새겨진 대의, 적.녹.청색의 색조, 목리문의 표현 등 응석 불화의 양식적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화폭의 오른쪽 하단에'臣尙宮己酉生朴氏 尙宮己酉生金氏等○○奉爲 王妃殿下辛亥生閔氏玉體恒安聖壽萬歲'라 시주질이 기록되어 있어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명성황후 민씨(1851∼1895)를 위해 시주한 불화임을 알려주고 있다.

상태는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으나, 화면의 상단이 그을음 등으로 채색이 어두워져 있고, 화폭의 상단 오른쪽이 일부 찢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 불화는 19세기 서울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 응석이 주관하고 대선사 하은 예가(荷隱 例珂 : 1828~1898)가 증명한 불화로 독특한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되는 작품이고, 또한 명성황후를 위해 상궁들이 시주하여 제작하였다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1891년 경선당(慶船堂) 응석(應釋), 환감(幻鑑), 혜조(慧照), 경림(璟林), 탄인(呑仁), 창오(昌悟) 등 여러 명의 화승이 공동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들 중 수화승은 편수(片手) 역할을 맡았던 응석이었으며, 비로자나삼존불도 외에 천축사에 소장되어 있는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신중도(神衆圖)도 동시에 제작하였다."(문화재청)



석조부재

 

 

 

 


석조

 


소맷돌


암각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도봉서원지 주변의 새겨진 각자 탐방을 권합니다.

 


 천축사 가는 길...목필균
   
 먼 산빛을 친구 삼아
도봉산에 오르면
천축사 가는 길은 열려있다.

젊은 까치 소리에 눈웃음 치고
이름 모를 풀꽃에도 손길을 주며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걸으면
노래하듯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가
오히려 내 갈 길을 재촉하니 재미있다.

도봉산을 품어 안은
천축사의 끝없는 도량을 향해
일상의 상념들을 날려보내면
근심은 바람 되어 맴돌다 사라진다.

티끌 같은 몸뚱이에 자리잡은
바위 만한 욕심덩이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되돌아보는 시간.
천축사 가는 길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다.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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