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창원시/마산시

마산...여항산 의림사

임병기(선과) 2019. 4. 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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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사.

옛글을 보니 2008년 마지막으로 들렸으나, 부도전 옆 괘불지주를 건너 뛰었고 개별 부도를 찍은 사진도 없었다.

하여, 귀가 중에  동호회원들과 함께 하였다.


옛글로 대신하며  몇몇 특징을 살펴 본다.


 

10년전 보다 축대가 높아졌다.


 

삼층석탑


 

방형 지대석


하층기단

혼합식 결구, 저석과 중석이 일석이며, 우주와 탱주 1주를 모각하였다.


갑석

4매석, 낙수면 물매가 얕고, 호각 2담 굄을 조출하였다.


 

상층기단 중석

감입식 결구, 탱주 1주,양우주를 모각하였다.


 

상층기단 갑석


부연을 깊게 표현하고, 절수구를 두었다.

상층기단 갑석 하부에 물끊기홈을 두는 경우는 흔치 않은 작례이다.


 

상층기단 갑석

2매석으로 결구, 내림마루 표현,  상부에 2단 굄을 두었다.

 


우주와 탱주

하층기단 탱주 우주는 넓으며, 상층기단 중석, 초층탑신석으로 올라 갈수록 좁아지게 모각하였다.

 


층급받침

전층 각형 4단

 


상륜부

노반과 보주

 


옥개석 현수곡선이 뚜렷하다.


통일신라 하대 유형을 지니고 있으나, 옥개석 현수곡선, 탱주 너비 변화 등으로 미루어 고려초기인 11세기 아전 작품으로 추정된다.

 


괘불대

 


불상 하대석.석등 하대석, 석등 간주석

석탑과 동시대에 조성하였을 것이다.

 


석불하대석 

하대석 하단과 상단을 한 돌로 조성

 


하대석 하단

8면에 안상을 새기고 사자상을 표현하였다


하대석 상단

모서리에는 귀꽃을 세웠으며

복련을 조식하였고, 3단 중대석 굄을 조출하였다.

 

 

 


석등부재

 


하대석

하단부와 상단부를 일석으로 조성

하단부에는 면마다 안상을 새기고, 상단부는 복련과 괴임을 두었다.

 


팔각 간주석

 


석등 부재

 


석불 대좌

 

 

 


모과나무

 


석등 부재가 1점 더 있다. 

 

 

 

 

 


괘불지주

의림사 초입에 위치


본래 전각 자리인지

아니면

대웅전 앞에 있던 지주를 후대에 필요에 의해 옮겨 왔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부도전 

조선후기부도 3기, 근세 부도 1기를 모셨다.

 


부도(1)

당호가 전하지 않는다.

방형 지대석, 복련이 조식된 대석, 종형 탑신,사모지붕을 갖추었다.

 


지대석과 대석

 


사모지붕과 보주

일석으로 조성, 하부에 2단 층급을 두었다.

 

 


부도(2)

한유당 閑(閒?)遊堂


지대석이 매몰되었으며, 부도 1과 흡사하다.

부도(1)의 주인공과 사제 또는 사형 간이 아니었을까?

 


탑신.

 


당호

옥개석 상륜에 새겼다.

 

 

한유당 閑遊堂

 


사모지붕

 

 


부도(3)

방형 지대석. 하대석.중대석.(상대석 결실).탑신

그렇다면

하대석은 뒤집힌 상태이다.


팔각중대석이 부도와 관련 없는 부재인지 여부도 알 수 없다.


탑신 하부가 잘린 느낌도 든다.

탑신과 보주가 일석이다.

 


무엇인가 어색하다.

 


탑신 상부

복련을 조식하고 연주형 굄위에 연화부조를 올렸다.

 

 

 

초입의 괘불대

부도전의 부도를 인연지었다고 그 인연이 끝이 아니리라.

완전 은퇴 후 그날이 오면...

 

2019.04.06


아래는

2008년 글

 

 

 

마창대교(馬昌大橋)는 경남 마산시 가포동과 창원시 귀산동을 연결하는 폭 20m(왕복 4차선), 길이 1.7km의 다리이다. 2004년 4월 민자사업자인 '주식회사 마창대교'에 의해 착공하였으며, 2008년 6월 24일 준공식을 가지고 7월1일부터 정식으로 개통한 교량이다. 이 대교는 사장교로, 지진은 물론이며 초속 78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특히 사장교의 2개의 주탑은 높이가 164m, 수면에서 상판까지는 세계 최대의 높이로 68m에 달한다.

 

내서 양곡간 5호국도 우회도로와 직통연계되며, 기존 두 지점을 서로 오가는데 '거리 16km, 소요시간 35분'에서 '거리 9km, 소요시간 7분'으로 크게 줄어들어 마산, 창원시내의 교통량 분산효과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편 이 대교는 민자사업자에 의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통행료를 징수하게 되는데, 통행료가 소형차 기준 2400원으로 비싼편이다.

 

관광자원화에 일조할 마창대교의 야경을 보지 못했지만  높은 통행료는 재고되어야 한다. 찾지 않는 명물은 퇴락의 길이 명약관화 하다. 몇년전 창원 근무시에 인지하여 두어번 찾았던 철거 논란에 휩싸였던 콰이강의 다리 운명은 어찌되었는지 내내 궁금하다.

 

 

 

의림사 초입은 창원 근무시절 거제 출장길에 수도 없이 통과한 길이었다.그럼에도 의림사 안내문만 보았지 들릴 생각을 못 했다. 얼마전 묘각님의 사진을 보고 심한 충격으로 빠른 시간내에 답사하기로 맘 먹었다. 문화유산에 대한 욕심도 많지만 여러번 지나친 길위에서 인지 못한 문화재를 후에 인식할 때는 화가 치밀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약한 성미다.

 

전통사찰정보에 기록된 사적을 가져왔다. 경남 함안으로부터 흘러온 수려한 여항산 자락, 그 겹겹의 골짜기를 따라 정적 속에 앉아 있는 의림사는 전해지는 창건의 기록이나 설화는 비록 없으나 경내 대웅전 바로 앞 삼층석탑의 조성 양식이나 구전에 의해 삼국통일 직후인 신라 31대 신문왕 당시(68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1530년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림사란 사명이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시기에도 여전히 법등을 밝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중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림사는 삼국통일 이후 빈번해진 왜구의 약탈 행위를 부처님의 크신 원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되었으며 사명 또한 나라를 받든다는 뜻의‘봉국사(奉國寺)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이곳에 머물자 인근 각처에서 의병들이 숲처럼 많이 모여들었다고 해서 ‘의림사(義林寺)’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500명이나 되는 거대한 승군을 훈련시켜 동래성, 진주성 등으로 파견한 호국도량 호국성지로 기능을 다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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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조성된듯한 대웅전이 낯설다. 근자에 널리 유행(?)하는  대웅전 삼존불의 유형처럼 석가여래,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봉안하였다.

 

 

출입이 봉쇄된 누하 진입을 우회하여 중정에 들어서면 먼저 삼층탑이 눈에 들어온다. 2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에서 약화된 고려탑으로 보인다. 기단에는 우주, 탱주를 양각 하였고 몸돌에는 우주만 새겼다. 옥개받침은 4, 상륜부는 노반과 보주가 남아 있다.

 

 

사진에 보이는 처사님에게 탑 안내문의 오류(옥개받침5-->4, 上輪-->相輪)를 지적하였더니 주지스님을 뵙고 점심공양하고 가라며 발길을 잡았지만, 누들스가 엄청 맛 난 국수집이 인근에 있다는 말을 듣고 미리 약속하여 오랫만에 절집 공양 기회를 놓쳤다.

 

옥개받침에 대한 오류는 의림사 안내문, 전통사찰정보,문화재청, 마산시청 홈페이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어느 누구에 의한 오류가 필터링 없이 비일비재, 부지기수로 적용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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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기의 석등 부재가 포개어져 있다. 아래 부재는 방형 지대석, 하대석은 팔각에 안상에 사자가 자리하고 있으며, 한돌로 된 복련이 보인다. 8면  모든 안상에 사자가 얕게 양각된 경우는 처음 접했다. 위에 얹혀진 부재는 규모가 작은 석등 부재이다..

 

늘 주장하는 말이지만 원형부재를 활용하여 복원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일주문 불사가 계획중인 의림사에서 천년 고찰의 향기를 느끼게 하려면 옛부재로 복원하였으면 좋겠다. 사격은 노출이 아니라 은은한 향기로 전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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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옥개석 부재를 비롯 부재를 수습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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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불대와 당간지주(?), 전통사찰정보에는 두 기의 당간지주라고 설명했지만 좌측은 괘불대 부재로, 우측은 당간지주로 여겨진다. 결국 괘불대 짝을 멸실하여 당간지주를 옮겨온 경우로 보인다. 기회가 된다면 괘불대 한짝을 복원하고 당간지주는 사찰 초입에 이건하길 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전통사찰정보 자료에는 위의 의림사 경내 부재도  두 기 당간지주로 설명하였으며, 아래 사진과 설명처럼 사찰 밖에도 두 기의 당간 지주가 있다고 올려 놓았다. 우리님들의 생각은 어떤가? 당간지주를 두 기 나란히 세운 경우를 보았는가? 아니 4기의 당간지주를 조성한 예가 있는가?

 

아래의 부재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부도와 연결하여 보면 다비전후 법회 또는 승병의 행사, 훈련 시 괘불을 걸었던 괘불대로 보여진다. 물론 나만의 근거없는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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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의림사 경외 당간지주

"의림사에는 당간지주가 각각 2쌍씩 경내 염불당 앞과 경외지에 있다. 당간지주는 당(幢)을 걸었던 장대, 즉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우는 돌기둥을 말하는데 먼저 의림사 부도를 지나 의림사 쪽으로 길을 따라 100m쯤 가면 길가 오른쪽에 높지 않은 당간지주 2쌍이 있다. 이 당간지주는 거칠게 막다듬한 화강암 석재의 장대석 2매를 마주 세운 것으로 사찰내의 당간과는 별도로 인근 마을에 의림사 행사를 알리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첫번째 당간지주는 서쪽에 있는 것이다. 거칠게 막 다듬한 화강암 제의 장대석 2매를 33cm 너비로 마주 세운 것으로 各石에는 상하 2개씩의 구멍을 맞뚫어 기둥을 지지할 수 있게 하였다. 두번째 당간지주는 1호와 350cm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1호와 비슷한 형태이나 더욱 거칠게 다듬었고, 역시 각석에는 아래위 2개의 구멍을 맞뚫어 기둥을 지지할 수 있게 한 것으로 간격으로 24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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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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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나무는 본래 중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과수, 또는 관상용으로 오래 전부터 심어온 나무이다. 꽃은 5월에 연한 홍색으로 피며, 열매는 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9월에 황색으로 익는데 향기와 맛이 그윽하다.

창원 인곡리 모과나무의 나이는 약 250년이며, 높이 10m, 둘레 33m로 의림사 대웅전 앞 뜰에 자라고 있다. 나무 줄기가 근육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골이 패여 있는데, 오래된 모과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또한 작은 가지들이 불규칙하게 많이 나 있다.

인곡리 모과나무는 오래되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옛날부터 의림사를 찾는 많은 신도들의 신앙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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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

 

의림사에서 가장 정감이 가는 전각이다.

 

금방이라도 나를 부르며 외할머님이 툇마루로 나오실 듯한 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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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주 가끔

 

한나절 정도 머물고픈 절집이 있다.

 

의림사 처럼 유년을 반추하게 하는 절집이라면 더더욱......

 

 

착한 마음을 가지니 들어갈 때 못 보았던 부도전이 보인다.

 

여기서 의림사 방향 100m 지점 오른편에 괘불대가 있다.

 

200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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