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예천...개심사지 오층석탑

임병기(선과) 2019. 6. 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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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펜스와 높은 모래 성

탑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시 한바퀴를 돌아 보니 발굴과 공사(?) 때문에  출입금지 상태로 보였습니다.

마침 토요일이어서 현장에 사람이  보이지 않아, 개인택시 기사분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비밀의 문을 알려주셨습니다.

 

여전히 그자리에 계시지만

당분간은 쉽게 출입 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개심사지

"창건과 폐사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841년 간행된 례천군지『醴泉郡誌』 고탑조古塔條에는 개심사탑은‘開心寺塔은 신라시대에 건립되었고, 높이는 15척으로 송포답松浦沓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한편, 사지 내에 있는 개심사지 오층석탑의 상층기단면석과 갑석 하면에 새겨진 명문으로 개심사가 1005년에 중건되었고 1010년(현종 원년)에 석탑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개심사 창건은 최소한 1005년 이전이고, 폐사는 『예천군지醴泉郡誌』의 기록과 조선후기 지방도 등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 등으로 보아 19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는 폐개심사오중석탑‘廢開心寺五重石塔’이라는 명칭으로 석탑 전경 사진이 실려있는데, 석탑 주변은 논으로 사용되고 있고, 석탑의 하층기단면석은 부분적으로 파묻혀 있다. 조선총독부의 지정, 고적조사 복명서, 고적유물목록 문서는 개심사지 오층석탑에 대한 형태 설명, 석탑에 새겨진 명문, 제작시기, 간단한 실측치수 등을 설명하고 있고, 석탑 주변에 목책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석탑은 제106호로 등록되었고, 이후 제71호로 다시 지정되었다.조선보물고족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논 가운데 높이 2칸의 5층 방형탑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는 석탑에 대한 간단한 언급을 하면서 사지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2005년 간행된 예천군지『醴泉郡誌』에는 잠두산에 올라 지형을 살펴보았는데, 예천의 남산이 잠두산의 화기 火氣를 품은 불길한 형상이었으므로 산 아래 절을 짓고 개심사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개심사의 영역을 석탑 중심의 사방 70m 범위로 표시하고 있고, 창건시기를 통일신라말기나 고려초기로 추정하고 있다."(문화재청.한국의 사지)

 

 

개심사지 오층석탑

장대석 6매의 지대석

 

하층기단

저석과 중석은 일석이며 중석에는 면마다 3구 안상속에 문인복장의 12지신장을 조각하였습니다.

12지상은 익히 아시겠지만 방위 개념과 더불어 벽사의 상징입니다.

갑석에는 연화문이 조식된 1단 굄이 있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은 4매 조합이며, 면마다 우주와 1주의 탱주가 있으며, 팔부중상을 2구씩 배치하였습니다.

팔부중상은 돋을새김되어 있으나 볼륨감이 약하며, 정형화된 도상이 아니어서 존명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갑석은 1매로 되어 있고, 갑석 하면에는 낮은 부연이 있으며, 갑석하면(절수구와 부연 사이)에  명문(140자)을 새겼습니다.

상면에는 별석의 앙련 탑신괴임을 조출하였습니다.


탑신석

전층에 우주가 모각되었고, 초층 탑신에는 문비와 자물쇠를 표현하고, 암좌위에 인왕을 모셨습니다.

인왕은 천의가 마치 두광처럼 머리 뒤로 타원형을이루고 있으며, 양손으로 긴 금강봉 형태의 지물을 지니고 있습니다

 

옥개석

전층 4단 층급받침이며, 절수구가 있습니다.

낙수면 물매는 급하지 않으며, 풍탁공이 있으며, 상부에는 1단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상륜부

일석으로 조성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으며, 노반 각면에 거의 찾아 보기 힘든 1개 안상을 표현되어 있고, 편구형 복발에는 2단 띠무늬를 새겼습니다.

 

조성시기는1010년 입니다.

 

 

하층기단면석 12지상

 

 

원숭이

 

 

 

 

 

 

 

 

 

 

토끼

 

 

호랑이

 

 

 

 

 

 

돼지

 

 

 

 

 

 

상층기단 팔부신중

(한 면에  무인 복장의 신중상 2구)

 

 

 

 

면석의 명문

(갑석 하부에서 시작된 명문이 면석까지 이어져  조성목적을 새겼다)

 

棟量 戶長陪戎校尉 林 崔祐長富 母主 副棟梁oooo(동량 호장 배융교위 임 최우 장부 모주 부동량oooo)

四弘爲身心(사홍위신심)

上報之佛恩(상보지불은)

爲國正功德(위국정공덕)

普及於一切(보급어일체)

辛亥四月八日入(신해사월팔일입)

 

(해석)

동량 호장 배융교위 임 최우 장부 모주 부동량은 ooo이다

사방으로 널리 몸과 마음을 위해

위로는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국가를 위하고 공덕으로 바르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만물에 퍼지게 하기 위하여

신해년(현종2년 1011년) 4월 8일 세우다

 

 

辛亥四月八日立

四弘爲身心上報之佛恩爲國正功德普及於一切

 

 

棟梁戶長陪戎校尉林長富母主崔祐副棟梁□□邦祐

四弘爲身心上報之佛恩爲國正功德普及於一切

 

 

 

棟梁戶長陪戎校尉林長富母主崔祐副棟梁□□邦祐

 

 

 

 

 

 

 

 

별석 앙련이 조식된 탑신괴임

 

 

초층탑신석

인왕상.문비.자물쇠

 

 

상층기단갑석 하부 명문(출처...다음블로그/토함산 솔이파리)

 

五十人 上元甲子四十七統和二十七庚戌二月一日(오십인 상원갑자 사십칠통 통화이십칠 경술이월일일)

正骨開心寺 到石析(정골개심사 도석석)

三月三日 光軍冊六隊 車十八 牛一千以十間入矣(삼월삼일 광군사육대 차십팔 우일천이십간입의)

僧俗娘 合一萬人了入(승속낭 합일만인요입)

彌勒香徒 上社神 廉長, 長司正順 行典福宣 金由 工達 孝順 位剛香德 貞巖等 三六人(미륵향도 상사 신렴장,장사 정순 행전 복선 김유 공달 효순 위강 향덕 정암 등 삼육인)

稚香徒 上秩京成仙郞 光습 金습 阿志 大舍香式 金哀 位奉 楊能廉寸等 隊正邦祐 其豆 昕京 位鋼 侃平矣典 次衣等 五十人(치향도 상질경성 선랑 광습 금습 아지 대사 향식 김애 위봉 양능 염촌 등 대정 방우 기두 흔경 위강 간평 의전 차의 등 오십인)

 

(해석)

오십인 상원 갑자 47년 통화27년(현종1년 1010년) 경술 2월 1일

정골(정골사리)이 개심사에 도착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승려, 속인 선랑 모두 1만인이었다

 

미륵향도 상사 신렴장, 장사 정순, 행전 복선, 김유, 공달, 효순, 위강, 향덕, 정암, 등 36인

치향도 상질경성, 선랑 광습, 금습, 아지, 대사 향식, 김애, 위봉 양능, 염촌 등 대정 방우, 기두, 흔경, 위강 간평 의전 차의 등 오십인

 

명문은 면석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棟量 戶長陪戎校尉 林 崔祐長富 母主 副棟梁oooo(동량 호장 배융교위 임 최우 장부 모주 부동량oooo)

四弘爲身心(사홍위신심)

上報之佛恩(상보지불은)

爲國正功德(위국정공덕)

普及於一切(보급어일체)

辛亥四月八日入(신해사월팔일입)

 

(해석)

동량 호장 배융교위 임 최우 장부 모주 부동량은 ooo이다

사방으로 널리 몸과 마음을 위해

위로는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국가를 위하고 공덕으로 바르게 하기 위하여

일체의 만물에 퍼지게 하기 위하여

신해년(현종2년 1011년) 4월 8일 세우다

 

 

正骨開心寺 到石析(정골개심사 도석석)

 

 

 

 

탑신석.옥개석

 

 

탑신부

4단 층급.절수구.풍탁공

 

 

상륜부

노반의 안상, 복발의 띠무늬와 화문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하층 기단 12지신상의 배치

통일신라의 정형화된 팔부신중과 인왕상 도상에서 벗어난 표현

상층기단 갑석의 절수구와 상륜부 노반의 안상 표현 등의 특징을 가졌으며

 

뿐만 아니라

 

조성 주체

조성 목적

조성 시기가 남아 있는 귀중한 석탑입니다.

 

 

30여년전(?)

첫 만남에서 미스 고려로 불렀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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