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예천...간방리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9. 6. 24. 05:38
728x90

 

 

 

2007년 마지막으로 들렸으니...

 

 

 

간방리사지

창건과 폐사에 관한 사적은 알려지지 않지만 간방리사지에는 석탑 3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지대석

장대석 4매가 모서리를 맞물려 가며 결구되어 있습니다.

 

하층기단

면석은 4매의 부재로 구성되고, 우주와 탱주 1주를 모각하였습니다.

갑석은 상부에 2단 각형 괴임과 내림마루가 표현되어 있으며, 4매의 부재로 결구되었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 1주가 있고  혼합식으로으로 결구되었으며, 갑석에는 부연과 내림마루. 2단 각형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탑신석

전층 통돌로 양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급하지 않고, 상부에 2단의 괴임이 있으며,  4단 옥개받침, 절수구를 새겼습니다.

 

상륜부는 망실되었습니다.

 

9세기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하층기단

 

 

상층기단

 

 

탑신부

 

 

상륜부

노반 받침(?)이 보입니다.

 

 

 

 

사지 발굴을 하면 3기 석탑 부재를 찾을 수 없을까요?

 

2019.06.08

아래는

2007년 글 

  

 

간방리는 사실 8월초에 들리려고 했었지만 갑자기 쏫아진 폭우로 훗날을 기약했었다. 박준해 선생님이 올리신 고은정과 함께 아들과 함께한 답사 마지막 동선으로 잡았다.  도로변에 주차했으면 될텐데 마을 안길로 들어갔다가 공사중인 관계로 혼쭐이 났다.

 

마을 가운데에 서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마을이 절터가 아니었을까?  상기단에는 탱주가 보인다. 2.3층  옥개석은 일부 파손 되었다.

 

신라 하대 탑이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탑이 3기 있었다고 하며 불상도  발견된 점을 미루면 사세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배례석, 석등 하대석도 보인다.


고은정

 

고은정(古隱亭) [亭子] : 보문면 간방3리 240번지 탑동(塔洞)에 있는 정자로, 반남인 참봉(參奉) 고은(古隱) 박용학(朴容學, 1869-1948)이 세웠는데, 진사(進士) 청하(聽荷) 박승진(朴勝振)이 제영(題詠)하고,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 공양(恭陽) 홍사철(洪思哲), 서주(西洲) 김사진(金思鎭)이 차운(次韻)하였다. 후손이 1952년에 그의 유덕(遺德)을 추모하여 중건하였는데, 그 앞에는 못을 파고, 섬바위를 만들어 추모비(追慕碑)를 세웠다(醴泉郡誌 1939).


 

박용학(朴容學) : 1869(고종 6)-1948, 보문면 간방리 간실(澗谷) 출신, 호는 고은(古隱), 본관은 반남, 평도(平度) 은의 후손, 음사로 참봉(參奉)을 지냈고, 김재경(金在敬)이 <고은실기(古隱實記)>를 편찬하였다.(醴泉郡誌 1939)


 

고은정은 정면 두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이며 평난간을 둘렀다. 정자 앞에는 인공 연못을 조성하여 가운데에 반송을 심었다. 모르긴 해도 정자뒤의 소나무와 함께 사군자를 가꾸어 선비의 기품을 지키려 랬을것이다. 지금은 말랐지만 연못에는 군자를 상징하는 연을 심었지 않았을까?

 

 

고은동천 각자(古隱洞天 刻字) [刻石] : 보문면 간방리 산20번지에 있는 각석으로, 간방리 마을 입구 농로변에 있다. 각자는 자연 암반의 한쪽 면을 다듬어서 '古隱洞天'이라 음각하여 놓았는데, 각자 면의 바위 크기는 높이 54cm, 너비 216cm이고, 자경(字徑)은 22x29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예전에는 저 바위 아래로 물이 흘렀을 것이다. 하룻밤이틀낮 동안 산 답사도 좋았지만 장성한 아들놈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더욱 값진 소득이었다. 훗날 아들놈 입대전이나 제대후 또다시 투어를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2007.08.14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