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안양시

안양...삼성산 염불사(암) 마애부도.부도

임병기(선과) 2019. 2. 17. 20:19
728x90
728x90

 

 

 

염불암

창건년대는 물론이고 각각의 자료에 사적이 일치하지 않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글을 발췌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고려 태조가 도승()인 능정()을 위해 936년(태조 19)에 창건하고 안흥사()라 하였다. 1407년(태종 7)에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1856년(철종 7)청허()가 칠성각을 신축하였으며, 1904년과 1927년에 각각 중수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대웅전 후면 높은 암벽에 세워진 석불을 중심으로 하여 용화전(殿)·산신각·대방·요사채 등이 암벽과 조화를 이루면서 배치되어 있다. 앞뜰에는 수령 600년 정도의 보리수가 있다.

 

 

반월암 답사 후 삼막사를 경유하여 염불암으로 내려오는 길

지난 밤에 내린 눈이 쌓여 노면이 돌인지 나뭇잎인지 구분되지 않아 산행에 어려움이 가중되었으며,

조심조심 내려 왔지만 빙판에서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고, 너덜바위 구간은 더더욱  발길 옮기기 쉽지 않았었다.

 

 

삼막사에서 염불암 가는길은 대부분 너덜바위 구간이어서 짧은 거리임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대웅전

대웅전을 중심으로 염불전 나한전이 배치되어 있고. 뒤편에 미륵전.독성전, 칠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염불암 전각 기둥

대부분 석조기둥이어서 이채롭다.

 

 

마애미륵불입상

대웅전 뒤.미륵전 옆에 봉안되어 있다.

큰바위 가장자리에 돌출된 부분을 치석하여 조성한 마애불이며, 마애미륵입상이 정확한 존명이라 하겠다.

1964년 부터 불사를 시작하여 1969년 봉안하였다고 한다.

 

 

 

 

오층석탑

독성각 앞쪽 암반위에 위치한 오층석탑

일제강점기에 조성한 전형적인 형식의 석탑이다.

 

서울지역의 비슷한 작례는

경기여고 교정. 불교제중원 오층석탑과 법륜사 오층석탑이 있다.

 

 

 

 

경기여고. 불교제중원오층석탑

 

 

서울. 법륜사 오층석탑

 

 

마애부도

대웅전 향 우측 스레트지붕의 전각옆 바위에 새겨져 있다.

 

1.현진당 부도.

2.청신녀 홍련화 부도비

3.여산 송씨 부도

 

 

現眞堂 法洪 居士

乾隆 48年 十月 日

 

 

현진당 법홍 거사 現眞堂 法洪 居士

건륭 48년 10월 일 乾隆 48年 十月 日

 

1783년(정조 7년)에 조성한 남자 재가신도 법홍거사의 부도이다.

마애부도로는 이른 시기의 조성된 부도이다.

 

 

 

淸信女 紅蓮華

壬戌 八月 日

 

 

청신녀 홍련화淸信女 紅蓮華

임술팔월 일壬戌 八月 日

즉 임술년(1802,1862.1922년?)에 조성한 재가여자신도의 부도 암각문으로 추정되며 감실은 마련하지 않았다.

 

 

여산송씨 부도

명문은 육안으로 구분이 쉽지 않다.

 

 

감실 상부와 좌우에 명문이 얕게 선각되어 있다.

 

 

(우리카페 오분향님 사진)

 

여산송씨 불도 礪山 宋氏 佛道

곤명 갑진생 坤命 甲辰 生

광서 16년 경인 삼월 일 光緖 16年 庚寅 三月 日

(곤명坤命은 여자가 태어난 년도를 의미)

 

곤명坤命 갑진(1844년)에 태어나 광서 16년(1890년)에 사망한 여산송씨 부도이다.

따라서, 여산 송씨는 생몰년대를 기록한 성(족보)을 가진 가문출신으로 친정과 시댁 양가가 사대부 집안으로 추정된다.


또한

출생년도와 사망년도 표기. 청신녀 대신에 곤명(坤命) 표기, 부도를 불도佛道로 표현한 유일한 부도이다.

 

 

 

 

칠성각 옆

부도공 처럼 보이는 홈이 있으나 확인하지 못했다.

 

 

부도전

나한전 옆 낮은 담장기에 위치

도일당().·인봉당().서영당(西) 부도로 염불암 주변에서 옮겨와 모셔 놓았다고 한다.

 

종형이지만 원통형에 가까운 조선후기 부도이며

지대석 위에 탑신과 연봉형 보주를 일석으로 조성하였으며, 탑신에 부도주인공 명문을 새겼다.

거의 비슷한 유형이어서 동일 장인 그룹에서 조성한 부도로 추정된다.

 

특이하게도

3기 부도는 스님 부도가 아니라 재가신도의 부도이다. 

 

 

서영당 지홍 (西影堂 智弘) 부도


 

신사 서영당 지홍 信士 西影堂 智弘

가경 십오년 경오 嘉慶 十五年 庚午

도화주 신사 대신 都化主 信士 大信


재가남자신도 서영당 지홍의 부도

가경 십오년(1810.순조10년)년에 조성하였으며

부도 조성의 총책임(都化主)자도 재가신도인 大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도 조성 책임자를 새긴 흔치 않은 작례이며.

도화주도 사찰의 승려가 아닌 재가신도라는 것을 암시하는 귀중한 부도이다.

 

 


인봉당 대심(印峰堂 大心)부도


 


가경 21년 병자 7월 일 嘉慶 十十一年 丙子 七月 日

청신사 인봉단 대심 淸信士 印峰堂 大心

도화주 자손 석명찰 都化主 子孫 釋明察


가경21년(1816.순조 16년)에 조성한 재가신도인 인봉당 대심의 부도

부도 조성책임자(都化主)는 인봉당의 자손(釋明察)임을 알 수 있다.

(석명찰이 재가신도의 법명인지, 스님의 법명인지 분명치 않다)


서영당부도 처럼 도화주를 새겼고

二十一년을 十+十+一년으로 표기하였다.

도화주가 자손으로 한 집안에 여러 명 재가신도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운수거사 부도

 


운수거사 도일(?)당명심탑 雲秀居士 道日(?)堂明心塔


재가신도인 운수거사 부도

가운데 잘린 부분의 명문은 명확하지 않다.

조성년대도 새기지 않았다.

 


탑신 위패 측면의 명문

확인이 쉽지 않다.

 

 

 

염불암 부도

여산송씨 부도의 생몰년대,청신녀 대신에 곤명(坤命)표기.부도를 불도佛道로 표현한 귀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부도전의 2기 부도에는 불사를 관장한 책임자인 도화주를 표기하였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사실은

부도전 3기. 마애부도 3기 모두 승려의 부도가 아니라 재가신도의 부도라는 점이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증은 가지만 근거가 없으니...

 


2019.02.15

(본문의 한문 해석은 개인적인 견해이며 틀릴 수도 있습니다)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