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예천...병암정

임병기(선과) 2019. 6. 2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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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암정屛巖亭

스쳐지나기만 하였는데,

오늘은 이정표가 크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병암정屛巖亭

병풍바위 위에 세워진 정측면 4*3칸, 겹처마 팔작지붕 입니다.

중앙 2칸에는 마루, 양협칸에는 방을 배치하였으며, 정면, 북쪽에는 툇마루를 걸었고 후면에는 중앙에 쪽마루를 달았습니다.

그러나 별묘에서 들어오는 쪽은 마루를 걸지 않았습니다.

 

병암점 앞쪽으로는 넓은 들판이 전개되고 멀리 산이 조망되지만,

정자에 앉아서는 담장이 높아 병풍바위 아래 천원지방으로 조성된 연지와 석가산, 왕버들 등이 눈에 들어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연지에서 바라보는 병암정의 풍광이 더 멋스럽습니다.

 

 

연지

천원지방天圓地方은 아닌 듯 합니다.

 

 

병암정

이유인(李裕寅, ?~1907)이 건립하여 ‘옥서정(玉墅亭)’이라 하였는데, 예천권씨 문중에서 매입하여 1960년에 중수하고,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이유인에 대하여서는 여러자료가 통일되지 않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안내문에는 일제강점기에 예천지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권원하(權元河)와 관련이 있는 건물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권원하(權元河):1898(광무 2)~1936....출처/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本貫 醴泉. 字 道壯. 號 重山. 父 泳鎭. 生父 海鎭.居 醴泉 龍門. 五紀의 후손. 1919년 3. 1만세운동 후 만주로 망명함.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하여 8월 유하현 삼원보 소재 신흥무관학교제4기생으로 졸업함. 1920년 2월 군정서의 밀명을 받고 입국함. 군자금 조달 및 무관생도 모집 등의 활동을 함. 7월 崔載華·趙强濟·裵昇煥·金永哲 등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2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름.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가 조선일보 지국장을 지내면서 은밀히 항일운동을 계속함. 1927년 6월 金相起·南炳台·朴昌鎬·張大發 등과 함께 예천군내 청년대회 를 개최함. 예천청년동맹회의 집행위원으로서 전예천청소년운동의 통일을 기하여 계몽운동에 주력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음.[참고] 독립유공자공훈록

 

 

별묘別廟

주차장에서 병암정으로 향하는 초입에 자리한 사당입니다.

인산서원(仁山書院)의 사당이었으나 서원이 훼철되자 사당만을 이건하여 권맹손(權孟孫), 권오기(權五紀), 권오복(權五福), 권용(權墉)을 봉사하는 별묘로 운용중이라고 합니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1920년에 건립되어 1946년에 옮겨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근자에 중수한 느낌 입니다.

 

 

병암정

별묘에서 병암정으로 들어오는 일각문

하지만 반대편에 솟을문이 있어  주 출입문이 아니라 별묘로 통하는 중문 처럼 보입니다.

 

 

병암정屛巖亭 현판

1792년 이유인의 글이라는 자료도 있지만 낙관을 확인하지 못 했습니다.

 

 

정면

4칸으로 중앙 2칸은 창호를 들어 올리면 대청 입니다.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습니다.

 

 

측면 2칸

퇴를 내고 마루를 걸었습니다.

솟을문에서 들어 오는 방향으로, 주출입동선으로 생각됩니다.

 

 

 

후면

양협칸의 아궁이가 없는 중앙에는 쪽마루를 걸었습니다.

 

 

별모에서 일각문을 통해 들어오는 방향으로 마루가 없습니다.

 

 

병암정 앞 들과 산

 

 

황진희 영화촬영장이라는 글이 많이 보입니다.

글쎄요.

저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어찌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20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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