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상북도/울진군

울진...동림사 삼층석탑

by 임병기(선과) 2019. 10. 22.
728x90
728x90

 

 

 

동림사

2010년 마지막 발걸음 하였습니다.


 

삼층석탑

대흥사지에서 옮겨 온 석탑으로 전합니다.


아래, 대흥사지 부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단층 기단의 삼층석탑

본래는 이층기단으로 추정 되며, 고려전가 석탑으로 생각됩니다.


 

지대석

기단중석은 우주와 탱주 1기를 모각하였고, 감입식으로 결구했습니다


 

우주

우주에 면석을 물렸습니다.

이런 작례의 석탑은 현재까지 동림사를 포함 12기가 전하며, 백제계 석탑의 특징으로도 이해 합니다.


그 작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흥 보림사 하층기단 중석,해남 대흥사 하층기단 중석,보성 봉천리 오층석탑 초층 탑신석(면석에 우주를 물고 있음),광주 신룡동 오층석탑 상층기단 중석,광주 서오층탑 상층기단 중석, 광주 증심사 상층기단 중석,통도사 사자목 오층석탑 초층 탑신석,경주 남산 지암곡 2사지 기단중석,영주 서부리 삼층석탑 기단중석,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초층탑신석,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상층기단 중석.


 

기단갑석

내림마루가 높고, 탑신 굄은 2단 입니다.


 

탑신석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상촉하관입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현수곡선이 나타나며, 2단 굄을 조출하였고, 층급받침은 전층 4단 입니다.


상륜부는 망실되었습니다.

 

 


현재 석탑의 상층기단갑석은 1매 부재이기 때문에 하층기단 갑석으로 추정됩니다.

 

 

 

(2010.08.04)


10년전에 찍은 사진 입니다.

 


문득문득 

대흥사지 부도가 스쳐 갑니다.

산골 마을 성황목도 그립고...


2019.10.06 


대흥사지 부도


 

 

대흥리 성황목

우리에게 익숙한 불령계곡 불령사 못미쳐 우측으로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지는 길을 굽이굽이 돌아 찾아든 동리.

아~

동구밖 성황목이 버선발로 마중나와 두팔 벌려 반긴다.

 

금줄로 미루어 올해도 민초들의 염원을 품은 동제를 올린듯 하여 흐뭇한 미소가 절로 흐른다.

 

 

대흥사지

대흥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달빛에 물든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후의 사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시대 고문서인 여지도서, 범우고, 관동지 등에서 사명이 확인되고 유존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강원도 울진현지도江原道 <蔚珍縣地圖>(1872년)에 대흥암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조선후기까지 향화를 피웠음을 알 수 있다.

 

대흥사지 답사에 앞서 정림리에서 만났던 분의 증언에 의하면 정림사 폐사 후 스님들이 불상을 가지고 대흥사로 옮겨갔으며, 대흥사 폐사로 울진읍내 동림사로 불상이 옮겨 갔다는 말씀을 들었다.의구심을 갖고 들었으나 나의 동림사 답사기를 비롯 여러 자료를 검색해보면 증언이 사실로 확인된다. 더구나 대흥리 본동마을 출신 인물을 인터뷰한 지방매체 기사를 보면 1963년까지 대흥사가 유존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울진 뉴스...2011.07.26

일평생 무속인으로 살고 있는 이해창씨 이야기

이창해씨는 미파골 산골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도 어린 시절에 대흥리 본동마을의 대흥사 경내에서 태권도를 배웠었다고 전한다.
“태권도를 배울 때가 열네 살 정도였지요. 당시에는 대흥리 본동에 대흥사 절이 그대로 있었어요. 그 후 1963년도에 대웅전을 전부 다 뜯어서 울진읍내 동림사로 옮겨서 다시 지었거든요. 그때 대흥사에 태권도 사범이 한사람 머무르면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태권도를 가르쳤어요. 처음 삼개월 동안은 삯을 내지 않고 새끼를 감은 나무작대기에 토종꿀 밀을 발라서 법당 마룻바닥을 밀고 닦아서 광도 내고 청소도 하고 그러면서 공짜로 태권도를 배웠지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한 달에 쌀 두되도 주고 세대도 주었어요. 그때 쌀 세 되면 많았지요. 사범 이름이 문정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멀리 깨밭골에서도 태권도를 배우러 왔어요. 태권도 문파는 청도관이었고요. 그때만 해도 대흥사 대웅전에는 삼존불이 있었고, 절 좌측으로는 산신각이 하나 있었고, 요사채도 있었지요. 요사채에는 장원준 아버지라는 분이 살았는데 그때 이미 92살인가 그랬어요. 아들인 장원준이라는 사람도 이미 70을 넘긴 나이였고요. 스님들은 없었습니다. 명절이면 대흥사에서 활동사진도 보여주고, 여러 사람이 화장을 하고 꾸며서 재미있는 연극도 하고 그랬지요. 당시에는 대흥리 본동과 인근에 170 여호가 넘게 살았으니 산골치고는 상당히 큰 마을이었습니다. 술과 담배, 과자를 팔던 가게도 있었으니까요.”

 

현재 사지에는 부도와 와편만 옛영화를 지키고 있지만  울진에 전해오는 설화에 의하면 괘불도 있었으며 노음리에서 이건한 탑으로 추정되는 동림사 삼층석탑도 대흥사에서 노음리로 옮겨 갔다는 이야기도 구전된다고 한다.

 

괘불전설

옛날에 대흥사에 괘불이 있어 큰 가뭄이 있을 때는 이 괘불을 시외에 옮겨 달아 설치하여 놓고 비가 오기를 기도하며 푸닥거리를 하였다 한다. 그러나 1876년(조선조 고종 13년 병자)에 가뭄이 혹심하여 지난 예에 의한 승도들로 하여금 남자무당들이 굿(푸닥거리)을 7일이나 비가 오기를 빌었으나 실천함이 없는지라 본군 군수에 버금하는 사람인 김진영이 신령이 없다하여 드디어 괘불을 불태워 버렸다 한다.

 

 

동림사 대웅전. 삼층석탑...2010년 8월 4일 촬영

 

 

동림사 대웅전 삼존불.2010년 8월 4일 촬영..

 

 

대흥사지 부도

오래전 도괴되었던 부도를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팔각지대석위에 팔각괴임을 일석으로 두고 종형탑신과 상륜이 일석으로 조성된 조선후기의 부도이다. 

대좌에는 가경이십삼년무인계사월일립 부도嘉慶二十三年戊寅秊四月日立浮屠(1818년.순조 18년. 4월)명문이 있다고 하나 육안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탑신에는 서산칠세손지허당지현탑 西山七世孫振虛堂知玹之塔 명문이 세로로 음각되어 있어 부도 주인공을 밝히고 있지만 서산대사의 문도 계파가 워낙 많은 까닭에 지현스님의 행적은 추적하지 못했다.

 

상륜은 원형괴임 위에 연봉형 보주를 올렸다.


 

 

서산칠세손지허당지현탑 西山七世孫振虛堂知玹之塔

 

 

가경이십삼년무인계사월일립 부도嘉慶二十三年戊寅秊四月日立浮屠.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웠다.

 

 

상륜

괴임과 연봉형 보주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우리네 고향 봄날.

무디어진 감성이 안타깝기만 하다.

 

연록으로 물든 폐사지에서는 

가볍게 소설 한 편 탈고 해야 하는데...

 

2017.04.26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