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송정 홍교 六松亭 虹橋.간성읍 해상리 1041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의 경계에 있는 무지개 다리. 건립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건봉사 능파교와 함께 을축년(1745년)의 대홍수로 붕괴되었던기록으로 미루어 능파교(1704년)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다리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편 1748년에 편찬된 간성군읍지杆城郡邑誌의 조성년대 미상이라는 글을 근거로 능파교이전에 건립된 다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건봉사 능파교...2010년 10월 3일
고성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쌓아서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 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육송정 홍교 六松亭 虹橋 홍예의 기초는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동쪽은 암반(높이 1.7m)을 그대로 이용하여 그 위에 홍예돌과 비슷한 크기의 장대석으로 1단의 지대석(높이 30㎝)을 두었다. 서쪽에서는 3단의 지대석을 쌓은 후 그 위에 홍예를 올렸는데, 1단에 2개씩의 장대석을 이어서 만들었다. 서쪽 지대석의 높이는 1단이 묻혀 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단이 70㎝, 3단이 60㎝로 매우 거대하다.하천 폭이 12.3m, 길이 10.6m의 다리이다. 현재의 다리는 2006년에 해체.복원하였다.
상판
왜 이렇게 오지의 좁은 하천 위에 공덕을 들여 평다리도 아닌 홍교를 건설하였을까?
간성에서 금강산으로 향하는 목에 위치한 까닭? 즉,일반 민중의 편의 보다는 왕실과 금강산을 유람하는 한양 땅의 고관대작의 눈에 들기 위하여 축성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결국은 민초들이 가장 많이 활용했겠지만...
미적인 감성은 차치하고,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문제인가?
현대식 그랭이기법이 뚜렷하다.
또하나 왜 명칭이 육송정 홍교 六松亭 虹橋일까?
"간성읍 마을 각리 끝에 위치하여 있었기 때문에 속칭 위촌마을이라 불렀다. 해상1리 서쪽으로 8㎞지점에 구절폭포가 있어서 이 폭포에서 흐르는 물을 우수라 하였으며 그 상류지역을 우천 이라 했는데 우천의 우향으로 샘이 솟아 임천리(林泉里)라 불리워진 것이 지금의 해상1리가 됐다. 또 그 우수의 하류에 있는 마을을 번개(磻溪)라 부르는데 그것이 지금의 해상2리가 되었다. 구절폭포 밑에는 육송정(六松亭)이라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한 뿌리에서 6개의 나무가 뻗어나와 그렇게 불렀다고 하나 지금은 2개의 나무만이 현존하고 있다."
고성군청의 홈페이지 자료를 근거로 넷상의 모든 자료에는 육송정 홍교 명칭이 '육송정 소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맞나? 그나저나 소나무에 '육송정六松亭'이라는 품명이 있는가?
개인적인 생각 소나무 여섯 가지의 형상이 정자같은 모양이어서 육송정이라 불리어지지 않았을까?
정자亭子가 있었다면 간단한 문제인데...
즐기면 될텐데 아직도 삐딱하게 보는 시각으로 미루어 나는 철들려면 멀었다.
2017.0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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