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예천...청룡사 석조여래좌상.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석탑부재

임병기(선과) 2019. 6. 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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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연

사진이 없으니 2005년 이전이며 비구니스님이 계셨지만 뵙지는 못 했습니다.

두번째

2007년 소나기가 내렸던 날 보살님만 계셨습니다.

오늘

2년전 오신 주지스님은 법당에 계시다가 불을 켜주고 나가시더니 한 참 후에 돌아 오셨습니다.

양해도 구했지만 구애받지 말고 사진 촬영하라는 스님의 깊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법당, 요사를 중건 할 예산이 확보되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스님과 불상과 탑에 관하여 나눈 대화는 중간중간 소개하겠습니다.

 

청룡사

"신라시대 문무왕 16년(676)에 의상조사가 세웠다고 전한다. 의상은 영주 부석사를 세울 때 기둥이 자꾸 무너지고 공사가 어려움에 부딪치자 부석사 서천의 기운이 허하기 때문이라고 여겨 예천 주마산 남쪽에는 한천사, 선리에는 청룡사를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또한 이 절터는 원래 큰 호수였으며 이곳에서 청룡이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본 어느 교도가 못을 메우고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도 전해온다. 창건설화 이후의 역사는 현재 전하지 않는데, 1935년에 김준팔(金俊八)씨가 법당과 요사를 짓고, 방치되었던 석불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했다. 이후 1970년과 78년 두 차례 법당이 증축되었으며 현재 이 법당에 석불 2구가 봉안되어 있다. 또한, 법당 앞에는 흩어져 있던 석조물을 모아 삼층석탑을 세웠으나 원형은 알 수 없다. 현재 당우로는 석불 2구를 봉안한 법당과 삼성각 그리고 바위틈에서 석간수가 솟아나는 용왕당, 요사 등이 있다."(다음백과사전)

 

 

석조여래좌상.석조비로자나불좌상


 

 

석조여래좌상

대좌.광배를 갖춘 통일신라 9세기 불상으로 추정됩니다.


 

석조여래좌상


나발,육계가 높으며, 원만한 상호, 호형의 눈썹,눈은 감은 듯 뜬 듯 합니다.

짧은 코, 긴 인중, 입술선과 턱선을 명확하게 표현하였고. 귀는 짧으며  삼도를 새겼습니다.

법의는 통견, 오른쪽으로 넘겨진 대의자락을 복부에 끼워 넣었으며 승각기와 군의 띠매듭이 보입니다.

양 다리 사이에는 부채꼴형으로 펼쳐진 옷주름을 불신과 일석으로 표현하엿습니다.

항마촉지인이며, 길상좌 입니다.


 

팔각대좌


하대석 하단에는 안상속에  향로와 꽃을 번갈아 새겼습니다.

하대석 상단은  팔각 받침 위에 8엽의 복판복엽 연판문의 복련이며, 상부에는 팔각 굄이 있습니다.


중대석 각 면은 우주로 구획하고 내부에 연화좌와 원형두광을 갖춘 보살좌상을 새겼습니다.

보살좌상의 지물, 수인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상대석, 하부에는 팔각 받침을 받치고, 위는 원형 입니다.

이중의 앙련에는 화문이 장식되었고 간엽을 조식하였습니다.


 

하대석 하단

안상속의 화문


 

하대석 하단

안상속의 향로


 

하대석 상단

복련


 

중대석

보살상


 

중대석

보살상


 

중대석

보살상


 

상대석


 

 

 

  


승각기 매듭

군의 매듭

 


항마촉지 수인

길상좌

 

 

 

 


주형거신 광배

두광과 신광은 겹동선으로 구획하고 외부에는 화염문,내부에는 보상화문, 덩굴문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방형 대좌을 갖추고, 광배가 망실된 비로자나불입니다.

석조여래좌상보다 다소 늦은 시기에 봉안된 불상으로 전합니다.

 


나발, 육계는 낮고 상호는 원만합니다.

눈썹선은 얕으며, 눈은 가늘고, 코는 작고 귀는 짭습니다..

삼도가 뚜렷하고,법은 통견, 대의는 가슴에 U자형으로 걸치고 있습니다.

승각지가 보이며,  다리 중앙에는 부채꼴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었으나 파손된 듯 합니다.

수인은 지권인입니다.

 

 


방형 대좌


하대석  각 면에  2구의 안상을 새겼고, 안상 내부에는 귀꽃을 새겼습니다.

상부 홈은 기자신앙의 흔적으로 추정됩니다.


중대석에는 면마다 안상을 크게 새기고  귀꽃을 표현했습니다.


상대석 하부에는 각호각 3단 받침이 있으며, 앙련을 조식하고, 연판문 안에 두 종류의 화문을 표현하였습니다.

 


방형 하대석, 중대석

 

 

하대석

안상,귀꽃

 


중대석

안상.귀꽃

 


상대석

앙련.화문

 

 

 


광배 홈

등뒤에 원형 광배 홈이 있습니다.

 

 

 

 

 


스님의 고민

저에게 두 불상을 한 전각에 모셔야 할지, 각기 봉안해야 할지 묻더군요.


저는

대웅전과 대적광전에 각각 모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삼존으로 봉안 되었던 불상이 아니라고 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한 전각에 모실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럴 경우

여러 스님들에게 자문을 하였더니 전각을 높게 하고, 노사나불을 모셔 삼존불로 봉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는  어떤 방안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수미단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사찰의 수미단 처럼 꾸미면 대좌가 노출 되지 않아 완전체의 불상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스님도 잘 알고 계셨으며, 최대한 대좌를 오픈하는 방법으로 꾸미겠다고 하셨습니다.

 


석탑

예전에는 삼층석탑으로 보았는데, 3층, 5층 또는 2기 이상 석탑 부재의 혼합인지 모호합니다.

불상과 달리 고려초기 석탑으로 추정 됩니다.

 


석탑


기단갑석

4매부재로 결구, 상부에는 2단 각형 굄이 있습니다.


탑신석

초층탑신석으로 추정되며. 한 면에는 3겹으로 구획된 문비안에 자물쇠가 표현되었을 양우주를 새겼습니다.

현재 상하가 뒤집힌 상태 입니다.

2~3층 탑신석에도 양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4단 층급 받침과 절수구가 있으며, 상부에 받침은 없습니다.


상륜부

노반석이 남아 있으며, 후보된 돌을 들어보았더니 찰주공이 있었습니다.


5층 석탑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초층 옥개석과 2층 탑신석이 매칭이 안되기 때문 입니다.

즉, 옥개석이 탑신에 비해 넓기 때문입니다.

 


초층 탑신석

뒤집힌 상태 입니다.

 


탑신석과 옥개석

4단 층급받침.절수구

 

 


노반

찰주공을 확인했습니다.

맨위는 석탑부재가 아닙니다.

 

 


탑지


석탑 기단부

하층기단 저석, 하층기단 면석, 기단갑석, 상층 기단 면석이 확인 됩니다.


하층기단 저석과 중석은 4매 부재이며, 엇물림으로 결구된 듯 보입니다.

중석에는 탱주 1기, 우주가 모각되어 있습니다.


상층기단 중석

2매가 노출되어 있으며, 탱주, 우주가 보이지 않아

감입식으로 결구된 중석 4매 부재 중에 끼어 넣었던 2매로 추정 됩니다.


갑석

상층기단 갑석 4매중의 1매 입니다.

내림마루를 표현하였고 각형 3단 굄이 조출되었습니다.

 


중건 불사에 석탑 복원이 포함된지는 모르지만

스님께 가능한 현재 부재를 활용하여 복원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탑을 세우는 것보다 복원하면 경비가 더 소요되기 때문에  심히 우려 됩니다.

 


스님

꼭 중창불사 원만하게 회향하시길 빌겠습니다.

()()()

 

2019.06.08

아래는

2007년 글 

 

 

금당실 마을 입구에서 청룡사 아래 마을에 산다는 중년의 아줌마를 태웠더니 횡설수설 오락가락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듯했지만 청룡사 이야기에는 대책없이 목소리가 높아지더라. 한적한 길이다. 우거진 숲도 거창한 일주문도 없는 퇴락한 절집처럼 보인다.  득도하지 못한 멍보살 두마리가 사람이 사는 절집임을 알린다.

 

깊은 산골 좁은 부지에 자리한 절집, 허술한 시멘트 건물, 그 옆에는 요사가 있고, 나란히 선 전각은 현판도 없는 법당이지만 놀랍게도 범상치 않은 비로자나불과 석가여래불이 모셔져 있고 마당에는 세월의 이끼가 핀 삼층석탑이 폭우속에 찾아온 탐승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스님도 출도하시고 혼자 계시는 보살님이 빗속 방문에 놀라며 법당에 불을 밝힌다. 조용한 절집이었는데 요즈음 토.일요일 찾아오는 사람들로 성가시다고 하신다. 우리문화유산을 좋아하는 우리 옛님카페 회원들만이라도 답사지에서는 조용하게 예의를 갖추기를 부탁드리고 싶다.

 

머리에는 육계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방형이며 풍만해보인다. 법의는 통견이며 수인은 지권인으로 비로자나불이다. 8∼ 9세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좌상의 양식을 계승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움츠러들고 생동감이 없는 체구나 약화된 4각형의 대좌, 형식적인 옷주름 및 긴장감이 줄어든 신체 표현 등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방형대좌  상대의 4면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지고, 중대에는 각 면에 큼직한 눈모양의 안상이 새겨져 보인다. 하대는 앞부분이 파손되어 있으며, 옆면에 안상이 2개씩 배치되어 있다. 


 

나발,타원형 얼굴의 이목구비는 여성스러워 보인다. 삼도, 어깨는 좁고 긴장감이 빠진 듯하여 전성기를 지난 하대 불상이라 알려져 있다.통견의 습의에는 어깨위로 평행한 주름과 가슴에는 띠매듭이 보인다.  주형거신광배 광배에는 두겹의 동심원을 새겼고, 연꽃문, 보상화문,화염문이 표현되어 있다.


 

팔각대좌에는 상하대에 복련과 앙련이 피어났으며 중대석에도연꽃무늬가, 윗부분에는 활짝 핀 모양의 연꽃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중대석에도 신장상인지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비로자나불보다 약간 앞선 시대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보이는 밭에서 옮겨온 탑이다. 지대석도 기단도 멸실 되었다. 1층 몸돌에는 문비가 보인다. 이사진 찍은 후 억수같이 비가 퍼부었다. 빗속에 바라보는 탑 그 또한 야릇한 흥분을 일으키더군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탑의 형태로 미루어 고려 탑으로 보여 비로자나 석불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얼마전 주차장 공사중 발견된 탑지.

더 발굴하면 멸실된 탑부재가 나오지 않을까?

조용히 다시 들리고픈 절집이었습니다.

200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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