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리암지!!!!! 지금까지 짧지 않은 답사 경험중 가장 많은 도전끝에 만난 님이시다.
2016년 지리 99카페에서 부도가 남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신흥사지 부도, 의신사지 부도를 뵌 다음 단천마을을 경유하면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었다. 웬걸. 단천마을 경로당 할머니들께서 이구동성으로 폭우로 길이 끊어져 접근 불가하며,쇠점터 부근 진입 계곡을 알려 주셨다.
몸이 피곤하여 당장은 포기하고 몇달 후, 할머니들이 알려주신 계곡으로 접근하여 무려 4시간 이상을 뒤졌으나 결과적으로 엉뚱한 계곡으로 진입하여 뵙지 못했다.
세번째, 우리카페 오분향님의 글을 보고 통화 후 정확하게 계곡으로 들어갔으나 사리암지 100미터 전 물골재(공식명칭은 아닌 것 같다)에서 사리암재로 바로 넘어 가지 않고 우측 능선을 타는 바람에 죽도록 고생만 했었다.
네번째, 겁도 없이(비지정 탐방로이다) 국립공원 부스를 찾아가 위치를 파악하고 사정사정하며, 우리카페 소개 후 휘파람 불며 등반을 하였으나 전혀 엉뚱한 능선을 타는 바람에 소득없이 거의 탈진 상태로 하산 하였다.
그리고 오늘, 사리암재를 경유한 프로 산꾼들의 산행기를 유심히 읽고 우리카페 오분향님과 통화 끝에 물골재 고개 넘으면 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리암지에서도 헤매이긴 하였지만 무려 4전 5기 끝에 뵌 사리암지 부도다.
답사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디테일하게 동선을 설명해주겠지만, 비지정 탐방로이어서 소개하지 못 함을 이해바란다.
이렇게 사리암지에 집착한 까닭이 무엇일까?
욕심, 욕심 때문이다. 지리산 자락 구례,남원, 함양,산청,하동의 모든 부도를 답사 하겠다는 과욕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이번 남도 답사에서 그간 뵙지 못했던 지리산 자락의 부도를 모두 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리암지. 창건과 폐사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 자료인 디지털하동 문화대전에는 대성골에 사리암이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내용만 보이며, 폐사지는 물론 부도에 관한 언급은 없다.
지리산을 모르기에 자신은 없지만 현재 유존 하는 사지중에 가장 큰 규모의 축대, 경작지가 남아 있는 사지의 한 곳으로 생각된다.
지리산에 관한 자료가 가장 많은 "지리 99카페"에는 사리암지와 관련된 글이 몇 편 있다.
가객님의 글이다.
사리암터는 현 단천골의 지류인 물골의 하류에 위치한 폐사지로서 지형도에 사리암으로 표기가 되어져 있는 곳이다.
30여년 전 까지 화전민이 거주하였으며, 관군의 진입으로 초토화되었음을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그런 서글픈 역사를 품은 사리암지이다. 부도도 현 위치로 옮겨 왔으며 당호도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사리암지 부도.
인연, 어렵게 만난 인연이 부끄러운 듯 대가집 별채 아기씨처럼 나무 그늘에 자태를 숨기고 맞이한다.
나 역시 눈도 마주치지 못 하고 성큼 다가가 그냥, 마냥, 아무 생각없이, 깊게 끌어 안고 얼굴을 맞대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볼을 타고 흘러 내리고, 찬 화강암 탑신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뭐지? 아직까지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주체 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한참 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민묘 뒤편. 자연석을 배례석으로 옮겨 온 민초들의 정성이 가슴으로 다가 온다. 멋부리지 않고 대좌 상부를 깊게 파내고 탑신과 보주가 일석으로 조성하였다.
탑신을 둘러보아도 당호는 육안으로 확인 불가했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석종형 부도이다.
탑신 상부 바람에 연잎이 슬쩍 들려져 있다. 불경스럽게도 마르린 먼로가 스쳐가고...
연주문을 두른 후 앙련위에 보주를 올렸다.
대좌
탑신
봄날 진달래가 지천이고 접동새가 우는 날이 었다면 난 쉽게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다.
2017.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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