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천시

영천...호연정 석탑부재

임병기(선과) 2017. 5. 2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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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정浩然亭

영천시 성내동 금호강변에 위치한 정자로 1710년경 병와 이형상이 강학을 위해 설립했다고 전한다.

 

병와 이형상(1653~1733)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옥(仲玉), 호는 병와(甁窩)·순옹(順翁). 효령대군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성균진사를 지낸 주하(柱夏)이다.

1677년(숙종 3) 사마시를 거쳐 1680년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호조좌랑을 지내다가 금산군수로 부임하여 덕유산의 도적들을 토벌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1703년(숙종 29) 제주목사로 있을 때 석전제를 지내던 3읍의 성묘를 수리하여 덕망높은 선비를 뽑아 글을 가르치게 했으며, 몽매한 풍속을 타파한다면서 129개의 신당을 불태우는 등 불교와 토착신앙을 배척하고 유교를 권장했다. 1727년(영조 3) 호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영천에 호연정(浩然亭)을 세워 학문에 힘쓰면서 〈둔서록 遯筮錄〉을 초안했다. 1728년 가선대부가 되고, 소론의 일파인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경상도 소모사가 되었으나, 같은 소론으로서 당론을 누설했다는 무고를 받고 잠시 투옥되었다.

 

벼슬은 한성부윤에 이르렀고, 1735년 영천의 성남서원에 제향되었으며, 1796년(정조 20) 청백리에 뽑혔다. 1829년(순조 29)에는 제주유생들이 그를 기려 영혜사(永惠祠)에 제향했다.시조에 깊은 관심을 가져 자료를 널리 모았으며, 시조를 한역한 작품 77수를 남겼다. 저서에 문집 〈병와집〉·〈둔서록〉·〈강도지 江都志〉·〈남환박물지 南宦博物誌〉·〈악학편고 樂學便考〉·〈예학편고 禮學便考〉·〈성리학대전〉 등 다수가 있다."...출처/다음 백과

 

 

석탑재

오래전 포항의 이상녕님으로부터 석탑재 소식을 들었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마침 영천을 답사중이던 김환대님이 카톡으로 알려주어 바로 뵙고 왔다

두 분께 감사 드린다.

 

여러부재중 석탑부재는 옥개석 3개로 추정된다.

고려중기 이후의 부재라는 느낌이다.

 

 

2 층옥개석, 3층 탑신석이 일석

낙수면 물매는 깊고, 옥개받침은 3단이다.

1단 각형 탑신괴임을 조출하였고, 탑신 상부에 찰주공이 있다.

 

 

초층 옥개석?

옥개석 층급은 3단이며 상부에 1단 각형괴임이 있다.

 

 

옥개석 부재?

 

 

탑신석?

 

 

어느 절집에서 옮겨 왔을텐데...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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