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예천...흔효리 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19. 6. 20. 07:02
728x90

 

 

 

마을 중심길

예전에 없었던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대흥 저수지 둑까지 차량 진입,회차는 가능 하지만 중간에 차량, 경운기 등을 만나면 교행 할 수 없습니다.


흔효리 사지

대흥사지大興寺址 혹은 흥천사지로興泉寺址로 비정되는 사지입니다.

하지만 사적은 전하지 않으며, 1832년 경상도읍지에는 금무今無로 기록되어 있어 19세기 초반 폐사된 것 같습니다.


 

석불입상

전각속에 모신 불상으로 불신에 비하여 불두와 손이 커며 발목 이하는 매몰되었습니다.

불신은 움츠린 보습이며, 나발, 육계가 높고. 눈은 민초들에게 돌려주었으며, 목은 훼손되어 다시 붙인 듯 합니다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고, 두터워 보이는 법의는 통견이며, 습의는 U자 형으로 양쪽 팔에 걸쳐 자연스럽게  무릎 위까지 내렸고, 아래로 군의 자락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른손은 허벅지까지 까지 내려 붙이고, 별조로 끼운 왼손은 망실되었습니다.

고려초기 석불로 보여집니다.


 

 

  

 

 

 

 

 

 

 

 


팔각석등간주석, 상륜부

 

 

 

 

 

진입로가 모호하여 농작물 경작중에는 주민과 마찰이 우려되니,

조금 귀찮더라도 저수지 둑에서 보호각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답사객은 스쳐 지나가지만, 농작물 주인은 삶의 터전이기 때문 입니다.


2019.06.08 

아래는

2007년 글 

 

 


흔효리 마을 뒤 저수지 아래에 위치 해 있었다.  저수지둑에서 내려가야했지만 잡초가 우거져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군청에서 무엇을하는지 일년에 한 번이라도 현장 실사를 거치는지 의심스럽다. 큰도로변에는 안내문이 미설치되었지만 석불 앞에는 역시 대한민국표 안내문이 있다.

 

문화재청에서 자료를 옮겨왔다.《예천군자》 《용궁읍지》 동국여지승람등에 보면, 이곳에 흥천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그 절에 미륵불이 있다고 한다. 16세기 중엽만 해도 이곳은 황무지로서 깨어진 기왓장더미와 주춧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큰 건물의 터였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석불이 서 있는 주변에서는 많은 자기와 기와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화강석으로 된 이 불상의 전체 높이는 1.78m, 머리 높이는 0. 49m, 어깨 넓이는 0.656m, 가슴 넓이는 0.49m이다. 하단부가 묻혀 있고 목이 끊어졌으나 복원하였다. 큼직한 나발() 위에 낮은 육계가 있고, 얼굴은 양감() 있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두 눈을 파고 코와 입의 끝이 파손되어서 근엄한 원모습을 잃었다. 양쪽 귀도 잘려져서 자비로운 인상을 그르치고 있다. 목은 잘려져 다시 올려 놓았지만 삼도()의 표시만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으로 양쪽 팔에 걸쳐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여 발등을 덮었다. 가슴부터 발등까지 원호를 그리면서 옷주름이 잡혀 있는데 그 조각 솜씨가 부드럽고 화려하다. 수인()은 왼손을 손바닥을 윗쪽으로 하고 들어 가슴에 대고 있으나 팔목이 파손되어 보이지 않고, 그 팔에 법의를 걸치고 있다. 오른손은 약간 들어 법의를 누르고 있다. 발목 아래에는 묻혀 있으나 대좌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얼굴모습이나 옷의 문양 등으로 미루어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불의 현 위치 바로 앞 6m 지점에 8각 간주(竿) 석재가 있어 주변을 시굴조사 하였는데 석등 하대석인 연화대석 1좌를 수습할 수 있었다. 이 대석이 원위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곳 사원에 속했던 석등재임에는 틀림없으며, 만든 연대도 석불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1980년에 이곳에서 청동 보살 입상 1구를 발견하였다. 초기에는 초가단간 안에 봉안하여, 연간 몇 차례 동민들이 불상 앞에 설치한 단에 촛불을 밝혔으나, 1980년 도와 군의 지원으로 보호각 10평을 신축하였다.


 

2007.08.04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