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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울주군

울산...편장군 승첩동(片將軍勝捷洞) 및 전운랑 영기 하마( 轉運郞 永基 下馬)각자刻字

by 임병기(선과) 2019.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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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장군 승첩동(片將軍勝捷洞) 및 전운랑 영기 하마( 轉運郞 永基 下馬)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450-2번지. 도로변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여름철

답사객들의 심기는 불편합니다.


 

여기를 찾은 까닭은

임진.정유 양란에 우리나라에 참전하였다가 귀화한  명나라장군의 전쟁 승리 기념 각자를 보기 위함 입니다.

그간

일본군인으로 참석했다 귀화한 우록 김씨의 시조 김충선( 사야가)의 녹동서원,명나라 장군 두사충을 모신 모명재,절강 서씨의 시조인 서희,절강 시씨의 시조인 시문용 재실을 답사하였습니다.



편장군 승첩동(片將軍勝捷洞)


십일대손 전운랑(十一代孫 轉運郞)

영기 하마(永基 下馬)

임진 윤육월 일(壬辰 閏 六月 日)

 

 

편장군 승첩동(片將軍勝捷洞)

편장군의 승리를 기념에 새긴 비문


 

편갈송(片碣頌:자 景修, 호 幕幹). 절강 편씨의 시조.


"선대는 당나라 종실의 후예로 원래는 이씨였다. 그의 고조 이지(李址)가 명나라 한림학사로 있을 때 영종이 동궁에 있으면서 궁인 원씨(袁氏)를 총애하다가 제위에 오르자 원씨가 황후의 망상을 품고 암약하자 모든 신하들은 원씨를 비호했으나 그는 「정실을 황후로 책봉하는 것이 천리에 마땅하다. 」고 극간 하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고 하옥 당했다. 그러나 끝내 굽히지 않고 정도를 주장하자 임금이 그의 충절을 치하하며 일편단심의 <편(片)>자를 따서 사성함으로써 편씨가 되었고, 그의 아들 일(鎰: 시호 貞武)이 이부시랑으로 절강백에 봉해져서 절강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우리 나라 편씨의 시조인 편갈송은 명나라 어양총절사로 있다가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해 12월에 유격장군으로 어양병 2천을 거느리고 이여송의 아장이 되어 우리 나라에 와서 평양을 탈환하는 등 많은 공을 세우고 이듬해 8월 귀국했다. 정유재란 때 다시 마귀의 중군도독으로 나와 경략 중군도곡 겸 병부상서 총독군문 부원수가 되어 직산에서 대첩을 거두고 선조로부터 노고를 치하하는 친서를 받았으며, 서생포에서 적을 궤멸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러나 당시 본국 조정에 아첨과 모해를 좋아하는 간신 정응태(丁應泰)가 그의 영예를 시기하여 모함한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단념, 경주의 금오산에 은거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아들 풍세(豊世), 풍원(豊源), 산보(山甫) 3형제가 우리 나라로 들어와 아버지를 봉양하다가 상을 당해 금오산에 안장하고 3년상을 치른 후 경주를 떠나 풍세·풍원은 나주에 산보는 만경에 세거처를 마련했다.경남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 <편장군 승첩동>이라는 마애비가 있고, 그곳의 창표당에 마귀와 함께 제향되었다."(출처/다음)


 

 

십일대손 전운랑(十一代孫 轉運郞)

영기 하마(永基 下馬)

임진 윤육월 일(壬辰 閏 六月 日)


편장군 승리 기념비를 그의 11대손인 전운랑 영기가 참배하였다는 명문 입니다.


전운랑轉運郞?

조선왕조실록에 한 번 실려 있습니다.


고종실록 24권, 고종 24년 2월 28일 丙戌 2번째기사 1887년

內務府啓: "稅穀轉運, 固有所重, 而仁港泊卸之際, 不容無豫先檢束。 自春至秋, 則轉運郞廳, 輪回監捧, 冬節以後, 則戶曹參判、參議, 亦爲輪回監捧事, 分付何如?" 允之

내무부(內務府)에서 아뢰기를,

"세곡(稅穀)의 전운(轉運)은 중대하니 인천항(仁川港)에서 하역(荷役)할 때 미리 앞서서 검속(檢束)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전운국 낭청(轉運局郎廳)이 윤번(輪番)으로 감봉(監捧)하고, 겨울철 이후에는 호조 참판(戶曹參判)과 참의(參議)가 또한 윤번으로 감봉하도록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세곡의 운반을 감독하는 관리로 추정됩니다.


임진 윤육월 일(壬辰 閏 六月 日)

임진왜란 1592년,편영기는 시조 편장군의 11대손, 1세대를 30년 기준으로 삼으면 약 300년 후인 1892년으로 추정됩니다.


 

 


창표사

서생포 왜성 초입에 위치.


서생포 왜성에서 바라본 서생포(2017.11.15)


블로그. 카페 서생포왜성 글 참조 바랍니다.

 


마귀장군.편갈송 장군을 비롯 56위 임란공신을 배향하고 있습니다.

허물어진 건물을 1906년 중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으나 2016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편갈송 장군 기적비

서생포왜성 동문 부근 위치

 


유명어양총절사동원도독중군有明漁陽摠節使東援都督中軍

유격장모헌편공길송기적비遊擊將慕軒片公碣頌紀跡碑

 

 


도로변 안내문, 주변 정리

쉽지만 시행되지 않은 현실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억수로  많지만...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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