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예천...와룡리 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19. 6. 19.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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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리 석불입상

마을회관 앞에 주차하면 예전에 없었던 사지로 향하는 붉은색 큰 안내 입간판이 보입니다.

입간판에서  평이한 들길 500미터 지점에 불상이 있습니다.

차량은 마을회관 근처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아~

오랫만에 향수를 자아내는 모내기 끝난 논을 보았습니다.

평생 흙을 벗 삼으시다가 돌아가신 할배도 생각나고...


 

와룡리 석불입상

사적이 알려지지 않은 금산사지金山寺址로 전하는 곳에 계시는 고려전기 불상 입니다.

예전에 비해 주변정리가 깨끗하게 되어 무척 흐뭇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자료에는 완전한 불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불두가 망실되어 후보하였습니다


 

 

 

광배 홈

등에는 광배 홈이 남아 있으나, 광배는 망실되었습니다.


 

대좌

상대석 아래는 매몰된 상태 입니다.


 

불신

훼손과 마모가 심하여 형태만 확인 가능 합니다.


통견의 법의, 대의자락은 하반신에서 U자형으로 흘러 내렸으나 마모로 희미하게 보입니다.

수인은 결실되어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팔의 형태로 보아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들고 있는 듯 합니다.

손목부분 홈으로 미루어 양손은  별조로 조성하여 끼웠음을 보여 줍니다..


 

삼도

목에는 삼도가 남아 있으나, 복원하면서 삼도를 다시 새겨 육도가 되었습니다.


 

 

 

 

 

 

주변 정리가 된 사지

12년만에 해후한 석불


마냥 기분이 좋아 유년의 고향을 떠올리며  동요 "고향땅"을 크게 부르며 내려왔습니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저녁마다 놀 지는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2019.06.08 

아래는

2007년 글 

  

 

와룡리 길가 슈퍼에서 일단의 청년들을 만나 석불 존재를 물었더니 적대감을 갖고 바라본다. 급기야 의심이 가득한 말투로 왜 찾느냐? 어떻게 알았느냐?며 취조하는 분위기다. 방문 목적을 아주 점잖게 설명해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물통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라는 안내가 끝이다.

 

정말 동물적인 감각으로 산길을 더듬어 찾았다. 여러 갈래 들길 산길을 망설임 없이 선택하여 석불을 보는 순간 고맙다는 말보다 나와 석불의 깊은 인연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전신을 휘감돌더라.


 

금산사터에서 발견된 석불로 상·하대석을 겹쳐 쌓은 대좌위에 서 있는 석불은 광배는 보이지 않고 두손도 멸실되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법의는 통견이며 U자형의 주름이 아래부분까지 흘러내려져 있어 9세기 이후 불상으로 생각된다. 


 

 

떨어진 머리부분은 이 마을 청년회에서 새로 붙여 놓았다고 한다.  1

870년경 이 석불이 발견될 때 주변에서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고, 최근에도 금동불상이 발견되어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라 한다.

 

다른 지역 불상처럼 와룡리 주민들에게는 미륵불로 추앙 받을 것이며 특히 불두를 청년들이 복원하였으니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도 이해가 된다. 요즈음의 문화재 도둑들은 낮에 현장을 방문하여 동네주민들의 환심을 사고 밤에 훔쳐간다고 하니 오래지 않아 답사도 해당 지자체 허락을 득해야 되지 않을런지...

 

200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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