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주시

영주...봉황산 부석사(3)

임병기(선과) 2018. 6. 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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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

초가삼칸. 초창때는 그러했으리라 단정하고프다.

소박하고 간결하다는 느낌, 골담초를 에워싼 철펜스는 철거 할 수 없을까?.

 

작지만 넉넉하다는 생각.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묵서에 의하면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할버지의  수염이 떠오른 것은... 

 

 

조사당은 문이 닫혀 있었으며,

내부에 있었던 벽화는 성보박물관에 전시중이지만 공사로 인해 친견치 못하였다.

 

 

 

선비화

의상대사가 부석사 창건 후 천축국으로 떠날때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터이니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달빛에 젖은 이야기이지만 조선조 많은 시인 묵객이 시가 전하며 풍기군수로 재직한 퇴계의 시 한편을 옮긴다.

 

탁옥삼삼의사문(擢玉森森倚寺門) 옥인 양 높이 솟아 절 문에 기대어 섰는데

승언탁석화령근(僧言卓錫化靈根) 스님은 의상 대사 지팡이가 변한 것이라고 하네
장두자유조계수(杖頭自有曺溪水) 지팡이 머리에 응당 조계수(曹溪水) 있어

불차건곤우로은(不借乾坤雨露恩) 천지간 비와 이슬의 은택 빌리지 않으리라

 

 

 

단하각 丹霞閣

일반적으로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木佛을 쪼개 땠다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천연丹霞天然 선사를 모신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사찰 단하각에는 산신, 치성광여래 또는 독성이 봉안되어 있다.

 

 

부석사 학예사이었던 김태형님은 부석사에 주석하였던 단하당 쾌봉스님의 영정을 봉안하였던 전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부석사 단하각에는 선사는 무릎위에 푸른색 쥐 한 마리를 손으로 잡고 있다.

 

옛날부터 부석사의 봉황산에 생쥐가 많아서 봉황의 알을 야금야금 깨어 먹는다 해서 ,단하각을 짓고 손에 생쥐를 든 단하소불을 모셔 생쥐가 봉황의 알을 해치지 못하게 했다는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서울 사자암. 단하각

산신과, 독성, 독성상 앞에 단하선사(?)를 모셨다

 

 

남양주 흥국사 단하각

산신을 모시고 있다.

 

 

서울 미타사.단하각

 

 

나한전.자인당

 

 

나한전

 

석가여래삼존과 16나한을 모셨다.

 

 

 

 

 

자인당

본래는 선방이었다고 전한다.

 

 

자인당

석불좌상. 동비로자나불.서비로자나불

 

사진을 부지런히 찍었으나 내눈에도 아니올씨다 이지만...

 

알아서 남 주자!는 일념으로, 동서부도전과 더불어 사진을 한 펀으로 올릴 예정이다

 

 

 

 

 

부석사 성보박물관

옥외에 3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소천리 석불좌상 韶川里 石佛坐像
부석면 소천리가 안태고향이라고 한다.

(봉화군 법전면에서 도난당한 소천리석불좌상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

 

불두는 후보물이며, 법의는 우견편단, 옷깃이 세줄로 왼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직선으로 내리면서 중앙에서 뒤집어졌다. 항마촉지 수인이며. 오는손은 후보하였다. 대좌는 본래 부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임곡리 석불입상 林谷里 石佛立象
지권인 수인의 석조비로자나불 입상은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든 작례이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약사여래좌상

안태고향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9세기 즈음일까?

 

일견 근대불로 생각했으나

화들짝 놀란 만한 반전이 있었으니...

 

 

 

무릎사이로 빠져 나온 옷자락.

 

이상타?

 

 

상대석과 일석으로 상부에 옷주름을 새기고,

또한 석불좌상 무릎사이로 불상과 일석으로 옷주름을 새겨 연결하였다.

이런 작례는 기억에 없다.

 

 

확연히 구분된다.

 

 

 

 

 

 

 

속세로 나왔다고 생각했건만

 

 

허문동천 虛門洞天

일주문 밖 할머니들의 자판대 뒤편에 위치하여 들어 올 때 감빡했다.

 

 

동천

도교에서 신선이 살고 있는 유토피아를 뜻한다.

새긴 시기는 언제일까?

 

그들에게는 동천이었겠지만 천민으로 전락한 스님들에게는 치욕이었던 사회상 아니었을까?

 

선하게 생각하고

착하게 살아야하는데...

 

 

답사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분명 축하 할 일이다.

하지만

치열한 자기성찰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고 싶다.

 

가장 먼저

홈페이지 오류를 수정, 보완부터 시급히 해결하였으면 좋겠다.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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