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천시

영천...은해사 부도전

임병기(선과) 2018. 7. 1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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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부도전

조선후기 석종형 부도. 근자에 조성된 부도.사적비.공덕비

 

 

부도는 앞쪽, 공덕비는 뒤편에 위치

 

 

포산당혜인대종사부도탑

포산당 혜인스님은 1943년 제주도 안덕면에서 출생해 1956년 일타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제방선원에서 안거수선하며 100만배 기도를 성취했다. 2012년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조실로 추대돼 전법도생 했다.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약천사도 창건했다. 2016년 6월23일 은해사 기기암 선원에서 수선안거 중 세수75세, 법납 62년을 일기로 원적에 들었다. 저서로는 <신심>과 <원력> 등이 있다.

 

 

무허당 규백대선사 부도

 

양종정사화엄대강주영파대사비 兩宗正事華嚴大講主影波大師碑

순조 16년(1816) 건립.
전제(篆題)는 "유명조선국 영파대사비명(有明朝鮮國影波大師碑銘)"으로 되어 있고 "유명조선국선교 양종정사화엄대강주영파대사
비명병서(有明朝鮮國禪敎兩宗正事華嚴大講主影波大師碑銘○序)"로 시작되는 이 비의 비문은 남공철(南公轍)이 짓고 침의경(沈宜慶)이 글씨를 썼으며 유한지(兪漢芝)가 전(篆)을 한 것이다.

 

 

당호를 새기지 않았다.

방형지대석 위에 탑신과 보주를 일석으로 조성하였다.

 

 

 

 

일암당대선사경의탑 一庵堂大禪師警誼搭.1830

 

김태형의 부석사 이야기에 스님의 행장이 기록되어있다.

"1806년 무량수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을 중수할 때 증사였던 일암당(一庵堂) 경의(警誼) 스님은 1792년 양산 통도사 삼장탱, 통도사 금봉암 신중탱, 1802년 경산 선본사 신중탱, 1816년 대구 동화사 지장삼존도, 1825년 군위 지보사 석가불탱, 산신탱, 영천 은해사 지장탱 조성 시 증명을 담당했다."

 

 

 

 

 

 

 

 

 

동곡당 일타대선사(1929~1999).

율사(律師). 법호는 동곡(東谷) 또는 삼여자(三餘子). 1943년 4월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했고, 1949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보살계를,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56년 태백산 도솔암에서 남긴 게송은 “몰록 하룻밤을 잊고 지냈으니, 시간과 공간은 어디로 가버렸나,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치는구나.(頓忘一夜過 時空何所有 開門花笑來 光明滿天地)”이며, 1999년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입적하며 남긴 열반송은, “하늘의 밝은 해가 참 마음 드러내니, 만리의 맑은 바람 옛 거문고 타는구나, 생사열반 이 모두가 오히려 꿈이러니, 산은 높고 바다 넓어 서로 침범하지 않네.(一天白日露眞心 萬里淸風彈古琴 生死涅槃曾是夢 山高海闊不相侵)”이다. 이 때의 세수는 71세, 법랍은 58세였다. 해인총림 율주와 해인사 주지,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원로의원, 은해사 조실 등을 역임하였다. 일타스님은 원효스님의 수행터의 하나인 경북 팔공산 오도암에서 수행한 바 있다.

 

 

당호가 전하지 않는다.

 

 

 

 

 

 

부도 주인공을 알 수 없다

제발 돌 좀 올리지 마세요.

 

 

 

 

 

 

당호를 새기지 않았다.

 

 

 

 

 

팔공산은해사사적비 八公山銀海寺事蹟碑.1943

 김정래(金鼎來) 글

 

 

 

국일도대선사부종수교행양종정사목암당선정비國一都大禪師扶宗樹敎行?宗正事牧菴堂宣定碑.1765

 

 

무오갑헌토유공비 戊午甲獻土有功碑.1777

 

 

갑오갑유공비 甲午甲有功碑.

1787년(정조 11)에는 인악의첨(仁岳義沾)이 절에 머물며 갑오갑계의 공덕비를 세웠다

 

인악대사는 답사객에게 널리 알려진 스님이다.

 

 

옥포 용연사.인악대사부도 

 

 

팔공산 동화사.인악대사비

봉황머리 귀부. 기억날 것이다.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인악당仁嶽堂 의첨대사義沾大師(1746~1796)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통해 대사의 행적을 추론할 수 있다. 팔공산 동화사에 있는 비의 비문과 글씨는 김희순金羲淳이 짓고 썼는데 매우 유려한 행서체이다.


대사는 지금의 대구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인근의 용연사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던 중 스님들의 정진 모습에 감동 받아 불교에 귀의하였다. 22세에 스승인 벽봉 스님으로부터 구족계 받고 훗날 영원정사에서 화엄종장으로 있던 상언스님을 만나 화엄경의 진리를 터득하였다. 비슬산, 계룡산, 황악산 등에서 강석 열어 많은 후학을 지도하다가 동화사로 돌아왔다.


정조 14년(1790)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창건된 용주사 불상 조성의 증명 되어 이를 감독하고 불복장원문경찬소佛腹藏願文慶贊疏와용주사제신장문龍珠寺祭神將文을 지었다. 정조 20년(1796) 용연사 명적암에서 열반하였다. 저서로화엄사기華嚴私記,금강사기金剛私記,기신론사기起信論私記,인악집仁嶽集등이 있으며, 호남지방의 연담 유일一 스님과 함께 화엄조사로서 쌍벽을 이루었던 학승이다. 현재 용연사에 부도가 남아 있다.

 

 

은해사유공불망비 銀海寺有功不忘碑.1740

 

 

한석범 윤진추 윤진상유공불망비 韓錫範尹進樞尹進相有功不忘碑

 

 

임오갑유공비 壬午甲有功碑.1806

 

 

무오갑수공비 戊午甲樹功碑.1787

 

 

병오갑유공비 丙午甲有功碑.1822

 

 

갑자갑수공명비 甲子甲樹功銘碑.1793

영파 성규스님이 건립

 

 

권씨마마공덕불망비 權氏媽媽功德不忘碑.1906

 

뭔가 이야기를 전개하고픈 불망비다.

마애부도에서...

 

 

순상국조공휘승현영세불망비 巡相國趙公諱鉉永世不忘碑.1658

이분의 선정비는 경북지방에 가장 많이 세워져 있다.

 

 

군수민후휘치만철영세불망비 郡守閔侯諱致萬永世不忘碑.1863

혼허 지조 스님이 세움

 

 

군수김공휘기철영세불망비 郡守金公諱箕哲永世不忘碑.1863

기수 스님이 세움

 

 

군수정후휘기중원영세불망비 郡守鄭侯諱基重元永世不忘碑

 

 

군수이후휘인원영세불망비 郡守李侯諱寅元永世不忘碑

 

 

운허대화상문오만일회신창송공비 運虛大和尙文午萬日會新誦功碑.1831

 

 

○○당대사선응비 ○○堂大師宣應碑

 

 

아득하다

너무도 오랫만에 들려 옛기억 마져 희미하다.

1970년대 후반 소중한 추억이 어린 절집이건만...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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